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2014년에 황해남도에서 밀수를 하던 임옥경(40대)의 집에 보안원들이 들이닥쳤다. 보안원들은 임옥경이 중국에서 밀수해온 가정용품들을 찾아냈다. 임옥경은 중국 접경지에서 보안성이 운영하는 구금심문시설(구류장)에 수감되었다. 중간급 당원인 남편의 연줄이 좋아 임옥경은 10일 후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수사관이나 간수들의 구타를 피하지는 못했다. 임옥경은 휴먼라이츠워치에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대기실에서는 간수들이 때리지 않았는데, 심문하면서 때렸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수시간 동안 모든 이야기를 써야 했습니다.
다음날에 예심원이 들어와서 내가 쓴 것이 거짓말이라면서 다시 쓰라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서로 맞지 않으면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요…… 첫 날에 구타가 제일 심했습니다...... [개인 감방에 있을 때] 지나가던 간수들이 나를 때리거나 발로 찼고...... 5일 동안 서 있게 하고 잠도 재우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는 간수가 들어오면 나한테 고생한다면서 사탕도 주고 앉아서 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면이 없는 간수가 감시할 때, 한 젊은 간수는 나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 직원으로 일하던 윤영철(30대)도 북한 사법제도의 자의성을 경험했다. 2011년 겨울 어느 밤에 보안원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이 들이닥쳐 그가 살고 있던 중국 접경 도시의 보위부 사무소로 끌고 갔다. 윤영철은 그곳에 수감되어 심문을 받기도 전에 가혹한 구타를 당했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그는 누군가 자신을 첩자로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휴먼라이츠워치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요원들은 나를 대기실에 넣었는데, 방이 작고 나 혼자였습니다. 몸수색을 한 다음에 보위부장, 당 정치부장, 수사관이 들어왔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심각했는데 난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30분 정도 때렸습니다. 군홧발로 차고 주먹으로 아무 데나 막 때렸어요……
다음 날에는 옆에 있는 감방으로 옮겨서 예심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사에 어떤 절차나 형식은 없었고 그냥 막 때리기만 했습니다…… 예심원이 처음에 무자비하게 나를 때렸는데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은 해주지 않았습니다…… 심문이 지속되고 나서야 내가 첩자로 신고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예심단계의] 심문 초반에는 언제나 가혹한 구타가 있었습니다. 군홧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온 몸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한 달 후에 자백을 거의 다 받아낸 후에야] 대우가 좀 나아지더라고요.
6개월 후에 윤영철은 첩자가 아니라는 보위성의 결정에 따라 보안성으로 이송되었다. 보안성은 두 달간 한약재나 구리, 금 같은 금지 품목의 밀수 혐의에 대해 그를 조사했다. 약식 재판으로 윤영철은 교화소에서 5년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북한에서는 대부분의 이윤 활동이 불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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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경과 윤영철의 경험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에 속한다. 북한은 전체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국가로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김정은과 그 일가가 수립한 정치적 왕조의 통치 하에서 모든 기본적인 시민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가 심각하게 억압된다. 조선노동당과 정부는 헌법과 법률 및 규제, 법률과 사법제도를 통제하여 당과 정부의 지시를 정당화한다.
2014년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PRK)는 북한 정부가 자행하는 조직적이고 보편적이며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범죄 행위에는 살해, 몰살, 수감, 노예화, 박해, 강제실종, 강제북송 후 수감된 주민들에 대한 성폭력 등을 포함한다. 유엔조사위원회는 미결구금심문시설에서 수사와 심문 중에 수감자들을 억압하고, 특히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람들에게서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고문과 모욕, 위협, 고의적인 굶주림이 보편적으로 이용된다고 기록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이후 구류장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북한인 22명 그리고 탈북한 전직 정부 관료 8명과 진행한 인터뷰 및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한 본 보고서는 북한의 불투명한 미결구금 및 수사제도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본 보고서는 형사상 수사과정, 북한의 취약한 법률 및 제도적 구조, 조선노동당의 법집행기관 및 사법부 통제, 유죄 추정, 뇌물과 부패, 구류장의 비인간적인 환경과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 수준의 가혹행위를 고발한다. 북한이 “폐쇄된” 국가이기 때문에 미결구금제도와 관련한 법적 절차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경험과 아래에 기술된 다른 증거들에 의하면, 고문과 모욕적인 처우, 강요에 의한 자백, 굶주림, 비위생적인 환경, 최악의 처우를 피하기 위해 연줄과 뇌물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 등이 기본 특징임을 알 수 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북한인들은 공식 수사가 시작되면 노동단련대에서의 단기 노동형이나 노동교화소에서의 장기 또는 무기 노동형을 피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모든 구금 경험자들은 무릎을 꿇거나 책상다리를 한 상태에서 주먹이나 손을 무릎에 얹고 고개를 숙여 시선은 아래로 향한 채 하루 7-8시간 동안, 때로는 13-16시간씩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수감자 한 명이 움직이면 간수들은 해당 수감자를 처벌하거나 모든 수감자들에게 단체로 벌을 내렸다. 심문관들이 자백을 얻어내고자 할 때 특히 가혹행위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라는 지시를 어겼을 때의 처벌을 포함한 고문과 처벌이 더 심한 듯 보인다. 수감자들은 법집행관과 직접 눈을 마주쳐서는 안되는 하급 인간으로 대우받으며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다. 일부 여성 수감자들은 성희롱과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영양가가 낮은 극소량의 음식(하루 세 번 삶은 옥수수 90-200g과 야채나 무를 넣어 끓인 국), 누워서 잘 공간이 부족한 과밀한 감방, 거의 씻을 기회가 없음, 이불과 옷, 비누, 생리용품의 부족 등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수감 환경에 대해 증언했다. 심문과정이 끝나면 때로 간수나 심문관들이 가족 또는 친구가 음식과 옷, 비누, 돈 등을 들여보내도록 허락했다. 뇌물과 연줄이 있으면 법집행관들이 혐의를 묵인하거나 축소시키고, 수감 중 처우와 수감 환경을 개선해주거나, 사건을 완전히 기각시키기도 했다.
북한의 법률은 대체로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특정 권리를 언급하더라도 국제 기준에 명시된 피고와 수감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안전장치는 제공하지 않는다. 또 중요하게 누락된 부분이 많고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아 법률을 집행할 것인지,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대해 관료들의 재량권과 해석이 최대화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일례로, 북한 법률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협박이나 유도심문으로 얻은 진술과 유일한 증거로써의 자백을 재판에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무죄추정원칙과 자기부죄거부의 특권, 묵비권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없다. 북한의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수사나 예심 단계에서의 구금을 사법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 없다. 또한 조선노동당이 북한의 모든 기관을 통제하기 때문에 법집행 요원들은 형사상 혐의를 추구하기 전에 당안전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용어 설명
보안성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은 보안부라고도 불리며, 2020년 5월에 사회안전성으로 개명되었다.
보안부 경찰에 해당하며, 현재 사회안전성으로 불린다.
보안성 단련대 사회안전성이 운영하는 단기(6개월-1년) 노동구금시설
보위사령부 군 사찰기관
보위부 비밀경찰로 공식 명칭은 국가안전보위부이며 현재 보위성으로 불린다.
보위성 비밀경찰로 공식 명칭은 국가안전보위부이며 현재 보위성으로 불린다.
아이쓰 메타암페타민, 마약의 일종으로 빙부라고도 불린다.
인민보안성 경찰에 해당하며, 보안성이라고도 불린다.
인민반 주민간 감시시스템
집결소 임시구금시설
국가보위성 비밀경찰로 흔히 보위성이라고 불린다. 과거에는 보위부로 불렸다.
구류 영장 없이 구금하는 행위
구류장 미결구금심문기관
관리소 정치적 중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노동수용소
교화소 일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장기(1년 이상) 노동수용소로, 노동교화소라고도 불린다.
무기노동교화형 교화소에서의 무기 노동형
노동단련대 단기(6개월 미만) 노동수감시설
노동단련형 단기(6개월-1년) 노동형
노동교화형 노동교화소에서의 장기(1년 이상) 노동형
노동교화소 일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장기(1년 이상) 노동수용소로, 교화소라고도 불린다.
노동교양처분 단기(5일-6개월) 노동행정처분
사회안전성 경찰에 해당하며 안전성이라고도 불린다. 구, 보안부 또는 보안성.
사회적 교양처분 주민으로서의 올바른 의식을 되새기도록 하는 단기 행정처분
성분 사회정치적 계급제도
유기노동교화형 일반 범죄자 수용소에서의 장기(1년-15년) 노동형
주요 권고
북한 정부에 대한 권고
-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법부를 수립하고, 경찰과 보안국, 정부, 조선노동당, 최고지도자의 권력에 대해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법률과 헌법, 제도를 개혁한다.
-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경찰력과 수사제도를 수립한다.
-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무죄의 추정, 사법절차의 전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당한 절차와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도록 법제도를 개혁한다.
- 국내법의 구조를 검토하여 여성 수감자의 수감시설과 관련한 방콕규정이 온전히 준수되도록 한다.
- 혹독한 교도소 환경을 개선하고 위생과 보건의료, 영양, 깨끗한 물, 의복, 바닥 면적, 환기, 조명, 난방 등이 기본 수준에 도달하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 성폭력, 강제노동,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도록 강요하는 것, 기타 가혹행위 등 구금시설과 교도소에서의 고질적인 고문과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고 모멸적인 처우를 종식시킨다.
- 국제적십자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와 북한인권상황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유엔 최고인권대표사무소 등 유엔인권기구들이 교도소와 기타 구금시설을 방문하도록 허용한다.
방법론
북한은 국내 상황과 관련한 자료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경우에는 자료가 제한적이고, 일관되지 않으며, 부정확하거나, 그 유용성이 의문시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외국인의 입국 그리고 주민들과 외국인 간의 접촉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또 자국 내에서 어떠한 유형의 독립적인 인권 연구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휴먼라이츠워치는 본 보고서와 관련하여 북한 내에서 어떠한 인터뷰도 수행하지 못했다.
본 보고서는 2015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휴먼라이츠워치 직원과 컨설턴트가 수행한 인터뷰와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우리는 또 북한 밖에서 46명의 북한인을 인터뷰했다. 이 중 22명(여성 15명, 남성 7명)이 북한의 현 지도자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이후 미결수 구금심문시설인 구류장에 구금된 적이 있었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여성이 더 많다. 이는 북한에서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감시가 덜 엄격하고 인신매매단이 여성을 선호하여 탈북자 중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구류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전직 정부 관료, 업무상 그러한 사람들과 연계를 맺었던 사람, 아직까지 북한에 있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 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전직보안성(경찰, 최근에 사회안전성으로 개명되었다) 간부 3명, 교도소 간수 1명, 국가보위성(비밀경찰) 간부 1명, 국경 근처의 구류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 군관 1명, 당 간부 3명이다.
모든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인터뷰 참가자들에게는 본 연구의 목적과 인터뷰 내용이 어떻게 이용될 것인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또 인터뷰가 자발적인 의사로 진행되며, 인터뷰를 거부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고, 언제든지 인터뷰를 중단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모든 인터뷰는 참가자가 편안하고, 비교적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인터뷰 참가자들에게 인터뷰에 대한 답례를 제공하지 않았다. 단, 인터뷰로 인해 근무를 빠져야 했던 참가자들에게는 최저 임금으로 보상했다. 인터뷰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휴먼라이츠워치가 교통비를 부담했다.
