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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이 승리를 거둔 한국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강압적인 독재 지배 세력들의 공격을 받는 지금, 한국의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의 인권 보호에 필요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섰다.

Published in: The Diplomat
2024년 12월 14일국회의사당앞에서윤석열탄핵촉구집회에참여중인시민들 © 2024 Lee Jin-man/AP Photo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시도가 실패로 끝난 뒤 12월 14일 대한민국 찬성 204표, 반대 85표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견제, 균형이 강화되었다. 탄핵소추안 가결은 12월 3일 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에  대한 발 빠르고 적절한 대응이다.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억제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인권과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었다. 윤석열은 야당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안 발의와 정부예산안 감액,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을 들어 계엄을 정당화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정치적 혼란은 전시에 준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12월 3일, 한국 국민은 그의 도박을 즉각적으로 거부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갔다.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국회에서의 계엄령 해제요구안 표결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은 계엄군이 국회 경내에 진입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국회의원들이 투표에 참여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손을 맞잡고 인간 사슬을 만들어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섰다. 시민들과 경찰 및 계엄군의 대치가 이어졌다.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자신을 겨눈 계엄군의 총구를 붙잡고 “부끄럽지도 않냐?”고 소리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상에 확산됐다. 시민들은 국회 안으로 진입하려는 군 차량들을 가로막았다. “죽어도 못 비킨다”고 소리치며 장갑차를 막아선 한 남성은 1989년에 맨몸으로 천안문 광장에 들어서는 탱크를 막아선 남성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다른 시민들도 재빨리 합류했다. 

국회는 여야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긴박감 흐르는 몇 시간 끝에 윤석열은 계엄령을 철회했다. 그의 비상계엄 시도는 여섯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다. 

12월 3일 국회에 집결한 용감한 시민들은 힘들게 싸워 얻은 자유에 대한 위협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1980년대 계엄령의 잔혹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많은 국민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197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한 뒤, 군은 정권 유지를 위해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수백 명의 학생들을 학살하고 자의적 체포와 고문, 처형을 동원했다.

전직 교사 이현규(63)씨는 “1979년 계엄 선포를 경험했다”면서 “다음 세대가 이런 일을 당하는 걸 막기 위해 3시간 반 걸려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군이 발포를 시작하면 노인들이 앞으로 나가 젊은 세대를 지켜주자는 70대 여성의 제안에 다른 시민들이 “그럽시다, 그럽시다”라고 동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국회에서 밤을 샌 강선경(29)씨는 “아침에 출근해야 하지만, 혹시 모를 군병력과 장갑차를 막기 위해 일단 자리를 지키려 한다”며 “내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1980년대 전두환의 계엄령만큼이나 위험한 수준의 극단성을 드러냈다. 시위와 집회를 금지할 뿐 아니라 언론을 계엄사의 통제 하에 놓았고 ‘가짜 뉴스, 여론 조작, 허위 선전’을 불법화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언론도 이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즉시 국회에 기자들을 파견하여 밤새 생중계를 진행했다. 1980년 군부의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광주에서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 후 가장 큰 지역 신문사 두 곳의 편집장과 직원들이 보도실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서둘러 기사를 완성하여 인쇄한 뒤 1980년에 그랬던 것처럼 공수부대가 침입해 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창문을 통해 건물 옆 광장으로 신문을 던졌다. 

이후 국회에 출석한 조지호 경찰청장은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야당 정치인 등 15명의 위치를 추적하여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조 청장은 또한 비상계엄 선포 몇 시간 전에 윤 대통령으로부터 MBC 등 언론사를 장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MBC는 윤석열 지지자들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여러 차례 고소 당한 바 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야당 대표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현직 판사, 전 대법관, 일부 정치인과 노조 대표, 언론인 등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계엄군은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을 점령하고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12월 8일에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내란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12월 11일에는 조지호 경찰청장이 김봉식 서울경찰청장과 함께 동일 혐의로 체포되었다. 

12.3 사태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분명하다. 전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억압 통치를 추구하는 독재 세력들에게 공격받고 있다. 12월 3일과 4일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권력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어 민주적 제도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방증이다. 그러나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승리로 이끄는 건 일반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권 보호에 필요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나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12월 3일 자신의 안전과 목숨을 걸고 행동한 한국 국민이 감탄을 자아내는 이유는 그 모습이 영웅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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