다수의 인터뷰 참가자들이 자신 또는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보복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익명을 요구했다. 만일에 있을 처벌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 보고서에 사용된 구금 경험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또 피해자나 증인의 신분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는 상세 정보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또 북한의 구금 및 교도소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와 활동가, 법률 전문가, 학자들을 추가로 인터뷰했다. 우리는 유엔 기구, 북한의 구금 및 교도소 문제를 다루는 남한의 NGO, 북한 정부기구, 연구자, 국제 애널리스트 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공개된 관련 문서를 수집하여 검토했다. 이러한 문서는 북한에서의 미결구금 상황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아쉽게도 미결구금 및 형사 절차를 알아볼 수 있는 북한의 법률과 내부 규정, 칙령 등은 대부분 구할 수 없었고, 구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최신본인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외부에 알려진 법률과 절차에 우선하는 자체적인 기밀 내부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보위성의 정치범에 대한 미결구금 절차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식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본 보고서와 관련하여 수행된 인터뷰의 수가 비교적 적어 휴먼라이츠워치가 북한 내 모든 구금심문시설의 상황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참가자들이 경험한 구금 시설이 다양한 지역에 분포해 있고 구금 환경과 인터뷰 참가자들의 경험이 유사한 것으로 볼 때, 본 보고서에 적시된 문제들이 보편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조사 결과와 기존 문서들로 볼 때 구금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 위험하고 유해한 구금 환경, 유죄 추정, 정당한 절차의 부재, 부실한 재판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본 보고서의 한글본은 영문 보고서를 번역한 것으로, 본문에 인용된 북한인들의 발언도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I. 북한의 보안 및 법집행 기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은 전세계에서 주민들의 자유를 가장 심각하게 제한하는 경찰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은 2,500만 명에 달하는 주민 중 반체제 인사들을 침묵시키고 지도자인 김정은과 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감시와 폭력, 위협, 두려움, 가혹한 처벌을 이용하여 체제에 순응시키는 복잡하고 정교한 보안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0F[1]
전화와 컴퓨터, 편지를 감시하고, 인터넷은 극소수의 고위 당 간부를 제외하고는 사용이 불가능하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정부가 승인한 방송만을 내보내고, 모든 미디어 컨텐츠는 엄격한 검열을 거친다. 1F[2] 어렸을 때부터 주민들의 생각이 지속적으로 감시당하며 전면적인 세뇌 공작을 통해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만들어낸다. 모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모임에 정보원이 존재하고, 모든 주민은 가입 단체와 인민반을 통한 상호감시제도를 통해 당에 의해 지속적으로 감시당한다. 2F[3] 정교한 정치적 신분제도인 ‘성분’ 제도는 충성도와 실적에 따라 주민들을 구분하고, 개개인에게 협소하게 규정된 사회적 역할을 배정한다. 3F[4]
국가보위성은 적 또는 ‘반혁명분자’가 인민과 당, 정부에 대해 자행한 범죄로 규정되는 정치 범죄를 조사한다. 4F[5] 국가보위성은 평양에 본부가 있으며, 도와 시, 군/구역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5F[6] 공식적으로는 국무위원회 산하로 되어 있으나, 최고지도자에게도 보고한다. 6F[7] 직원 수가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보위성은 정치범수용소인 관리소와 지역의 임시구금시설인 집결소를 운영한다. 또 일부 구금실/대기실 및 다수의 구금심문시설(구류장)과7F[8] ‘초대소’라 불리는 기밀 장소를 운영한다. 8F[9] 국가보위성은 북한 정부 내에서 가장 은밀한 기관으로, 자체적인 기밀 내부 규정과 지침에 따라 운영된다. 9F[10]
사회안전성은 법과 질서, 사회 통제를 유지하며, 일반 범죄를 조사하고, 범죄자들을 구금 및 심문하며, 형법 하에서 처벌할 만큼 중대하지 않은 범죄에 대한 처벌을 부과한다. 10F[11] 또한 단기 노동구금시설인 보안서 단련대와 노동단련대, 일반 범죄자 수용소인 노동교화소를 관리한다. 11F[12] 사회안전성은 평양에 본부가 있고, 도와 시, 구역/군/지구 및 리 단위에 사무소가 있다. 12F[13] 또 중앙과 도, 시, 지역 단위에서 미결구금심문시설인 구류장을 운영한다. 13F[14]
보위사령부는 인민무력부 산하 인민군 정치경찰로서 기밀의 내부 규정을 따른다.14F[15] 군 내에서의 내부 보안을 담당하며, 군 조직과 고위 장교, 지역 당 조직, 개별 간부들을 조사하고 감시한다. 15F[16] 보위사령부는 미결구금심문시설과 정치범수용소 인근에서 단기구금시설(노동단련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F[17] 또 최고지도자가 군사시설을 방문할 때 최고지도자의 안전을 담당하며, 북쪽과 남쪽 국경지역의 군 및 민간의 동향을 감시하는 것도 보위사령부의 업무이다. 17F[18]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보위사령부는 국무위원회에 보고한다. 국무위원회는 국가의 최고정책결정기관이다. 국방 및 군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며, 국무위원장의 지시를 이행하고, 국무위원장의 지시와 국무위원회의 결정 및 지침에 반하는 국가 기관의 결정과 지침을 무효화시킨다.18F[19] 김정은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19F[20]
주요 보안기관들 사이에 분명한 공식 명령체계가 있으나, 당의 특별조직들 역시 통제와 지도를 수행하며 고위 간부나 보안기관을 감시하고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조직지도부는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이행할 업무를 맡고 있다. 조직지도부는 사회안전성, 국가보위성, 보위사령부를 감독 및 지도한다.20F[21] 또 고위 당 간부의 감시와 감독 및 임명을 담당한다.21F[22]
검찰소는 행정 및 경제 사업 관련 범죄와 법집행기관이 관여된 범죄를 직접 조사한다.22F[23] 북한에서 가장 힘 있는 기관 중 하나로, 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감사 권한이 있다.23F[24] 검찰소의 공식 업무는 기관과 기업, 단체, 인민들이 국가의 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국가 기관의 결정과 지시가 헌법, 법률, 최고인민회의의 결정과 명령, 국무위원장의 명령, 국무위원회의 결정과 지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과 지시, 내각의 결정과 지시를 따르는지를 감시하며, 국가의 주권과 사회주의제도, 국가와 사회협동단체의 재산, 인민의 헌법적 권리와 생명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를 색출하여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24F[25] 일부 검찰소는 구금실이나 구류장을 운영한다.25F[26]
검찰소는, 당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모든 기구와 마찬가지로, 중앙검찰소와 도, 시, 군 검찰소로 조직되어 있다.26F[27] 또 군인과 사회안전성 요원들의 일반 범죄를 다루는 군사검찰소, 철도 이용과 관련한 일반 범죄를 다루는 철도검찰소, 군수공업부문 관련 범죄를 다루는 군수검찰소 등 특별검찰소가 있다.27F[28] 검찰소는 북한의 단원제 의회인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 중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명령을 따른다.28F[29]
다양한 보안기관들의 공식 역할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시기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소관 업무가 다양하게 진행되었고, 정치적 우선과제, 가용 역량, 고위 간부의 상대적인 권력, 특정 기관이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는 정도에 따라 달라졌다. 주요 보안기관인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 보위사령부는 사상적 반대자와 위협세력을 색출하여 지배계층의 눈에 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II. 문제투성이의 형사소송법과 제도
북한의 형사사법제도는 헌법과 법률, 기타 법적 장치, 정부 기구와 마찬가지로 지배계층과 정치제도를 보호하고 당의 지시를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의 형사사법제도는 불복종 행위를 가혹하게 처벌한다.29F[30] 이 제도는 국가 지도자의 발언과 지시를 최우선시하는 지도 사상 30F[31], 조선노동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31F[32], 당 규정32F[33], 사회주의헌법33F[34], 그리고 국내법에 기반한다.34F[35] 일례로, 형사소송법 제2조는 국가로 하여금 “반국가 및 반민족범죄”와의 투쟁에서 적아를 엄격히 가려낼 것을 명시한다.35F[36] 또 헌법 제162조는 재판소(법원)의 역할을 국법의 엄격한 준수와 “계급적 원수들을 적극 물리치는” 것으로 규정한다.36F[37]
북한의 법률제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주권과 사회주의적 사회의 법률”에 의해 지배된다.37F[38]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법률과 사법제도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며, 북한에는 법률에 의한 지배는 있으나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법부를 통해 유지되는 법률의 지배는 없다. 법률에 견제 장치가 규정되어 있더라도 면책으로 그러한 견제가 무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38F[39]
형법과 절차 및 처벌
북한의 범죄 수사, 재판, 선고 제도는 간단하면서 동시에 복잡하다. 북한의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비교적 짧고, 여러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상 허점과 모순이 많아 이해하기가 어렵다. 북한은 법률에 기반한 공식적인 사법제도를 갖고 있으나, 이와 병행하여 불투명한 방식으로 공식 제도에 우선하는 조선노동당 중심의 준(準)사법제도가 있다. 또한 법 적용의 임의성으로 인해 구금자들만이 아니라 법집행자들에게도 혼란이 가중된다.
형법은 1990년에 채택되었으며, 마지막으로 2015년에 개정되었다. 2007년에 형법을 보완하여 별도의 법률로써 형법부칙이 제정되면서 처벌이 강화되었다.39F[40] 전체적으로 볼 때, “고의 또는 태만에 의해 국가의 주권과 사회주의 체제, 법과 질서를 침해하는 위험한 행위”에 대해 형사상 제재가 부과된다.40F[41] 주요한 형사상 처벌로는 사형, 무기노동교화형, 1-15년의 유기노동교화형, 6개월-1년의 단기노동단련형이 있다.41F[42]
경범죄는 2004년에 통과되어 마지막으로 2011년에 개정된 행정처벌법에서 다룬다. 이 법률에 따라 “형사상 처벌에 미치지 않는 범죄를 자행한 기관, 사업소, 단체, 인민들”에 제제가 부과된다.42F[43] 이 법률의 위반 행위는 내각, 검찰소, 재판소, 사회안전성, 감사기관, 국영 기업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과 함께 사회주의법무생활지도위원회에서 심의한다. 부과된 모든 행정 처벌은 분기마다 사회주의법무생활지도위원회에 보고된다.43F[44]
사회안전성은 또 1992년에 채택되어 2005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인민보안단속법을 적용할 수 있다. 이 법률에 따라 사회안전성은 범죄자들을 구금하고 생산 자재의 파괴나 절도, 정부개발사업에 대한 허위 보고서 작성, 점술 행위, 미등록 컴퓨터의 사용, “퇴폐” 음악이나 그림, 사진, 서적의 복제와 유통 등의 행위에 대해 처벌을 부과할 권한을 갖는다.44F[45] 이 법률은 또 “법과 질서를 위반했으나 형사상 책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45F[46]
형사소송법은 1950년에 제정되어 마지막으로 2012년에 개정되었다. 북한 법률 하에서의 구금, 체포, 수사, 재판, 선고 절차를 다룬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사회안전성이나 보위성과 같은 모든 보안기관에 적용된다.46F[47] 사회안전성이 다루는 일반 범죄의 경우 대체로 법률에 규정된 시간 제한과 절차상 단계가 준수된다. 그러나 보위성이나 보위사령부는 주된 목적이 체제 보호이기 때문에 위계 상 더 높고, 자체 기밀 내부 규정과 지침에 의해 특정한 상황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무시하고 행동할 수 있다.47F[48]
죄과가 중대하지 않은 정치범죄의 경우 국가보위성은 형사소송법으로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다.48F[49]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피의자를 야간에, 길거리에서, 또는 직장에서 체포하여 구류장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다. 구류장에서는 여러 보안기관으로부터 수개월간 심문을 받을 수 있다.49F[50] 피의자의 혐의가 가볍거나 정치범죄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보위성은 보통 해당 피의자를 사회안전성으로 보내며, 그 경우 사회안전성에서 다시 수사가 시작된다.50F[51]
북한의 법률은 또 중요한 점들이 누락되어 있다.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에는 예심 단계에서 구속적부심을 허용하는 조항이 없다. 이로 인해 관료들은 구금 또는 체포 이후의 단계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는다. 북한 법률은 또 대체로 모호하고 국제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명확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아 해당 법률을 따를 것인지 또는 어떻게 따를 것인지에 대해 관료들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재량권을 최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51F[52]
북한의 법률은 형사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국가가 인권을 온전히 보장한다고 주장한다.52F[53] ‘고문’이라는 단어가 법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법률에서는 증거 수집 과정에서의 강제력이나 유도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53F[54] 협박이나 유도심문으로 확보한 진술과 유죄의 유일한 증거로 사용된 자백은 법정에서 인정할 수 없다.54F[55] 형사소송법 제166조는 예심원이 “피심자에게 강제적인 방법으로 범죄를 인정시키거나 진술을 유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55F[56] 동법 제37조는 또 “강압, 유도의 방법으로 받은 피심자, 피소자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 피심자, 피소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에는 그의 범죄를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인정한다. 자수, 자백한 자료도 그와 관련있는 다른 증거를 찾아내야 인정한다.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피심자, 피소자의 진술이 다른 증거에 의하여 거짓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밝혀지면 범죄가 증명된 것으로 인정한다.”고 명시한다.56F[57]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법률은 무죄 추정의 원칙, 자기부죄거부의 특권, 묵비권을 보장하지 않는다.57F[58] 반대로, 형사소송법 제283조는 피의자가 “물음에 답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58F[59] 피의자는 예심원이 “형사 책임을 추궁”하기로 최종 결정한 후에만59F[60]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구금자는 개인적인 연줄이 있지 않는 한 변호사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변호인 선임권이 제한적이다. 또 북한에서는 모든 변호사가 당이 통제하는 변호사위원회의 감독 하에 있기 때문에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60F[61]
형사상 수사와 기소
형사소송법은 형사 사건에 대한 수사와 예심, 기소, 재판, 선고 단계를 설명한다. 수사 단계의 목표는 “범죄자를 찾아내고” 피의자를 예심으로 넘기는 것이다.61F[62] 예심 단계의 목표는 “범죄자를 드러내고, 형사 사건의 모든 세부사항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이다.62F[63] 기소의 의무는 “예심이 마무리된 사건 기록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예심에서 범죄의 모든 세부사항이 완전하고 정확하게 밝혀졌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건을 재판소로 넘기는” 것이다.63F[64] 1심 재판의 목표는 “범죄와 범죄자를 확정하고 법률에 따라 분석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64F[65]
수사
수사 기간은 보통 며칠간 지속되는데 피의자를 석방하거나 다음 단계인 예심으로 넘기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심으로 넘어가면 보통 재판이 진행되고 유죄가 확정되어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수사는 보통 주요 법집행기관인 사회안전성이나 국가보위성의 수사관이 담당한다. 65F[66]
형사소송법 제135조에 따라 법집행관은 24시간 내에 검찰소에 공식적인 수사 개시를 요청할 수 있으며, 검찰소는 수사를 개시할 합당한 근거가 없는 경우 요청을 기각할 수 있다.66F[67] 이 기간 동안 수사를 담당한 법집행관이나 보안 요원은 검사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체포하여 최대 10일간 구금실이나 대기실 또는 구류장에 감금하고 심문할 수 있다.67F[68]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구금 경험자 중 영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68F[69] 이 10일 동안 사회안전성 요원이나 기타 수사관은 피의자를 석방하거나 예심에 넘기기로 결정한다.69F[70]
사회안전성 요원이나 수사관은 또 검사의 승인 없이 피의자를 구금시킬 수 있다. 그러한 경우, 수사관은 체포(영장 필요) 또는 구금(영장 불필요, 북한에서는 ‘구류’라고 함) 후 48시간 이내에 검사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에서와 같이, 수사관은 구금 후 10일 이내에 피의자를 석방시키거나 예심 단계로 사건을 넘겨야 한다.70F[71] 검사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10일 이내에 범죄를 입증하거나 피의자를 석방시켜야 한다.71F[72]
미결구금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직 보안원은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수사관들이 경범죄 혐의를 받은 사람 중 다수를 단기노동구금시설로 보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자숙하도록 단기 행정처분(사회적 교양 처분)을 내리며, 절반 정도를 예심에 넘긴다고 말했다.72F[73] 형사소송제도권에 있는 사람과 친분이 있었던 한 전직 당 관료는 잠정 사건 중 많게는 90%가 기각되거나 단기노동시설로 보내지며, 10%만이 예심과 기소, 재판으로 넘겨지는 것으로 추정했다.73F[74] 그는 “보안원들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뇌물을 받는거지요.”라고 말했다.74F[75] 실제로 뇌물 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보안원 2명을 포함하여 총 4명의 전직 정부 관료는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사소한 범죄의 경우 대부분은 뇌물을 주거나 충분한 연줄이 있으면 수사로 이어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75F[76]
예심
예심은 보통 피의자가 구속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예심원은 무기노동교화형이나 사형 선고가 가능한 범죄인 경우 또는 피의자가 수사에 개입하거나 예심에 협조하지 않거나 예심 또는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도주 위험이 있는 경우 피의자를 구금하거나 체포할 수 있다.
피의자가 구속되기 전에 예심이 시작되는 경우 예심원은 피의자를 심문하기 위해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다. 피의자가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심이 완료되고 피의자의 기소가 결정된 경우, 장기노동형이나 무기노동교화형,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우 예심원은 검사에게 체포 영장을 요청할 수 있다. 단기노동단련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우 피의자는 특수 상황(법적으로 특정되지 않음)에서만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있다. 법률에서는 여성 피의자의 경우 출산 3개월 전 또는 출산 후 7개월 이내에는 구금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나, 중범죄를 자행한 여성에게도 해당하는지는 불분명하다.76F[77]
수사의 초점이 범죄자 색출에 맞춰져 있는 반면, 예심의 목적은 범죄의 성격, 동기와 목적, 피고의 역할과 수단, 범죄로 인한 결과 등 사건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77F[78]
사회안전성, 국가보위성, 검찰소 등 법집행기관들은 수사 부서와 예심 부서를 별도로 두며, 예심원은 수사부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맡도록 되어 있다.78F[79] 법률에서는 예심원이 사건 접수 후 48시간 이내에 예심 절차의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한다.79F[80] 일부 사건에서 피의자가 훨씬 더 오랫동안 구금되는 경우도 있으나, 예심은 2-5달 이내에 완료되어야 한다.80F[81] 2008년에 탈북한 전직 보안원은 피의자가 자백하지 않으면 그 기간이 최대 1년까지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81F[82]
재판 전 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직 보안원 한 명은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단기 또는 장기노동단련형에 해당하는 혐의로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하라는 권고가 사건의 80-90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면서 대부분이 장기노동단련형이라고 말했다.82F[83] 그에 따르면, 나머지 사건은 기각되고 피의자를 단기노동단련대로 보낸다.83F[84]
노동당이 북한의 모든 기관을 통제하기 때문에 구금자들은 형사상 처벌 여부가 최종 결정되기 전에 병행 절차로 진행되는 당안전위원회의 심문을 거친다.84F[85] 이 절차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 대신, 노동당이 운영하는 준사법제도 안에서 작동한다.85F[86] 다른 공산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집권당이 법원을 감독하여 사법부를 통제하고 법원은 당의 규정과 정책을 따라야 한다.86F[87]
당안전위원회의 주된 역할은 사회 질서와 관련한 당의 지시를 이행하고, 사법조직을 관리하고, 검찰 및 사법 활동의 일관성과 획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다.87F[88] 지역, 시, 도, 중앙 단위 등 모든 행정 단위에 당안전위원회가 존재한다. 중앙당 차원에서는 당 비서가 위원장직을 맡으며, 사회안전상과 국가보위상, 중앙재판소장, 중앙검찰소장,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참여한다.88F[89] 당안전위원회는 15-30일에 한 번 또는 필요시 수시로 회의를 소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9F[90] 다른 안전위원회의 구성은 범죄의 성격과 관할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90F[91]
조선노동당에 연줄이 있는 전직 정부 관료와 구금 경험자들이 휴먼라이츠워치에 증언한 바에 의하면, 당안전위원회는 각 사건의 상세 내용을 검토하고, 피의자의 정치적 배경을 조사한 다음, 형사 및 정치범죄 사건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다.91F[92] 이 위원회는 예심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하는데, 이 보고서에는 사건 개요와 함께 위반 법률의 목록과 형사상 책임의 추궁 여부에 대한 권고가 포함된다. 그런 다음, 위원회는 해당 사건의 정치적 함의를 고려하고, 권고의 수용 또는 기각 여부를 결정한다.92F[93] 한 전직 보안원에 따르면, 당안전위원회는 거의 모든 사건에서 형사상 책임에 대한 권고를 수용한다.93F[94] 이 절차는 형사소송법 규정과 일치하지 않아 이론적으로 법률에 명시된 여러 보호장치들을 약화시킨다. 현실에서는 법률과 상관없이 당의 결정이 북한의 제도에서 가장 우선시된다.94F[95]
당안전위원회가 사건을 다음 단계로 보내도록 승인하면, 남성 피의자는 삭발하고 여성 피의자는 귀 높이까지 머리를 자른다. 이후 피의자의 유죄가 확정되면 그날로부터 형기가 시작된다.95F[96]
이 지점에서 예심원은 해당 법률과 관련 형벌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조사 결과와 함께 형사상 책임성에 대한 결정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48시간 내에 검사에게 보내야 한다.96F[97] 예심원은 또 48시간 이내에 피의자에게 형사상 책임의 추궁 여부와 관련한 결정을 알리고 변호사 선임권을 고지해야 한다.97F[98] 피의자에게 결정을 통지한 후 예심원은 48시간 내에 피의자를 심문할 수 있는데, 심문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사이에만 진행할 수 있다. 예외가 존재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 검사가 참석해야 한다.98F[99]
예심원이 증거가 충분하여 피의자를 재판 단계로 보낼 수 있다고 결정하고 검사가 이에 동의하면, 예심원은 피의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사건 파일을 보여주고, 관련하여 질문이 있거나 오류 수정에 대한 요청이 있는지를 묻는다.99F[100] 그런 다음, 예심원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모든 사건 파일 및 증거와 함께 검사에게 보낸다.100F[101]
기소
예심원이 검사에게 사건을 보내면 법적으로 검사는 “예심을 종결한 사건기록을 전면적으로 검토하여 예심에서 범죄의 전모가 완전하고 정확하게 밝혀졌다고 인정될 경우 범죄사건을 재판소에 넘긴다”.101F[102]
검사는 10일 내에 사건을 처리해야 하며, 이 기한은 5일 연장할 수 있다.102F[103] 단기노동단련형으로 처벌 가능한 사건의 경우 5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103F[104]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검사는 기소장과 사건 기록, 증거를 재판소에 제출한다.104F[105]
3명의 전직 정부 관료에 의하면, 검사가 사건을 검토하지만 이는 거의 상징적인 절차에 불과하며 거의 모든 사건이 재판에 회부된다.105F[106]
재판
1심 재판의 목적은 “범죄와 범죄자를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그것을 법률적으로 분석 평가한데 기초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106F[107] 1심 재판소는 재판장인 판사와 “인민참심원” 2명으로 구성된다.107F[108] 판사는 증거를 검토하고, 수사와 예심에서 범죄가 충분히 조사되었는지, 해당 범죄에 대해 형법 조항이 정확히 적용되었는지, 기소하지 않은 범죄의 공모자는 없는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원칙과 절차가 정확히 지켜졌는지를 심의한다.108F[109] 재판에서 검사는 피고의 범죄를 “명확하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재판이 법률에 따라 진행되는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109F[110]
재판소는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25일 이내에 재판을 마쳐야 하며, 10일간 연장할 수 있다.110F[111] 단기노동형에 해당하는 피고에 대한 재판은 10일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111F[112]
유죄 판결 후 피고는 서면 판결문의 사본을 받은 후 10일(단기노동형의 경우 3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112F[113] 항소심에서는 항소 신청을 접수한 후 25일(단기노동형의 경우 7일) 이내에 사건을 검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113F[114] 항소는 재판소와 당의 결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형량이 높아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114F[115]
북한의 법원
북한의 법률은 사법정의의 이행과 관련하여 “재판소가 독립적이며 사법 절차는 엄격하게 법률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북한의 최상급 법원인 최고재판소는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 중에는 상임위원회에 보고한다고 명시되어 있다.115F[116]
대부분의 1심 재판을 진행하는 최하급 법원은 인민재판소로, 시와 군 단위를 관할한다.116F[117] 그러나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사건의 경우 도재판소가 1심 재판소가 된다.117F[118] 사형이나 무기노동교화형이 가능한 사건도 도재판소의 관할이다. 도재판소는 또 인민재판소의 관할에 속하는 사건을 직접 재판하거나 다른 인민재판소로 보낼 권한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인민재판소가 1심 재판을 하고, 도재판소는 인민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항소심을 맡는다.118F[119]
북한은 또 군사재판소, 군수재판소, 철도재판소라는 3개의 특별재판소를 두고 있다.119F[120] 군사재판소는 군인이나 인민보안원이 자행한 범죄나 군사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재판하며, 군수재판소는 군수공업부문의 종업원이 저지른 범죄사건과 군수공업부문에 영향을 끼치는 범죄사건을 재판한다. 철도재판소는 철도운수부문 종업원이 저지른 범죄사건이나 철도운수질서를 침해한 범죄사건을 재판한다.120F[121]
최고재판소는 도재판소와 특별재판소의 1심 재판에 대한 항소사건을 재판한다. 최고재판소는 어느 재판소의 관할에 속하든지 모든 1심 사건을 직접 재판하거나, 최초의 관할 재판소와 동급 또는 동일 유형의 다른 재판소로 사건을 보낼 수 있다.121F[122]
지역에 세 등급의 재판소가 있으나 항소는 한 번만 허용된다. 또 최고재판소가 1심 재판을 할 권한이 있고 이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재판소의 재량에 따라 2심제도의 효용이 무효화될 수 있다.122F[123]
준사법제도
위에서 설명한 제도에 더하여 북한은 별도의 준사법제도를 통해 인민들을 통제한다.123F[124] 이 제도는 불투명하고 복잡하다. 이 제도의 일부분은 당안전위원회나 조직 그리고 앞서 언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지도부와 같은 당의 칙령과 구조에 기반하며, 국가보위성이나 보위사령부 조직처럼 기밀로 유지되는 것도 있다.124F[125] 사회주의법무생활지도위원회와 같은 다른 조직들은 법적 근거가 있다.125F[126] 이 위원회는 행정 처벌 및 청원을 담당한다.126F[127] 또 “국가의 주요 경제기관과 지도일군을 감독하여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사회주의 법률과 규정을 준수하도록 한다”.127F[128] 이 위원회는 인민위원회의 감독 하에 중앙과 도, 시, 지역 단위에 조직되어 있다. 중앙의
사회주의법무생활지도위원회는 당지도위원장, 당조직부장, 당안전부장, 검찰소장 등 5-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듯 보인다. 도와 지역 단위에서는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보안소장, 검찰소장, 법무부문 소장이 참여한다.128F[129]
일반 범죄와 정치 범죄는 엄격히 구분하여 처리된다. 정치 범죄는 적 또는 “반혁명분자”가 당과 정부에 대해 자행한 반국가, 반민족 범죄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건은 국가보위성의 관할이며, 군대와 관련된 경우 보위사령부가 맡는다.129F[130] 국가보위성은 포괄적인 권한을 갖지만 그 정확한 권한은 기밀로 유지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중대한 반국가 또는 반민족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주민들은 아무런 통지나 재판, 사법적 명령 없이 강제실종되어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로 보내진다.130F[131] 그곳에서 이들은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 채로 감금되어 고문과 강제노역, 기타 잔혹한 처우를 받고, 설령 사망하더라도 가족들에게 통보되지 않는다.131F[132]
부정부패와 법집행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 이후 주민들 사이에 장마당이 정부의 식량 배급을 대체하고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한 소득원으로 자리잡았다. 엄밀히 따지면 상거래는 여전히 불법이었으나, 정부 관료와 사회안전성 및 국가보위성 요원, 구류장 간수, 검사, 당 간부와 같은 권력자들에게는 구금과 체포,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132F[133] 다수의 권력자들에게 뇌물은 곧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에 의하면, 정부 관료들은 “급여가 적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점점 더 부정부패에 참여하고 있다”.133F[134]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19년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에서 북한은 180개국 중 172위를 차지했다.134F[135]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북한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이 뇌물을 받는데 신중하며 어떤 경우에는 돈이나 선물을 돌려주거나 거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135F[136] 전직 보안원 한 명은 “우리[정부 관료들]도 도덕 관념이 있으니까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때만 [뇌물을] 받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에 있을 때 장사를 했던 한 북한인은 “정부 관료들이 누구한테서 뇌물을 받을지 아주 신중하게 결정하고, 부탁받은 것을 들어줄 수 있을 때만 [돈]을 받습니다. 누가 거기에 대해 떠들고 다녀서 말이 새나가고 그러면 자기들의 평판이나 앞으로의 수입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부패 사건으로] 자기가 조사당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걸 원치 않는 겁니다.”라고 했다.136F[137]
III. 북한의 미결구금시설
북한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구금시설은 다음과 같다.
· 구금실 또는 대기실: 규모가 작거나 벽지에 있는 법집행기구 사무소에는 구금실 또는 대기실이라 불리는 작은 수감실이있다.137F[138]
· 구금심문시설(구류장): 이 시설은 보안/법집행기구 사무실, 수사나 예심 단계에 있는 피의자를 심문하는 심문실, 그러한 피의자를 구금하는 감방을 갖추고 있다. 또 재판을 기다리는 피의자, 거주지의 관할기관으로 이관될 피의자, 장기노동교화 대상 일반범죄자 교화소로 보내질 피의자, 처형을 기다리는 피의자들을 수감하는데도 사용된다. 138F[139]
· 임시수감시설(집결소): 대부분 중국 국경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집결소는 국경을 이탈했다가 강제송환된 사람들이나 국내이동제한 규정을 어긴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구금하는 곳이다. 구금자들은 본 거주지의 법집행관이 와서 거주지역으로 데려갈 때까지 이곳에 수감된다. 139F[140] 어떤 구금자들은 강제노역을 하고, 또 어떤 구금자들은 최대 1년까지 단기노역을 해야 할 수 있다. 140F[141] 집결소를 처벌 장소로 이용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고, 최대구금기간도 명확히 한정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141F[142] 집결소는 사회안전성이나 국가보위성 또는 군에서 운영할 수 있다.142F[143]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집결소의 환경이 비인간적이며, 당국이 구금자들을 고의적으로 굶기는 정책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143F[144]
· 단기 노동구금시설(노동단련대): 1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을 받은 경범죄자를 수용하는 가장 흔한 구금시설이다.144F[145] 대체로 도와 시, 지역 단위의 조선노동당 인민위원회가 운영한다.145F[146]
· 단기노동보안성구금시설(보안성 단련대): 단기(6개월-1년) 노동단련형을 받은 범죄자를 수용하기 위해 사회안전성이 전국 단위에서 운영하는 구금시설이다.146F[147] 이 시설은 일반범죄자 수용소인 교화소 인근에 자리한다.147F[148]
북한유엔인권조사위원회의 2014년도 보고서에서는 구금심문시설, 특히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사람들이 처음 수용되는 시설들에서 고문과 고의적인 굶기기, 비인간적인 처우,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자행된다고 설명했다.148F[149] 또 사회안전성과 국가보위성 수사관들은 피의자가 범행을 완전히 자백했다고 확신할 때까지 가혹한 구타와 기타 형태의 고문을 조직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149F[150] 유엔 보고서는 또 “구금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빨리 자백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피의자를 외부와 연락을 단절시킨 채로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수감하는 국가보위성 운영시설에서 피의자에 대한 처우가 특히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했다.150F[151]
북한 정부는 북한에는 교도소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유엔조사위원회의 조사 내용을 계속해서 부인했다.151F[152] 대신,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는 범죄자들을 “노동을 통해 교화”시킬 목적으로 노동교화소에 수감한다고 주장한다.152F[153] 사실상 장기강제노동 수용소인 노동교화소는 1-15년의 유기노동교화형이나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은 가벼운 정치범이나 일반 중범죄자를 수용할 목적으로 사회안전성이 운영한다.153F[154]
북한 정부는 또 실질적인 정치범 수용소로써 정치적 중범죄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운영하는 강제노역장의 존재를 줄기차게 부인하고 있다. 관리소라 불리는 이 시설은 국가 기밀로 간주된다.154F[155] 관리소는 국가보위성이 운영한다. 정치범들은 전 가족원과 함께 강제실종되어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 채 이러한 노역장에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155F[156] 노동교화소나 관리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처우를 받고,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환경과 고된 강제노동, 영양실조, 그리고 불충분한 식량 배급으로 기아 상태에 처하기도 한다.156F[157]
IV. 미결구금 및 수사기관에서의 인권유린
구타와 가혹행위
구금 중의 가혹행위는 북한의 형사사법제도에서 보편적인 특징이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구금 경험자 22명과 전직 정부 관료 8명은 구금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특히 구류장에서의 심문 초기 단계에 심각하다고 말했다.157F[158] 전직 관료들은 당국이 수사 및 예심 단계의 심문과정에서 중요한 자백을 받아내려면 피의자를 가혹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158F[159] 이들은 또 구금자들의 향후 범죄를 예방하기위해 모멸감과 가혹한 처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159F[160]
구금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는 전직 보안원은 휴먼라이츠워치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규정에는 절대 때리면 안된다고 되어 있지만, 수사와 예심 초기 단계에서 자백을 받아내야 합니다. 구금자들은 자신이 한 모든 잘못을 자백하고 반성문을 한 번이든 열 번이든 필요한 만큼 써야 합니다. 그래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때리는 거죠. 소나무 막대기로 때릴 수도 있고 군홧발로 찰 수도 있습니다. 최종 서류에 지장을 찍게 하려면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수사가 종료된 후에도 나중에 범죄를 부인하거나 예심원한테 다시 자백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게 미쳤구나 하면서 구금자를 때립니다.160F[161]
그의 증언에 따르면, 수사 초기에는 외부 음식이나 담배처럼 구금자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물건의 외부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백을 받아내고 필요한 문서가 거의 완료된 후에 외부에서 필요 물품을 들여오도록 허용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죄가 없어서 결국 풀려난 경우에도 일단 구류장에 수용된 이상 재교육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계처럼 되고 다시는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박히도록 아주 혹독하고 모욕적인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161F[162]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사람들에 의하면, 수감자들은 오전 5시30분에서 7시 사이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한 다음 30분씩 주어지는 점심(정오)과 저녁식사 시간(오후 5시30분이나 6시), 취침시간(밤 10시) 전까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 이론상 매 2시간마다 10-30분의 휴식시간이 제공된다.162F[163] 우리가 인터뷰한 전직 정부 관료 8명과 모든 구금 경험자들은 수감자들이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손을 무릎에 올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거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7-8시간동안, 때로는 하루 13-16시간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증언했다.163F[164] 한 명이 움직이면 간수는 해당 구금자를 처벌하거나 모든 구금자를 단체로 처벌한다. 처벌은 막대기나 가죽 벨트 등으로 구금자들의 손을 때리거나, 군홧발로 차거나,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시키거나, 팔굽혀펴기를 시키거나, 100번, 300번, 때로는 1,000번씩 마당을 뛰어 돌게 만드는 것 등이 있었다.164F[165]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구금 경험자 22명과 전직 정부 관료 4명은 구금자들이 바닥에 시선을 고정해야 하며 간수나 수사관, 예심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165F[166] 구금 경험자 10명과 전직 정부 관료 2명은 구금자들이 이름이 아닌 번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166F[167] 구금자들이 직접 눈을 마주치거나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하등한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167F[168]
인터뷰 참가자들은 남자 수사관이나 예심원(사회안전성, 국가보위성 요원이나 검사)에 의해 목격자가 없는 밀실에서 심문이 이루어진다고 증언했다.168F[169] 구금 경험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심문관은 해당 사건에 대해 반복적으로 비슷한 질문을 하고 피의자에게 해당 범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자술서를 쓰게 한다.169F[170] 진술 내용이나 자술서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심문관은 그 내용을 하루에 몇 차례씩 수일동안 다시 진술하거나 쓰게 하고 해당 구금자에게 벌을 주었다.170F[171] 구금 경험자들은 심문을 받는 중에 담당관에게 주먹으로 맞고, 두꺼운 몽둥이나 가는 금속 막대기로 맞고, 군홧발로 차였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확보한 증언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일치했다. 유엔조사위원회는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구금심문시설에 수용된) 수감자들 중 심문을 받거나 노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때로 심각하게 과밀한 감방에서 하루 종일 고정된 자세로 앉아 있거나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 수감자들은 허락 없이 말을 하거나, 움직이거나, 주위를 둘러봐서는 안된다. 이러한 규칙을 어기면 구타와 식사 배급량 축소, 강제적인 신체활동으로 처벌받는다. 해당 감방에 있는 모든 수감자들이 단체로 처벌받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했다.171F[172] 유엔조사위원회는 또 보안성(사회안전성)이172F[173] 운영하는 구금심문시설의 상황이 “가끔 가족 면회가 허용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국가보위성] 구금심문시설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했다.173F[174]
몇몇 여성 구금 경험자들은 구류장에서 강간 등 성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증언했다.174F[175] 인터뷰 참가자들은 보안원이나 보위성, 검찰 관계자가 주로 심문을 담당했는데, 이들이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거나 옷 위로 가슴과 엉덩이 등 몸과 얼굴을 만졌다고 말했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그 남자들의 손에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175F[176]
허윤미의 사례
함경남도에서 회계사로 일했던 허윤미(50대)는 2015년 말에 탈북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남한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2015년 초에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구류장에 일주일간 수용된 적이 있다고 휴먼라이츠워치에 말했다. 그녀는 조사를 받을 때와 휴식시간, 식사하거나 처벌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손을 무릎에 올리고 책상다리를 한 채 줄을 지어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다고 증언했다.176F[177] 또 공식적으로는 오전과 오후에 5-10분 휴식시간이 있었으나 휴식시간의 제공 여부는 간수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수감자들은 카메라로 감시당했다. 허윤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간수들이 CCTV로 우리가 줄지어 앉아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스피커를 통해서 ‘X 감방 수감자 Y, 일어나!’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 때로 감방에 있는 사람들 전체가 벌을 받기도 하는데 그건 간수가 누구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10명 중 1명만 괜찮고 대부분의 간수들은 끔찍했습니다…… 처벌은 일어서서 팔을 앞으로 또는 위로 오랫동안 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앉았다 일어서기를 20번이나 100번, 그 이상 할 때도 있었고요. 사람들이 계속 조사를 받으러 나가기 때문에 움직인 것에 대한 벌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일어났습니다. 벌을 받은 후에도 계속 움직이면 간수들이 손에 든 곤봉으로 때립니다. 벌받을 때 빌거나 잘못했다고 하지 않으면 또 맞습니다. 남자들 감방은 폭력이 더 심했는데, 때로는 감방 반장한테 다른 수감자들을 때리라고 시켰습니다……. 우리는 간수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조사를 받으러 감방 밖으로 나갈 때는 몸을 90도로 숙인 채 걸어야 하고, 조사를 받을 때는 바닥에 시선을 두고, 절대로 간수를 똑바로 쳐다봐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면 규정에 따라 때립니다. 수감자들은 ‘X감방 번호 Y’라고 불렸습니다. 간수들은 우리를 욕설을 섞어서 모욕적으로 부르곤 했습니다.
허윤미는 보위성이 자신을 6일 동안 조사했다고 말했다. 보위성 요원들은 3일간 그녀를 구타하고 고문했다. 허윤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주로 수사관이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습니다. 처음에 [수사관한테] 맞았을 때는 귀가 먹먹해서 소리가 잘 안 들리더라고요. 여자들은 주로 얼굴을 때린다고 들었는데, 진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대기로도 때립니다.
허윤미의 딸도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 구금되어 있었다. 허윤미의 딸은 허윤미에게 자신이 중국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한 것에 대해 보위성에서 이틀간 조사를 받았고 첫 날에만 맞았다고 말했다. 허윤미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조사받을 때 의자에 앉았는데, 우리 딸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야 했고 자기 옆에 또 조사 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었답니다.
허윤미는 또 자신의 감방에 있던 한 여성이 “난로 위에 무릎 꿇고 앉은 채로 조사를 받아서 화상을 입었습니다. 또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고요…… 군의관이 있었는데 그 군의관이 화상 입은 여자를 치료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허윤미는 또 자신이 일하던 직장의 남자 동료가 2015년 6월에 한 달간 같은 시설에 구금되었는데 그 사람은 하도 맞아서 제대로 걷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지철의 사례
박지철(20대)은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벌목꾼으로 일하다가 2014년 말에 탈북했다. 그는 2010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보안성이 운영하는 구금심문시설에 수감되었다.177F[178] 그는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밀수업자인 자신의 삼촌이 밀수 활동을 위해서 보안원과 군인, 보위성 요원들에게 옥수수주, 담배, 버섯, 현금 등을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여러 차례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에 그는 정부가 배정한 직장에 출근하지 않은 죄로 3일간 보안성이 운영하는 시설에 구금되었다가 3개월간 단기노동단련대로 보내졌다.
2010년에 그는 밀수죄로 거의 1년간 수감되었다. 수사와 예심을 거친 후 그는 일반범죄자 수용소에서 5년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삼촌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어 김정일 사망 후 사면정책이 실시되기 전에 1년만 복역하고 석방되었다.
박지철이 수감되었던 시설에는 감방이 9개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분리 수감되었다. 그는 13-16명 가량의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15평방미터 크기의 감방에 수용되었다. 수감자들은 담당 수사관이나 예심원의 심문을 받을 때나 간수로부터 움직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감방에서 고정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다. 수감자들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아침이 되면 간수가 수감자들을 깨우고 큰 통에 물을 가지고 오면 모든 수감자들이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는데 사용했다. 간수들은 오전 7시와 정오, 오후 6시에 30분간 식사시간을 제공했다. 2시간 간격으로 간수가 교체되었고, 그때는 수감자들이 10-30분간 마당에 나가거나 서 있을 수 있었다. 박지철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하루하루가 끔찍하고, 너무도 고통스럽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나나 다른 사람이 [감방에서] 움직이면 간수들이 나한테 또는 전 수감자들에게 손을 감방 창살 밖으로 내밀라고 한 후에 군홧발로 여러 차례 밟고 지나가거나 가죽 벨트로 때렸습니다. 그래도 움직이면 안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때렸습니다.
박지철은 수사과정이 끝난 후에 가족들이 뇌물을 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을 들여보내도록 허락받았다고 말했다.
교화소에서 나오는 음식은 끔찍하고 양이 아주 적습니다. 나는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하루에 세 끼를 주는데 으깨서 삶은 옥수수 조금하고 콩 70g 정도를 주면서 콩이 영양가가 높아서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또 야채로 끓인 국을 줬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음식만 먹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 오면 먹지요. 우리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실 수 있었는데, 그때는 한 끼 분량의 흰 쌀밥하고 물과 옥수수 가루를 섞어 만든 옥수수떡을 가져오셨습니다. 나는 그 밥을 먹고 나서 한주 내내 또 어머니가 오실 날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수감된 사람들이 형사상 절차의 여러 단계에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단계나 예심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미 형을 선고받고 다른 곳으로 이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수감자 2명은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지철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랑 같은 감방에 있던 수감자 중 2명은 재판 후에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90-100일간 그 곳에 있었는데, 그냥 인간 껍데기처럼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자살하지 않도록 간수들이 주시하고 있었지요……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5명이 죽었습니다. 2010년 2월에 한 여자가 2009년 화폐개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을 때 배가 고파서 자기 자식을 죽여서 먹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 여자는 뼈와 가죽만 남았는데 굶어서 죽었습니다. 2010년 6월에는 한 남자가 남의 집에 들어가 쌀 2.5kg과 북한돈 5000원(당시 쌀 8kg에 해당) 178F[179]을 훔치고 그 집에 살던 여자를 죽인 혐의로 수감되었는데, 그 남자도 굶어 죽었습니다. 또 ‘빙부’(메타암페타민, 마약의 일종)를 하다가 수감된 사람도 죽었습니다.
2014년에 박지철은 보안성 구류장에 3일간 수감되었다. 그는 휴먼라이츠워치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거기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수감되었을 때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두 달이 지나니까 그냥 죽고만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석 달이 [공식 연장]된 날은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석방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번에는 보안성 수사관이 수사 자료를 빨리 준비해서 나를 석 달간 노동단련대로 보냈습니다.
김선영의 사례
김선영(50대)은 함경북도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5년에 마지막으로 북한을 탈출했다. 그녀는 2012년 말에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후 극심한 고통을 당했다.179F[180] 그녀는 며칠간 국경 근처에 있는 보위성 운영시설로 보내졌다가 정치적 중범죄자가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고향마을의 보안성 운영시설로 이관되었다. 그녀는 5개월간 수감된 후에 일반 교화소에서 5년 노동단련형을 받았는데 그녀의 아들이 뇌물을 주어서 2년 6개월로 감형되었다. 종국에는 보안성 구류장에서 5개월을 보내고, 마지막 형기를 조금 더 사면받아 청오리 교화소에서 약 2년을 복역했다.
보안성 구류장에서 김선영은 12평방미터가 채 안되는 감방에 수감되었다. 그 감방에는 보통 12명 정도가 수감되었는데, 밤에 누워 다리를 뻗을 공간이 부족했다. 남자와 여자는 별도로 수감되었다. 수감자들은 오전 7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사시간이나 조사를 받을 때, 또는 짧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12-13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
구류장에서 구타가 제일 심했습니다. 심문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무릎에 손을 올리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 했습니다. 1시간이나 3시간 간격으로 담당 간수의 기분에 따라 10-30분간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꼼짝도 않고 앉아 있어야 했어요. 움직이면 간수가 때렸습니다. 졸면 앉았다 일어서기를 1,000번을 시킵니다. 그렇게 많이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키면 또 할 수 있습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죽을 거 같지만 그래도 합니다. 어쩔 때는 수감자 전원이 함께 벌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아주 싫어합니다.
김선영은 여자들이 신체적 처벌을 더 무서워했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더 조용히 하고 간수의 지시를 따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더 반항적이어서 더 자주 맞았다. 김선영은 맞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욕하고 모욕을 주면서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선영은 구류장에서 자신을 담당한 보위성 심문관에게 강간을 당했고, 또 다른 보안원이 심문하면서 자신의 몸을 만지고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180F[181]
김금철의 사례
김금철(30대)은 함경북도에서 한약재를 밀수하다가 2017년에 탈북했다.181F[182] 그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구류장에 수감되었다. 한 번은 중국 접경지의 보위성 운영시설에 있었고, 나머지 세 번은 중국과 접경한 그의 거주지에 있는 보안성 구류장에 있었다. 그는 매번 뇌물을 주어 구금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김금철은 2000년에 처음 밀수죄로 한 달간 보위성 시설에 수감되었다. 그는 조사를 받을 때마다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과의 연계를 의심받았는데 기독교인은 중대한 정치사건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구타와 가혹행위가 더욱 심했다고 말했다.
거기가 특별 고문실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어둡고 부러진 몽둥이가 가득했습니다. 곤봉과 막대기도 많았고요. 내가 쓰러지면 조사관들이 발로 찼습니다. 첫 날에는 보위부 요원 세 명이 심하게 때렸고, 나중에는 심문관이 합류해서 넷이서 때렸습니다. 하도 맞아서 잘못 했다고 비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한 시간 정도 맞은 후에 기절했는데, 정신이 들었을 때는 조사실에 있었습니다. 눈을 떴는데 하도 맞아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요. 도대체 그렇게 많이 맞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거기서는 자기가 안한 일도 했다고 자백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납니다. 조사관들은 한 번 때리면 서너 시간씩 계속 때렸습니다. 그냥 때리다가 질문 몇 가지 하고는 또 계속 때렸습니다. 어쩔 때는 [나와 함께 수감되었던] 친구가 쓴 자술서를 보고 나를 심문했습니다…… 나를 보안성 구류장으로 보낼 즈음에는 조사가 거의 끝났는데 우리 아버지가 [연줄을] 써서 보안성에서는 고문이나 구타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보안성] 간수들이 나를 9일간 감금시키고 8일동안 심문을 했는데 처음에 한 번, 중간에 한 번만 때렸어요. 첫 날에는 여섯 명이 들어와서 손과 발, 각목과 쇠막대기로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하루 종일 때리더라고요. 조사받을 때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여섯 명이 때릴 때는 무릎을 꿇고 앉아야 했습니다.
그는 2014년에 마지막으로 보안성에 구금되었을 때는 뇌물이 더 잘 먹혀서 가혹행위가 덜 했다고 말했다.
2-3일간 조사를 받았는데 보안성 수사관이 뺨을 때리거나 몇 차례 머리를 치는 정도였습니다…… [우리 부인이 준 뇌물 덕분에] 나는 조사관실에 오래 머물면서 쉬거나 씻거나 담배를 피다가 감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감방에 있을 때도 처우가 달랐어요. 윗선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에는 등을 똑바로 세우고 손을 무릎에 놓고 줄을 맞춰서 앉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다리를 좀 펴고 약간씩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윤영철의 사례
윤영철(30대)은 전직 정부 관료로 2018년 여름에 탈북했다. 그는 2011년 겨울에 중국
접경도시에 있는 구류장에 수감되었다.182F[183] 누군가 그를 첩자라고 보위부에 신고했다. 그는 구류장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전까지 가혹행위가 가장 심했고, 어떤 절차를 따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어느 날 저녁에 보안원 다섯 명이 우리 집에 와서 나를 체포하고는 구금시켰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한 게 없기 때문에 깜짝 놀랐는데 나를 보안소로 데려가지는 않더라고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보위부 사무소였습니다. 보안원 복장을 한 보위부 요원들이었던 거지요. 요원들은 나를 대기실에 넣었는데, 방이 작고 나 혼자였습니다. 몸수색을 한 다음에 보위부장, 당 정치부장, 수사관이 들어왔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심각했는데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30분 정도 때렸는데 군홧발로 차고 주먹으로 아무 데나 막 때렸습니다…… 다음 날에는 옆에 있는 감방으로 옮겨서 예심을 시작했습니다. 수사에 어떤 절차나 형식은 없었고 그냥 막 때리기만 했습니다…… 예심원이 처음에 무자비하게 나를 때렸는데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은 해주지 않았습니다…… 심문이 지속되고 나서야 내가 첩자로 신고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예심단계의] 심문 초반에는 언제나 가혹한 구타가 있었습니다. 군홧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온 몸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한 달 후에 자백을 거의 다 받아낸 후에야] 대우가 좀 나아지더라고요. 한 번은 조사관이 담배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구타와 모욕,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끔찍했지만 배고픈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심문 초반에 그랬는데. 정신을 못차리고 그저 살려고 버둥거리도록 일부러 굶깁니다. 더 이상 이성을 갖지 못하고 짐승이 되게 만드는 겁니다.
불결하고 비인간적인 구금 환경
구류장의 감방은 과밀하고, 수감자들은 위험하고 불결한 환경에 놓인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구금 경험자들은 감방에서 수감자들이 1인당 평균 1평방미터 정도의 공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감방은 12-15평방미터 정도였고, 한 감방에 11-16명이 수용되었다.183F[184] 앞서 기술한 것처럼,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구금 경험자들은 감방이 만원일 때는 잘 때 다른 수감자들과 몸이 닿지 않고 다리와 몸을 뻗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184F[185] 감방에는 수도나 충분한 변기 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다.185F[186]
음식은 충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구류장에서는 하루 세끼를 제공하지만 양이 적고 으깨서 삶은 옥수수 약간에 가끔 김치나 시래기국 또는 무국을 주었다.
구금 경험자 2명은 벽지에서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구류장 두 곳에서는 보안성이 운영하는 시설보다 배식량이 더 적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들이 어디에 수감되어 있는지를 몰라서 음식이나 생필품을 넣어줄 수 없었다.186F[187] 전직 보안원에 따르면, 가족이 없는 구금자들은 더 고통을 당했고 건강이 급속히 약해졌다.187F[188]
전직 보안원 2명은 원칙적으로는 구류장에서 칫솔과 비누, 이불, 깨끗한 물을 제공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할 만한 자원이 없으며 운이 좋으면 하루에 양동이로 물 몇 통을 주고 이전 구금자들이 남기고 간 이불이 몇 장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188F[189]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모든 구금 경험자들은 구류장에서 비누, 옷, 이불 등 기본 물품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고, 충분한 냉난방이나 수도시설이 없어 제대로 씻지 못했다고 증언했다.189F[190] 그들은 규모가 큰 구류장에는 감방 한쪽 구석에 변기가 있었고 가림막이 전혀 없거나 쭈그리고 앉았을 때 가슴이나 목까지 가려지는 낮은 가림막이 있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간수들이 대야에 물을 가져왔고, 어떤 경우에는 씻을 수 있는 수도가 있었다.190F[191] 소규모 구류장에서는 별도의 건물이나 공간에 변기가 있었다.191F[192] 구금 경험자 4명과 전직 보안원 2명은 구금자들이 머릿니, 빈대, 벼룩 등이 많았으나 그래도 움직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192F[193]
전직 보안원 한 명은 “규정에 의하면 구금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족이 깨끗한 옷을 가져오면 한 달에 한 번이나 겨우 갈아입을 정도입니다. 가족이 없는 [또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옷을 아예 갈아입지 못했습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여섯 달 동안 또는 구금되어 있는 기간 내내 한 번도 갈아입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193F[194]
또 다른 전직 보안원은 자신이 일했던 구류장이 냄새가 지독했다고 말했다.194F[195]
[수감자들은] 아침마다 씻고 이를 닦도록 되어 있지만, 특히 겨울에는 너무 추우니까 사람들이 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냄새가 너무 지독하니까 수감자들끼리 서로 씻으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나흘씩 씻지 않고 지내기도 하고요…… 복도에서도 냄새가 아주 지독합니다. 때로는 추운 겨울에 더운 물도 주지 않고 강제로 수감자들을 씻게 했는데, 그러면 수감자들이 겁을 먹고 안 씻으려고 합니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어떤 사람들은 잠도 잘 못 잡니다. 환기 때문에 항상 창문을 열어놔야 했고요…… 나는 [제복에서 나는 냄새때문에] 불평을 들으니까 퇴근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습니다.195F[196]
여성 수감자들은 구류장에 생리대가 없어서 입고 있던 옷이나 가족이 들여보낸 옷을 찢어서 썼다고 말했다. 때로는 가족들이 생리대를 사다주도록 보안원에게 돈을 주기도 했다.196F[197] 그러나 한 전직 보안원은 많은 간수들이 여자들의 생리에 신경쓰지 않았으며, 때로는 여자 수감자들이 바지에 그대로 생리를 흘렸지만 갈아입을 옷도 없고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고 말했다.197F[198]
백설희의 사례
백설희(40대)는 평안남도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7년에 탈북했다. 198F[199] 그녀는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대 초에 금지된 물건들을 판매한 죄로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보안성 구류장에 두 달간 수감되었고, 2016년에는 자신보다 연줄이 좋은 당원과 싸움에 휘말려 한 달간 다시 수감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0년대 중반에 함경남도에 있는 군 단위의 보안성 구류장에 그리고 1년 후에는 양강도에 있는 군 단위의 국가보위성 구류장에 수감되었다.
백설희는 보안원들로부터 순천에 있는 보안소가 모범으로 간주된다는 말을 들었다. 구류장, 대기실, 노동단련대의 환경이 좋아 전국의 보안원들이 현장학습 차원에서 그곳을 방문했다. 백설희는 그 시설들이 2015년에 리모델링되어 자신이 두 번째로 그곳에 수감되었을 때는 환경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모든 세면용품은 수감자들의 집에서 가져왔습니다. 수감되면 보안원이 가족들에게 알리고 담당 수사관이 가서 비누나 치약, 칫솔, 수건, 생리대 같은 것을 가져옵니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간수들이] 칫솔의 몸통은 잘라버리고 머리만 남겨놓아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세면용품이 없어서 다른 구금자들의 물건을 써야 했습니다. 다들 비슷한 처지니까 여자들은 물건을 다 나눠썼는데 남자들은 안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가족이 없는 남자들은 고생이 더 심하고 머릿니가 들끓는데 다른 남자들이 신경도 안 썼다고 (물건을 나눠쓰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처음 구금되었을 때 나는] 가족들이 생리대를 보내줬습니다. [가족이 없는] 구금자 한 명은 양말을 빨아서 생리대로 쓰는 걸 봤습니다. 2016년에 우리가 보안원들한테 생리대 좀 달라고 요청해서 보안원이 밖에 가게에 가서 사다 줬습니다. 돈을 안 줘도 보안원들이 갖다 주더라고요.
[2010년대 초에는] 대기실이 지하에 있었는데 어둡고 시멘트 바닥에 시설이 아주 열악했습니다…… 대기실에 있을 때는 오전 5시에 일어나서 30분 안에 자리를 청소하고 세수를 했습니다. 6시부터 30분간 식사를 하고 나서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가 정오에 30분간 점심 먹고, 오후 7시에 30분간 저녁을 먹었습니다. 10시에 취침했고요. 자리에 앉아서 한 자세로 꼼짝 않고 있어야 했습니다. 세 줄로 맞춰서 손을 무릎에 놓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심문받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감자들이 미동도 않고 앉아 있어야 했어요.
대기실에 있던 50일 중에 10일간 조사를 받았습니다. 순천 구류장에는 카메라가 있어서 간수들이 카메라를 통해서 감방을 감시했습니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수감자 전원을 일어서게 했습니다. 독한 보안원들은 한 시간씩 서 있게 합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단체로 벌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못 먹어서 몸이 허약해져 가지고 쓰러지는 사람도 봤어요. 대기실에서는 우리를 때리지 않았지만 구금실에서는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렸습니다.
음식은 [내가 수감되었던 두 기간이] 비슷했습니다. 음식은 아무 것도 나아진 게 없었어요. 수감자들이 배가 고파 고통을 당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보안성에서는 음식을 바꾸지 않는 것 같아요…… 음식은 삶아서 으깬 옥수수인데 다섯 숟가락 정도를 줬습니다. 70그램이라는데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국은 없었고, 물에 야채하고 소금을 넣어서 끊인 걸 줬습니다. 날마다 같은 음식을 줬어요.
백설희는 대기실에서의 환경과 처우199F[200]가 구류장 감방에서보다 더 가혹했다고 말했다.
대기실이 구류장보다 더 심했습니다. 구류장에서는 조사와 심문이 끝나면 외부에서 음식을 들여보내도록 해줬는데, 대기실에서는 완전히 금지시키더라고요…… [대기실에 있을 때는] 면회가 없습니다. 가족들이 돈을 주면 음식을 넣어주도록 허락하지만 수감자한테 전달을 안 해줍니다. 가족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거기다는 전달하겠다고 말하고서는 안 줍니다. 대기실에서는 그래요…… 구류장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음식을 넣어줄 수 있었습니다. 면회는 안되지만 간수에게 먹을 것하고 쪽지를 주면 간수가 전해줍니다. 뇌물을 주면 간수가 별도 공간에서 가족을 면회할 수 있게 해주고요. 우리 남편이 뇌물을 좀 줘서 한 번 남편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음식은 대기실하고 구류장이 비슷했습니다. 구류장에서는 밖에서 음식을 보내주니까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어요…… 밥하고 튀긴 옥수수 가루나 말린 찹쌀밥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받았어요. 그러면 거기다 물을 부어서 먹습니다. 말린 생선이나 해산물, 된장에 양념한 고기 같은 반찬도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었지만 상할 수 있으니까 너무 많이 받을 필요가 없지요.
심문 받으면서 맞았습니다. 맞는 답을 해도 때려요. 뭔가 더 나올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처음에 수감되었을 때] 3일간 아주 심하게 맞았습니다. 발로 차고 벽에 얼굴을 박았어요. 하도 맞아서 온 몸에 검은 멍이 들었습니다. 수감 초기에 많이 때리더라고요. 밀수에 관여한 사람들이 많지만 이름을 다 대면 형이 길어지니까 말을 안 했어요. 말할수록 지은 죄가 더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아무리 해도 말을 안 하면 계속 때릴 수가 없거든요. 때려서 [심하게 상처가 나거나 죽으면] 보안원이 욕을 먹습니다. 사흘간 맞은 후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눈이 정말 아팠어요.
화장지가 없어서 다들 물로 씻었습니다. [2010년대 초에] 대기실에 있을 때는 물로 씻었는데 구류장에서는 가족들이 화장지를 넣어줬어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물을 썼고요. 대기실에서는 기본 비품만 허용됩니다.
백설희는 순천 보안소 대기실이 8x7미터 크기로 보통 대기실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20명 정도를 수감시켰는데, 많을 때는 30명까지도 수감되었다.
한 면은 쇠창살로 되어 있고 나머지 세 면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습니다. 뒷 벽에는 환기용으로 작은 창문이 있었고요. 변기는 뒤쪽 구석에 있었는데 가림막은 없었습니다. 구류장에서는 허리까지 가리는 가림막이 있었어요. 대기실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해서 범죄를 자백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물탱크 옆에 변기가 있었고…… 물탱크는 돌과 시멘트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거기에 수돗물을 받아서 변기에 쓰고 또 마실 물로 썼습니다. 몸도 씻었고요. 나는 겨울에는 안 씻었는데, 여름에는 다들 냄새가 나니까 간수들이 수감자들한테 씻으라고 했습니다. 씻을 때는 이불로 가리고 씻습니다. 낮에는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니까 못하고, 밤에 간수들한테 부탁해서 밤마다 두세 명이 씻을 수 있었습니다…… 속옷도 빨아서 난로에 말릴 수 있었고요. 난로는 (겨울에) 하루 2-3시간씩 틀었습니다.
대기실에서는 들어올 때 입고 있던 옷을 계속 입었고요. 구류장에서는 가족들이 깨끗한 옷을 보내줬습니다.
백설희는 자신이 수감되었던 다른 두 곳은 규모가 더 작고 외진 곳에 있었으며, 순천 구류장보다 상황이 열악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0년 중반에 함경남도에서 보안성이 운영하던 구류장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감자들이 생리를 하면 간수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입고 있던 속옷을 찢어서 썼습니다. 변기는 감방 뒤쪽에 있었는데 얼굴 밑까지 가려지는 가림막이 있었고요. 변기 청소용으로 큰 통에 물이 담겨 있었는데 세수를 하는데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밖에 나가 햇볕을 쬐게 해줬는데 그때 마당에 있는 수도를 이용해서 세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는 칫솔도 없고…… 화장지도 없었습니다. 한 번은 2주일간 화장실에 가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거의 먹는 것이 없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물로 씻었던 거 같아요…… 대기실에는 이불이 없었는데, 구류장에서는 1인당 한 개씩 있었습니다.
순천에서는 옷을 빨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못했습니다…… 대기실에 이불이 없어서 갖고 있던 옷을 입었고요. 구류장에서는 다른 수감자들이 나갈 때 놓고 간 이불이 있었는데 그 이불을 빨 수가 없었습니다.
순천 구류장에서는 여름에 모기를 빼고는 벌레가 없었는데, [함경남도에 있는] 구류장에서는 머릿니가 하도 많아서 남자들이 옷을 벗으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간수들이 이 잡을 시간을 주면서 10분간 옷을 벗고 이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남자 수감자들은 게을러서 청결하게 안 했어요. 얼굴도 안 씻더라고요.
백설희는 1년 후에 외국과 불법 통화를 한 혐의로 중국 접경지인 양강도에서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구류장에 수감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겨울이었고 아주 추웠습니다. 한 남자 수감자의 발이 얼어서 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간수가 그 남자의 다리를 눈으로 마사지해서 고치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남자는 석방되었는데 소문으로는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어요. 그 보위성 요원이 걱정이 되어서 병원에 가서 그 남자 다리를 자르지 말라고 하고 필요한 약값을 자기가 대겠다고 했대요.
환경이 아주 끔찍했는데 거기가 저 북쪽 외진 곳에 있어서 더 그랬어요. 감방은 쇠창살이 아니라 나무 창살로 되어 있었고, 난방 기구가 없었습니다…… 바닥이 시멘트여서 너무 추웠고 벽이 허연 얼음으로 뒤덮였어요. 그래서 수감자들 발이 얼고 제 발도 얼었습니다. 보위부 사무실에는 난로가 있는데 감방에는 없었어요. 여자 수감자가 6명이었는데 이불이 2장 밖에 없었습니다. 모여서 함께 잤는데도 몸이 꽁꽁 얼었어요. 그 남자는 끝방에 있었는데 거기는 더 추웠을 거에요. 그래서 동상이 더 심했어요. 감방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내가 있던 감방에 여자가 6명 있고, 다른 감방에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있었어요. 여자와 남자를 분리시킬 공간이 없었습니다.
변기는 마당에 있었는데 전체가 함께 가야 했습니다. 변기는 시멘트 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은 거였는데, 간수들이 따라왔습니다. 물이 없어서 [2주일에] 한 번도 세수를 못했습니다. 볼일을 본 후에는 눈을 조금 집어서 손을 씻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일주일간 조사를 받았는데, 맞지는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환경이 너무 끔찍했고 처벌도 더 가혹했어요. 순천에서는 벌로 서 있으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팔을 위로 들거나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게 훨씬 더 힘들었어요. 또 어쩔 때는 얼굴을 바닥으로 하고 엎드렸다가 일어서기를 반복시킵니다. 맞는 대신 거의 날마다 그런 벌을 받았어요. 괜찮은 간수들은 30분간 벌을 줬지만 독한 간수들은 한 시간씩 벌을 줍니다. 조사하기 쉽게 만들려고 그런 거지요.
나는 사건을 담당한 보위성 간부에게 3,000위안[미화 480달러]을 줘서 2주만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허윤미의 사례
허윤미(50대)는 함경남도에서 회계사로 일하다가 2015년 가을에 탈북했다.200F[201] 그녀는 2015년에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구류장에 수감되었다(허윤미의 사례는 ‘구타와 가혹행위’ 부분에도 설명되어 있다). 큰 딸이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가려다 붙잡혔고, 그 딸과 함께 탈북하려 했던 또 다른 여성도 붙잡혔다. 보위성 요원들이 허윤미의 집에 와서 그녀와 그녀의 딸을 체포해 수감시켰다. 군복무 중에 결핵 판정을 받고 일찍 전역한 딸은 사흘 후에 풀려났고 허윤미는 일주일 후에 풀려났다. 허윤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우리는 직장도 좋고 진술도 좋아서 일찍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큰 딸이 자기가 결핵때문에 군에서 전역했는데, 동생이 중국에 좋은 약이 있다더라 해서 그걸 좀 알아보려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딸 아이가 탈출하다 붙잡힌 게 아니고 집에 있어서 우리는 안전했는데, 그 젊은 여자는 탈출하다가 붙잡힌 거라 더 오래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여자하고 우리 딸은 붙잡히면 절대 남한으로 가려고 했다는 자백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남한으로 가려 했다는 게 밝혀지면 완전히 끝이거든요. 다행히 그 여자가 자백을 안 했습니다. 우리 딸은 자기는 탈출 시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내가 자기한테 아는 사람을 소개해줬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래서 사흘만에 풀려났습니다. 또 내가 일하는 국영 기업소에서 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거기서 연줄을 써서 나를 도와주기도 했고요.
허윤미는 전반적인 환경이 끔찍했다고 증언했다. 그녀가 수감되었던 감방은 작고, 수감자 수가 많고, 추웠다. 제공된 음식은 불충분했다(삶은 옥수수와, 소금과 야채를 넣고 끓인 국이 하루 세 번 나왔다). 위생상태는 열악했다. 그녀는 수도가 있어서 수감자들이 작은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감방을 청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곳이 함경남도의 중심도시인 함경에 있는 큰 구류장이어서 다른 곳보다 상황이 나았다고 말했다. 그곳에서는 남한으로 탈북을 시도한 사람들201F[202], 대규모 밀수업자, 휴대전화 사용자, 대형 마약 사건, 밀수와 같은 중요 사건들을 다루었다.
그 구류장에는 1층에 감방이 있고 2층에 조사실이 있었어요. 감방이 정확히 몇 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본 건 7개입니다. 2개는 남자용, 3개는 여자용, 2개는 개인 수감용…… 제가 있던 감방은 30평방미터 정도 되는 공간에 20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복도 쪽에는 쇠창살이 있고 뒤쪽에 작은 문이 있었습니다. 변기가 왼쪽 뒤편에 있었고, 수도 호스가 있었는데 변기에 연결되어 있어서 물을 많이 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용변을 본 후에 쓸 수 있었습니다. 물이 안 나올 때가 많아서 항상 물 탱크를 채워놨어요…… 낡은 도기로 된 구식 변기였는데 여기처럼 깨끗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림막은 없었고요.
여자들이 생리할 때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방에서 반장 수감자가 화장지를 조금씩 나눠줬는데…… 양이 제한되어 있어서 많이 쓸 수 없었는데 생리할 때 화장지를 썼는지도 모르죠…… 나는 머리를 못감았는데 오래 수감된 사람들도 머리를 안감았습니다. 비누는 조금 있었지만 샴푸는 없었고요. 옷도 못갈아입었습니다. 거기서 오래 있던 사람들은 가족들이 가끔 새 옷을 넣어줬습니다. 빨래를 할 수는 없었고요…… [겨울이었는데] 수감자 20명에 이불이 5장 밖에 없었습니다. 복도에 나무 때는 난로가 있었지만 감방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동상 걸린 사람은 못봤습니다.
수도가 있었고 작은 플라스틱 통을 써서 씻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 통을 이용해서 [감방] 청소도 했고요. 날마다 세수를 할 수 있었는데 한두 달씩 세수를 안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정치범 수용소나 일반 교화소로 갈 걸 아는 사람들은 세수같은 거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물은 찼고 더운 물은 없었습니다. 또 이도 닦았고요. 칫솔은 그릇 하나에 담아뒀다가 씻는 시간이 되면 나눠줬습니다. 아무 칫솔이나 집어서 쓰고 [간수들에게] 즉시 돌려줬습니다. 치약은 없고 소금을 줬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씻고, 이 닦고, 감방 청소하고 나면 6시에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옥수수 1개하고 야채랑 소금을 넣어서 끓인 국을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줬습니다. 오래 있는 사람들이나 나중에 교화소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질 사람들[또는 중형을 받은 사람들]은 두부 약간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옥수수를 좀더 받았습니다. 거기 가면 엄청 고생을 하니까 죽지 않게 하려고 음식을 더 줬어요.
윤영철의 사례
윤영철은 중국 접경도시에 있던 보위성 구류장에 수감되었고, 5년 형기를 받고 일반 교화소로 이감되기 전에 보안성 구류장에 수감되었다(그의 사례는 ‘구타와 가혹행위’ 부분에도 설명되어 있다).202F[203] 윤영철은 한약재, 구리, 금과 같은 금지 물품을 중국으로 밀수해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2011년 말에 누군가 그를 첩자라고 국가보위성에 고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감 환경이 가혹했다고 증언했다.
겨울이었는데 난방 장치가 없었습니다. 우리 바로 앞쪽에 간수 옆에는 작은 나무 난로가 하나 있었습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밖에서 물건을 들여보내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추웠는데, 빈대같은 것이 너무 많아서 더 힘들었습니다. 나무 바닥은 딱딱하고 차가웠고요…… 감방 뒤쪽 구석에 수도와 물탱크가 있고 그 옆에 변기가 있었는데, 몸 일부를 가릴 수 있는 가림막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냄새가 지독했는데 여름에는 아마 더 심할 겁니다.
배고픈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나는 항상 배가 고팠어요…… 아침에는 갈아서 끓인 옥수수를 그릇의 1/3 정도 채워 주고, 같은 그릇에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넣어주는데 서너 숟가락이면 끝났습니다. 숟가락은 자해를 하지 않도록 손잡이 부분이 없었습니다. 점심으로는 옥수수 국수 한 그릇을 줬고, 저녁은 아침과 똑같이 옥수수에 국을 줬습니다.
오전 6시에 일어나고 저녁 10시에 취침했습니다. [조사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니까 엉덩이 피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피부와 근육이 죽기 시작하는 겁니다. 책상다리를 하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움직이면 안되었습니다. 움직이면 발로 엉덩이를 차거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켰습니다…… 어쩔 때는 우리가 움직이거나 말을 하면 손을 창살 밖으로 내밀라고 해서 총으로 손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손이 퉁퉁 붓고 너무 아파서 다시는 손을 못 쓸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거기에 의사가 있어서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다거나, 치료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습니다…… 거기서는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또 그렇게 짐승이 됩니다.
보위부 사무실에는 심문을 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이 있었고, 그 옆에 감방 세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자용, 하나는 여자용, 그리고 나머지 하나에는 조선족 남자 한 명이 북한 여자들을 도와준 죄로 10일간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감방에 남자가 8명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은 보안성으로 넘겨졌고, 다섯 명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그 중 네 명이 남한으로 가려고 했다고 자백한 경우였지요.
그는 뇌물을 썼고 6개월 후에 국가보위성으로부터 첩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윤영철은 국가보위성이 자신의 집을 수색해서 현금 다발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술서에서 그 돈의 존재는 절대 언급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돈을 이용해서 보위성 요원들에게 뇌물을 줬다. 그 후에 보위성은 그를 보안성으로 넘겼다. 그는 같은 지역에 있는 보안성 구류장에 두 달간 수감되었는데, 대부분의 조사가 끝났기 때문에 보안원들이 때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보안성 구류장에서도] 하루 종일 시선을 아래로 하고 책상다리를 한 채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1시간 간격으로 10분씩 휴식시간이 있지만 그건 담당 간수 맘이라 두 시간 넘게 계속 앉아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불만을 제기하면 등이나 다리를 발로 차거나, 때리거나, 벌을 줍니다.
감방은 항상 수감자들이 가득 차 있었고, 감방이 12개로 6개는 여자용, 6개는 남자용이었습니다. 한 감방에 9-10명 또는 12명씩 해서 수감자 수가 항상 150-160명 정도 되었습니다. 공간이 부족해서 저녁에 잘 때 제대로 눕기가 어려울 정도였고요. 감방은 11-12 평방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오전 6시에 기상해서 7시30분에 아침밥을 먹고, 정오에 점심, 오후 6시에 저녁식사하고, 10시에 취침했습니다. 모든 고통 중에서도 배고픈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추웠습니다. 보안성에서 이불하고 겉옷 같은 것을 주도록 되어 있지만 안 줬습니다. 이전 수감자들이 가족에게 받아서 쓰다가 놓고 간 이불하고 겉옷이 조금 있었습니다. 너무 더럽고 거기 상황이 그렇게 역겨우니까 사람들이 집에 안 가져 가려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서 뇌물을 쓰면 옷이랑 음식, 담배, 비누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거주지 도시가 아니어서 아무 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남기고 간 이불하고 겉옷 한 장을 겨우 얻었죠.
뇌물과 연줄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모든 북한인들은 뇌물을 주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수감 중에 더 나은 처우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많은 경우 법집행관들은 그들의 ‘범죄’를 묵인하거나 축소시켰다. 구금되더라도 구류장에 수감되지 않거나 공식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풀려났다. 또 평양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달라지기는 했으나 노동단련대나 일반 범죄자 교화소에서 더 짧은 형을 받거나 형을 유예받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203F[204]
휴먼라이츠워치와 인터뷰한 모든 북한인들은 범죄를 저지르다가 붙잡히면 뇌물을 줄 능력이 되는지 그리고 구속과 초기 수사 및 예심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연줄이 있는지 여부가 석방이나 형을 단축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증언했다.204F[205]
함경북도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5년에 탈북한 김선영(50대)은 2012년 말에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어 조사를 받았다.205F[206]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수사과정이 복잡해서 형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관료와 기관에 뇌물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시기가 중요한데 잘못하면 돈만 잃고 마는 수가 있습니다…… 내가 수감되어 있을 때 우리 아들이 힘을 써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았는데 거기에 딱 맞는 고위 관료하고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급이 좀 낮아도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한테 뇌물을 주고 내 이름으로 중앙은행에 ‘기부’를 했지요. 중앙은행이 증서를 발급해줘서 아들이 당국에 제출을 했습니다. 그것이 재판에서 도움이 돼서 형 절반을 유예 받았습니다.206F[207]
북한에서 회계사로 인한 허윤미는 2015년에 국가보위성에 수감되어 있을 때 친척들이 그녀를 최대한 빨리 석방시키기 위해 뇌물을 썼다고 증언했다.207F[208] 허윤미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가보위성에 수감되면 아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우리 경우에는 달랐지만요. 우리가 그렇게 빨리 풀려나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우리 인민반의 보위성 요원이 우리가 보위성에 체포되었다고 소문을 냈거든요. 우리 딸이 남한에 있으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많이 줄 수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보위성 요원 덕분에 우리 친척들이 또 우리가 수감되고 나서 사흘만에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냈습니다. 우리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서 그 조사관의 부인한테 연락해가지고 1,000위안[미화 160달러]을 줬습니다. 친척들이 또 인민반 보위성 요원을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했고요. 관료들은 뇌물을 무조건 받지 않고, 먼저 사건과 진술을 본 다음에 결정을 합니다. 나는 일주일 후에 풀려났고 뇌물을 줘서 20일 노동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서류를 갖고 노동단련대 사무소에 갔다가 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담당 보안원 한테 700위안[미화 100달러]을 줬거든요. 노동단련대에는 팔삼(8.3)을 바쳤습니다.208F[209] 노동을 피하려고 할 때 주는 뇌물은 그렇게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만 형을 사는 거지요. 209F[210]
김금철의 사례
김금철(30대)은 함경북도에서 한약재 밀수를 하다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수감되었다(그의 사례는 ‘구타와 가혹행위’ 부분에도 설명되어 있다). 그는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어떻게 더 나은 처우를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그의 경험으로 볼 때 뇌물은 수사 유형과 담당관, 연줄, 시기가 중요했다.210F[211] 그는 2000년에 중국 접경지에 있는 보위부 구류장에 있을 때는 뇌물을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거주지인 청진에 있는 구류장으로 이송되었을 때는 뇌물을 써서 가족들을 면회하거나 비누, 옷 같은 것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또 자신의 거주지에 있는 보안성 구류장에 있을 때 자신의 부친이 연줄을 써서 보위부 간부의 집에 새 담장을 쌓아주기로 하고 이송 관련 서류와 신속한 처리를 보장받았다고 말했다. 김금철의 부친은 또 보안성 조사관에게 노동단련대 3개월형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주는 대가로 돼지 한 마리를 주었다.
김금철은 2000년 중반에는 수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연줄이 보위부에 없어서 뇌물을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감되어 있던 곳이 보안성이 운영하는 구류장이어서 음식을 조금 더 받을 수 있었다. 2014년에 그가 마지막으로 수감되었을 때는 뇌물을 줄 수 있었다. 그의 아내가 사건을 담당하는 보안성 수사관의 부인에게 북한돈 100,000원[쌀 15-25kg]과 담배 네 보루를 주었고, 그의 부친은 또 고추와 다른 농산물을 큰 자루로 하나 전달했다. 그렇게 뇌물을 준 덕분에 그의 가족이 날마다 면회를 올 수 있었고 담배나 다른 물건들을 들여보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6개월 노동형을 받았지만 15일만 복역했다고 말했다. 또 노동단련대 소장과 연줄이 있어서 거기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대신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역할을 했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 노동단련대 소장에게 담배 두 보루를 주었다. 김금철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위부 구류장에서는 숫자로 불렸는데, 보안성에서는 번호가 있기는 했지만 이름이나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나한테는 ‘도망’이라고 불렀어요.
[군 단위의] 보위부는 정치범을 심문하는 감방이 하나 밖에 없어서 정치범들을 보안성 구류장에 수감시켰습니다. 두 시설은 3분 거리에 있었어요…… 보안성 구류장은 지하에 있었습니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어떤 감방은 맨 시멘트 바닥이었습니다. 우리 형님이 [2000년대 초에 거기에 수감되었을 때는] 바닥에 나무를 대지 않은 감방에 있었답니다. 그곳 시설은 [2000년대 초부터 2014년 사이에] 별로 바뀌지 않았는데 2014년에는 새로 나무 바닥을 깔았더라고요. 모든 감방에 나무를 깔았던 거 같습니다. 한 감방에 최대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2000년대 중반에] 내가 있었을 때는 6명, 2014년에는 10명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시멘트 벽에 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과 문이 있었고, 다른 세 면은 그냥 벽이었습니다. 환기구는 없었습니다. 복도에는 전등이 있었지만 감방에는 없었고요…… 뒤쪽에 변기가 있었고, 가림막이 있어서 앉으면 목까지 가려졌습니다. 화장지하고 1인당 베개와 이불 한 장씩을 줬습니다. 다른 수감자들이 놓고 간 것도 있고 가족들이 들여 보내준 것도 있었고요. 나는 집에서 하나 가져와서 나올 때 거기다 놓고 왔습니다. 수도는 없었고, 1층에 있는 부엌에 펌프가 있어서 변기에도 쓰고, 씻거나 마시는 물로도 썼습니다.
친척들 면회는 안됐지만 밖에서 음식이나 옷, 비누, 치약 같은 세면용품을 받았고 더러운 옷을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간수들이 밖에서 들여보낸 옷과 음식을 모두 조사했습니다. 나는 이는 안 닦았습니다. 돈이 좀 들어오면 간수들한테 주고, 규정에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담배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담배 다섯 갑 값을 주면 한 갑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범죄자나 [수사 또는] 예심 단계에 있는 사람한테는 안해주고, 나처럼 노동단련대에서 단기형을 받은 사람들한테만 해줬습니다
그 구류장에서는 하루에 세 끼를 줬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날마다 밖에서 음식을 들여보내게 해줬어요. 우리 아버지가 그 보안원들을 잘 알아서 담배를 여러 갑 줬습니다. 구류장에서 나오는 음식은 대개 삶은 옥수수하고 배추입니다. 나는 옥수수 가루를 받아서 거기다 물을 섞어 옥수수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간수들이 밖에서 음식을 들여보내도록 허락해줬지만 감사 표시를 해야 했어요. 2014년에는 일주일에 한 번 밖에서 음식을 들여보낼 수 있었는데 [뇌물 덕분에] 내 담당 수사관이 자기 사무실로 불러서 옷과 음식을 전해줬습니다. 나는 거기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 씻거나 담배를 피우다가 저녁에야 감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임옥경의 사례
임옥경(40대)은 황해남도에서 밀수를 하다가 2016년 여름에 탈북했다. 211F[212] 그녀는 뇌물과 연줄이 장기 수감이나 고문, 가혹한 처우를 피하는데 아주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014년에 임옥경은 중국산과 한국산 가정용품 수십 개를 북한으로 밀반입하다가 체포되어 양강도의 중국 접경지에서 보안성이 운영하는 구류장에 수감되었다. 그녀를 도와주던 군인이 보안성과 문제가 생겼고 임옥경이 구금되었다.
중간급 당원인 그녀의 남편과 삼촌, 남편의 친구가 연줄을 이용한 덕분에 임옥경은 10일만에 석방될 수 있었다. 그 도시의 보안소 소장이 남편의 친구여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북한에서 아주 고급으로 간주되는 일본산 담배인 ‘평화’ 담배를 주었다. 임옥경은 보안소 소장에게 담배밖에 안 주었지만 자신의 남편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내가 좀 배짱이 있었어요. 젊은 간수가 나한테 뭐라고 하길래 내가 되받아쳤지요…… 보안원들은 누가 ‘법관’을 모욕하고 맞서 싸운 것은 처음이라면서 나를 구류장으로 보냈습니다. 하루동안 대기실에 있다가 구류장 감방으로 옮겼습니다. 보안원들은 그 군인하고 문제가 있었지만 그를 공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내 사건을 처음 보고하는 사건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더 빨리 나왔겠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 삼촌과 남편, 남편 친구가 연줄을 썼을 때는 이미 10일이나 지났습니다.
임옥경은 연줄을 쓴 덕분에 구류장에서 개인 감방에 수감되었지만, 간수와 싸운 것 때문에 잠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5일 동안 서 있게 하고 잠도 재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내가 여러 해 동안 밀수를 해서 아는 ‘법관’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아는 간수가 들어오면 나한테 고생한다면서 사탕도 주고 앉아서 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면이 없는 간수가 감시할 때는 잠을 재우지 않았고, 한 젊은 간수는 나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간수들이 계속 감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발소리가 나면 얼른 일어나곤 했습니다. 처음 5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조사를 받은 3일간 구타를 당했고 대기할 때는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수감된 날에 맞았습니다. 대기실에서는 간수들이 때리지 않았는데, 구금시설의 개인 감방으로 옮겨진 후에는 심문하면서 때렸습니다…… 조사는 책상에서 했는데……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수시간 동안 모든 이야기를 써야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쓴 것을 봅니다. 다음날에 예심원이 들어와서 내가 쓴 것이 거짓말이라면서 다시 쓰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쓴 글을 비교하면서 또 질문을 합니다. 이야기가 서로 맞지 않으면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요. 내가 내 권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니까 더 때리더라고요.
예심원이 갖고 있던 서류에 내가 [북한으로 가정용품을 밀수하고 중국으로 금지된 금속을 반출했다고] 되어 있었어요. 예심원이 거기에 대해 물었는데 내가 계속 대답을 안 하니까 나를 때렸어요. 맞으면서 내가 이게 내 권리를 침해하는 거라고 말하니까 나를 더 세게 때리더라고요…… 심문은 [연줄을 통해 압력을 넣은 덕분에]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사흘 정도.] 예심원은 어느 정도 증거를 갖고 있었지만, 도보안국 정치부장과 시보안서 정치부장이 압력을 넣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첫 날에 구타가 제일 심했습니다…… [개인 감방에 있을 때] 지나가던 간수들이 나를 때리거나 발로 찼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도 항의를 했어요. 그러면 더 때릴 것을 알았지만 내 남편의 연줄을 믿고 있었습니다…… 대기실에 있던 날은 책상다리를 하고 무릎에 손을 얻고 앉아 있어야 했어요.
수감 중에 임옥경은 거의 음식을 받지 못했고 난방 장치도 없었다고 말했다.
5일간 구금된 후에 연줄을 통해 압력을 넣은 것이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았고, 밖에서 들여온 음식을 조금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밖에서 음식을 가져올 수 없었어요. 이도 닦고 세수도 할 수 있었고요. [겨울이라] 엄청 추웠는데 내가 아는 간수가 면으로 된 겨울 옷을 가져다줬습니다. 첫 사흘 간은 쌀밥은 전혀 안 주고 삶은 보리하고 된장에 배추 넣어 끓인 국을 조금 줬습니다. 저녁에는 삶은 옥수수를 줬고요. 사흘간 그렇게 굶고 나니까 보리밥이랑 옥수수밥도 맛있더라고요.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이불을 한 장 줬어요. 너무 추워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개별 감방은 2.5평(8.2평방미터) 정도였는데 전기가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아래층에는 다른 감방이 있었는데 [벽이 하도 얇아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랑 [간수들이] 욕하는 소리가 다 들렸습니다.
석방된 후에 임옥경은 겁이 나서 밀수를 중단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금지된 물품들을 다시 밀수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임옥경은 남한에서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조직들과 일을 했고 중국산 휴대전화를 북한으로 밀수했다. 그녀의 고객 중 한 명이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붙잡혀서 그녀의 이름을 댔고 보위성 요원 다섯 명이 집에 와서 그녀를 체포했다. 우연히도 그 요원 중 한 명이 임옥경 남편의 대학 동기여서 도 단위의 보위부 건물 공사 명목으로 그에게 5,000위안(미화 800달러)을 주어 사건을 마무리했다.
진솔의 사례
진솔(30대)은 양강도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2017년에 탈북했다. 그는 2013년에 보안성에 거의 반년간 수감되었고, 2016년에는 남한으로 탈북을 시도하다가 국가보위부에 반년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수감되었다. 그는 자신이 보안성에 연줄이 있었고 돈도 약간 있었지만 물가가 올라 뇌물이 감당 못할 수준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212F[213]
2013년에 [밀수를 하러] 중국에 갔는데 붙잡혔습니다…… [우리 마을에 있는] 보위부에는 구류장이 없어서 [거의 반년간] 보안성 구류장에 수감되었고 10일간 보위부 요원한테 심문을 당했습니다…… 우리 마누라가 구류장의 최고참 간수한테 연락을 해서 100위안을 주고 한 번 면회를 왔습니다. [일반 교화소에서] 장기 노동형을 면하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 안되어서 [2년 노동형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병 진단서로 나를 빼내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김정은이 중국으로 불법 월경하는 행위를 엄벌하라는 지시를 내려서 그것도 무산이 됐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체검사에서 간염과 결핵에 대해 잘 써주기로 보안소장과 합의를 했는데 새 지시때문에 마지막에 돈을 더 요구해서 [마누라가 그 돈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고참 간수와 다른 간수들한테 돈을 많이 써서 면회도 오고 음식도 들여보냈지요. 어떨 때는 담배를 피우거나 감방 밖에 나가서 눈도 치우게 해줬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씩은 밖에 나갈 수 있었어요. 하루 종일 꼼짝 못하고 앉아 있다가 밖에 나가서 움직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뇌물이 언제나 가혹행위를 막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진솔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13년에] 움직이면 앉았다 일어서기,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철창에 매달려 있기 같은 것으로 벌을 받았습니다. 어떤 간수들은 철창 사이로 얼굴을 내밀게 하거나 손을 내밀게 하고 막대기나 총으로 때렸습니다. 간수들이 기분이 아주 나쁠 때는 감방 안에 들어와서도 때립니다. 이런 일이 날마다 일어났는데, 우리 감방 아니면 다른 감방에서 벌받는 소리가 들려서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당] 안전위원회 결정이 있기 전에 조사받는 과정에서도 맞습니다. 심문관이 의자에 앉혀 놓고 나를 심문했는데 수갑은 채우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보위부 수사관한테 수사 초기에 일주일 정도 맞았는데,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조사실에서 날마다 맞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구타는 가혹했습니다. 보위부 구류장은 [보안성 구류장보다] 더 깨끗하고 좋았지만 두려움과 공포감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컸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어요. 보위부 간수들은 군복을 입습니다. 나는 일주일간 지독하게 맞았는데…… 거의 살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정도였어요. 나는 연줄도 없고 [돈도 없고] 남한으로 가려다 붙잡혔거든요. 거기는 100명이 들어가면 [연줄이 있는] 10명 정도가 경고 처분을 받고, 70명은 정치범 수용소로 가고, 20명 정도가 보안성으로 보내집니다…… 내가 있을 때는 50명 이상의 수감자가 [정치범 수용소로] 사라졌습니다.
남한으로 탈북을 시도하는 행위는 중대한 정치 범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2016년에 그는 양강도에 있는 보위성 구류장에 수감되었다. 그는 연줄이 여전히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뇌물을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 6개월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수감되어 있다가 중국에 함께 갔던 사람의 배경과 연줄 덕분에 경고와 사회교양처분만 받고 풀려났다고 증언했다.
V. 관련 국제인권법과 기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인 처우와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의 당사국이다. 고문당하지 않을 권리는 또한 모든 국가에 구속력이 있는 국제법 상의 강행규범이다. 북한 정부는 또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범(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그리고 차별의 한 형태로써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을 금지하는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을 비준했다. 북한은 또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된 국제관습법의 구속을 받는다.213F[214]
공정한 재판과 정당한 절차에 대한 권리
이러한 기본권리협약들은 장기간에 걸쳐 관련 조약기구의 해석과 설명, 유엔이 천명한 국제 원칙, 그리고 상당한 국제적 판례들을 통해 보완되었다. 일례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4조에 명시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독립적인 사법부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포함하는데, 독립적인 사법부를 위해서는 국가가 법률과 실천에서 독립성을 보장하고, 사법적 결정에 대한 압력이나 영향, 개입, 수정을 금지해야 한다.214F[215]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감시하고 해석하는 공식 조약기구인 유엔 자유권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제14조 하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일반 논평 제32호를 발표하여 사법부의 역량과 독립성, 공정성 요건에 예외가 없으며, 사법부는 “그 결정에 대한 모든 형태의 정치적 영향력”과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215F[216]
공정한 재판은 또 모든 피고가 독립적인 변론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다. 변호사의 역할에 관한 기본원칙(Basic Principles on the Role of Lawyers) 제1조는 미결구금을 포함하여 “누구든지 형사 사건의 모든 단계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며 확립하고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변호사의 조력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216F[217]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또 변호사와 고객 간의 관계 등 권리의 보장과 관련한 변호사의 역할을 규정한다. 특히,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변호사의 신속한 접견권을 강조하고 “변호인은 사적인 공간에서 고객을 만나 완전히 기밀이 보장된 상태에서 상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변호사는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변호사 윤리에 따라 외부의 제약이나 영향, 압력, 부당한 개입 없이 형사범죄 피의자에게 조언하고 그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217F[218] 또한 변호사 접견권은 구금 중의 다른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후안 멘데즈 고문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은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 구금상황에서 고문이 가장 흔히 발생하기 때문에 고문을 방지하기 위해 누구든지 체포 및 구금 후 24시간 이내에 변호사에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공식 권고했다.218F[219]
정당한 절차에 대한 권리는 적격한 정부 요원에 의해 엄격히 법률을 준수한 상태에서 체포를 수행하는 것을 포함한다.219F[220] 체포나 구금 사유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며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자의적인 해석 또는 적용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정밀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220F[221] 구금자는 자신의 체포 사실과 제기된 혐의, 법적 변론을 받을 권리와 의료적 치료를 받을 권리, 가족 면회를 받을 권리 등 피의자로서의 권리와 이러한 권리들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지 받아야 한다.221F[222] 재판 대기 중의 구금은 예외로써 해당인의 구금이 합리적이며 필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222F[223]
범죄 피의자는 법원에서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무죄로 간주되어야 한다.223F[224] 무죄 추정의 원칙은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 혐의를 입증할 책임을 검사에게 부과한다.224F[225]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는 국제관습규범으로 간주된다.225F[226]
외부와의 연락은 고문, 가혹행위, 강제실종 등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안전장치이다. 미결수는 즉시 가족에게 구금 사실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226F[227] 가족과 친구, 변호사와 연락할 수 있도록 모든 합리적인 시설을 제공받아야 한다.227F[228] 또 합리적인 조건과 제약 하에서 면회가 허용되어야 한다.228F[229] 구금자는 체포 후 그리고 한 구금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송된 후 신속히 본인이 직접 또는 당국을 통해 구금 사실과 구금된 장소를 제3자에게 알릴 권리가 있다. 구금자는 가족과 변호인, 의사와 신속하게 연락할 권리가 있고, 외국 국적자의 경우 모국의 공관에 연락할 권리가 있다.229F[230]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지 않을 권리
북한 정부가 고문방지협약의 당사국은 아니나, 국제법 상에서 고문과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인 처우에 대한 절대적인 금지는, 북한이 비준하여 그로 인해 준수 의무가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되어 있다.
정부 요원들은 절대로 무력을 이용하여 구금자가 범행을 자백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230F[231] 심문과정에서는 폭력이나 위협 등 구금자의 결정 능력을 저해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231F[232]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음식이나 물, 위생시설, 적절한 의료적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고문과 가혹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232F[233] 국내법은 고문이나 기타 금지된 행위를 통해 확보한 진술이나 자백이 사법절차에서 사용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233F[234] 징계의 목적으로 가하는 체벌과 기타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인 처벌, 집단 처벌을 금지해야 한다.234F[235]
고문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법집행관은 고문과 가혹행위의 금지에 대해 충분히 고지 및 교육받아야 한다.235F[236] 또 고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법률에 규정하고, 그러한 이의 제기가 있을 시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해야 한다.236F[237]
수감자 처우에 관한 유엔 최소기준규정(UN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 ‘넬슨만델라규정’이라고도 불린다)은 특히 감방의 크기에 따른 수감자 수의 제한, 취침을 위한 적절한 배치, 충분한 개인위생시설, 의복과 침구, 충분한 음식, 의료 서비스의 제공을 명시한다. 여성 수감자는 남성 수감자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여성 간수가 지키는 건물에 수감되어야 한다.237F[238]
여성의 권리
국제법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처우를 규정하며 성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한다.238F[239]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따라 당사국은 여성에게 생명권과 건강권을 포함하여 남성과 똑같은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여성의 “온전한 성장과 발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239F[240] 여기에는 여성에게 유해할 수 있는 태도와 행동에 대응하는 조치가 포함된다.240F[241]
국제기구들은 젠더폭력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가해지며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폭력”이 차별의 한 형태라고 규정하였다.241F[242] 여성차별철폐협약의 이행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당사국이 차별을 철폐할 책임에 따라 비국가 행위자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특히 미결구금 중에 여성들이 직면하는 성폭력과 기타 폭력의 위험성을 인지해야 하며,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242F[243]
국가는 여성과 여아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폭력 생존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성폭력 사건 등에서 가해자를 처벌할 의무가 있다.243F[244] 국제인권법은 성폭력으로부터의 보호에 더하여 폭력 피해자가 구제조치를 이용할 권리를 보장한다.244F[245] 사법적 정의의 이용에 관한 일반권고(General Recommendation)에서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여성들이 구제조치에서 추가적인 장벽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여성들이 폭력에 대해 시의적절하고, 충분하고, 실효성 있고, 적절한 구제조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당사국에 요구하고 있다.245F[246]
VI. 권고
북한 정부에 대한 권고:
· 구금 중 인권침해가 존재함을 공식 인정하고, 국제법과 기준에 따른 구금자의 권리를 강조하여 공직자와 일반 국민들을 교육하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실시한다.
유엔과의 협력
· 위의 권고를 이행하는 첫 단계로써 유엔 최고인권대표사무소(UN 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북한인권상황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UN Special Rapporteur on the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기타 유관한 특별보고관 및 기구 등 유엔인권기구들과 자문을 시작한다. 그러한 유엔기구의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하도록 초청하고, 법원과 경찰, 교도소, 구금시설 관계자들을 위한 교육과 기술 지원을 제공하고, 재판을 모니터링하고, 교도소 등 구금시설을 방문하도록 허용한다.
법률 및 사법 개혁
·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법부를 수립하고, 경찰과 보안국, 정부, 조선노동당, 최고지도자의 권력에 대해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법률과 헌법, 제도를 개혁한다.
·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 사법절차의 전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당한 절차와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도록 법제도를 개혁한다.
- 불법적이거나 인권침해적인 구금 또는 수감 혐의에 대한 사법적 검토가 가능하도록 국내 법률과 규정을 개정한다.
- 국내법의 구조를 검토하여 여성수감자의 처우 및 여성 범죄자의 비구금 조치에 관한 유엔규정(United Nations Rules for the Treatment of Women Prisoners and Non-custodial Measures for Women Offenders, ‘방콕규정’이라고도 불린다)이 온전히 준수되도록 한다.
- 국제법 하에 보장된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형사상 재판 과정에 대한 인민안전위원회의 심의제도를 폐지한다.
- 경찰 및 기타 수사관과 검사, 판사들에 의한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한 형법 상의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 조항을 폐지한다.
- 유엔고문방지협약에 서명하여 비준하고 국내법에 그 규정을 통합시킨다.
- 현재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고문’이라는 용어를 북한 법률에 도입하고, 그것이 국제인권법에 명시된 ‘고문’의 정의와 일치하도록 한다. 특히 ‘고문’을 통해 수집된 증거의 사용을 금지한다. 무력이나 유도심문의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형법 및 형사소송법 상의 기존 조항을 시행한다.
- 피의자가 공공 안전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거나, 실질적인 도주의 위험이 있거나, 증인 또는 증거를 조작할 위험이 있는 경우로 미결구금을 제한한다. 구금자는 특히 미결구금 중 고문을 당할 위험이 높다.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 상태의 미결구금을 금지해야 하며, 누구든지 구금 후 24-48시간 이내에 독립적인 변호사에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
- 국내법을 검토하여 비인간적이고 모멸적인 처벌인 무급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 기준이 준수되도록 한다.
법집행기구
· 구금심문시설에서의 구타, 고의적으로 굶기기, 성폭력, 기본 위생환경의 결여 등 고문 및 비인간적인 처우와 관련한 혐의를 조사하고, 관계자를 직무 정지, 해고하고 그러한 사건을 공개하는 등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 수사 과정이 국제 기준을 따르며 미결수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경찰, 비밀경찰, 검사 등 모든 법집행관에게 분명하고 공개적인 지시를 내린다.
- 모든 경찰과 검사 및 판사가 구금자 및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에 대해 교육을 받도록 한다.
- 구금 중 인권침해가 존재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러한 인권침해를 종식시키고, 인권 기준과 관련하여 일반 국민들을 교육시키고, 국제법 하에서 구금자의 권리가 존중되도록 전국적인 캠페인을 진행한다.
- 반국가 및 반민족 정치 범죄와 관련한 국가보위성의 기밀 내부 지침을 공개하여 일반 국민들이 공식 정책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한다. 필요시 그러한 지침을 수정 또는 폐지하여 국제인권법을 따르도록 한다.
-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에 대한 당의 통제권을 폐지하고 온전히 정부 관리 하에 놓이도록 한다.
· 누구나 기본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적 의무의 일환으로써, 경찰, 판사, 검사, 군인, 교도소 간수, 변호사를 포함한 모든 정부 직원에게 주택과 에너지, 식량, 의복, 교육, 물, 위생, 보건의료 등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최저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무급강제노동을 폐지한다.
구금시설 및 교도소
- 성폭력, 강제노동, 훈육 또는 징계 조치로써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도록 강요하는 것, 기타 가혹행위 등 구금시설과 교도소에서의 고질적인 고문과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고 모멸적인 처우를 종식시킨다.
- 구금심문시설에서의 구타, 고의적으로 굶기기, 성폭력, 기본 위생환경의 결여 등 고문 및 비인간적인 처우와 관련한 혐의를 조사하고, 관계자를 직무 정지하거나 해고하고 그러한 사건을 공개하는 등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 혹독한 교도소 환경을 개선하고 위생과 보건의료, 영양, 깨끗한 물, 의복, 바닥 면적, 통풍, 조명, 난방 등이 기본 수준에 도달하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 여성 간수가 여성 수감자와 구금자들이 수감된 모든 구역을 감독하도록 하고, 구금자와 수감자가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고 보복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간수에 의한 성폭력을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를 수립하고, 성 및 재생산적 건강을 포함하여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충분한 생리 용품을 제공하고 수도와 안전하고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화장실을 제공하고, 임산부와 수유부에 대한 배식량을 늘리는 등, 여성 수감자와 구금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국제적 인권 의무
- 국제적십자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와 북한인권상황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고문과 기타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유엔최고인권대표사무소 등 유엔인권기구들이 모든 구금시설을 방문하도록 허용한다.
- 고문 및 기타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과 그 선택의정서, 특히 여성과 아동 등 인신의 매매를 예방하고 억제하고 처벌하기 위한 의정서(Protocol to Prevent, Suppress, and Punish Trafficking in Persons, especially Women and Children),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을 비준한다.
-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북한의 미결구금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유엔과 국제 전문가들에게 기술적 지원을 요청한다.
-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경찰 및 수사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국제적 지원을 요청한다.
- 모든 경찰과 검사 및 판사가 구금자 및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에 대해 교육을 받도록 한다.
- 국제인도주의기관들이 미결구금시설 및 교도소에서 인도주의 및 의료적 원조를 제공하도록 허용한다.
- 필라델피아선언(Declaration of Philadelphia)을 지지하고 ILO 헌장을 수용하여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에 가입하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ILO 협약을 신속히 비준한다(ILO 협약 29 및 105호).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과 그 회원국, 영국, 중국, 기타 관련 정부, 유엔기구, 북한에 사무소를 둔 국제 NGO들에 대한 권고:
- 공개적 및 비공개적으로 북한 정부가 본 보고서에서 권고한 개혁을 수행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 북한의 교도소와 기타 구금시설에서의 인권상황을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기금을 제공한다.
- 유엔최고인권대표 서울사무소의 활동을 포함하여, 심각한 인권유린의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기금을 제공한다. 본 보고서가 기록한 심각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의 책임자들을 특정하여 인권 제제를 부과한다.
- 북한 정부가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따라 형사사법제도를 강화하도록 기술적 지원을 제공한다.
- 북한의 경찰과 검사, 변호사, 판사들에게 훈련과 기타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여 그들이 국제법에 따라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고 특히 피의자들이 독립적인 변호인으로부터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 교도소와 기타 구금시설의 인도주의적 필요를 살피기 위해 북한 정부와 협력한다.
- 위의 개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제공한다.
감사의 글
본 보고서는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국 직원들이 조사하고 작성하였으며, 일부 인터뷰는 컨설턴트인 김성중이 수행했다. 본 보고서는 브래드 애덤즈 아시아 디렉터가 편집했다. 디나 포켐프너 제너럴 카운슬과 다니엘 하스 수석 에디터가 법률 및 프로그램을 검토했다. 시시아 뱅 아시아국 수석 어소시어트가 편집과 제작 지원을 제공했다. 표지와 삽화는 최성국이 디자인했다. 트래비스 카 출판 코디네이터가 출판을 준비했으며, 정진욱이 한국어로 번역하고 최하영이 검토했다.
우리는 특히 외부 검토를 맡아준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 대표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또 권은경 열린북한 대표, 정현무 국민통일방송 이사,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 안명철 엔케이워치 대표, 조충희 굿파머스연구소 소장,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과 테오도라 굽차노바 연구원, 그리고 ‘수퍼맨’과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등 현장에서 지원해주신 분들을 포함해 현지 NGO와 기자, 학자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나누어 준 모든 북한인 여성과 남성 그리고 보안상의 이유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많은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다. 우리는 본 보고서가 북한에서 미결구금절차가 개선되고, 독립적인 사법부와 법집행기구가 수립되며, 인권유린의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본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휴먼라이츠워치는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본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휴먼라이츠워치가 단독으로 책임진다. 본 보고서의 조사 결과나 평가, 결론 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여기에 언급된 기관들은 책임이 없다.
로빈재단(Robin Foundation)과 익명을 요청하신 기부자 등 본 보고서가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기부자들의 관대한 후원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