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재일교포 2세인 가와사키 에이코씨는 경제적으로 황폐한 전후 일본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북한에서는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북한 정부의 선전을 접했다. 당시 17세였던 그녀는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에이코씨는 북한과 일본이 주도하는 재정착 프로그램에 합류하기 위해 대략 10만 명의 사람들과 일본을 떠났다. 이 프로그램은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이 1959년에서 1984년 사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시행한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지상의 낙원’ 캠페인의 참가자로 1960년 북한에 도착한 에이코씨가 마주 것은 국민의 일상 전반이 정부의 탄압 아래 놓인 극도로 가난한 나라였다. 북한 정부는 에이코씨가 어디에서 살고 공부하고 일하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지시했다. 식사 배급량을 규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보고하도록 강요했다. 에이코씨가 일본의 가족에게 쓴 편지들은 검열을 받았다. 그녀는 1년 뒤 도착 예정이었던 부모에게 와선 안 된다는 암시를 전하기 위해 속임수로 편지를 썼다. 남동생의 결혼식 뒤에 보자고 적은 것이다. 사실 그녀의 남동생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이제 72세가 된 에이코씨는 “우리에겐 삶이 없었다”고 휴먼라이츠워치에 말한다. “[일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말을 잘못 했다간 살해당할 수 있었고,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죽음을 선택할 자유조차 없었어요. 죽었어도 아무도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몰랐을 겁니다. 정말 끔찍했어요. 거기선 삶에 아무런 가치도 없었어요. 북한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변화하려면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해요.”

에이코씨는 북한에 도착한지 43년이 흐른 2003년에야 탈출에 성공했다. 그녀는 북한 북쪽으로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인접 국경을 넘어 인근지역에 1년 반 동안 숨어 지냈다. 일본 당국에 연락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하다는 걸 깨닫은 에이코씨는 즉시 연락을 취해 비행기로 션양발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재는 자녀 1명과 함께 도쿄에서 살고 있다.

3월 16일 마르즈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조사관은 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제인신매매 및 실종 대응 전략 개발에 대한 이 보고서는 조선총련의 ‘지상 낙원’ 캠페인이 일본 내에서 빈곤과 끊임없는 차별 속에 살아가던 재일교포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책 ‘북한으로의 탈출 : 일본 냉전기의 그림자’에 따르면 ‘지상의 낙원’ 캠페인은 일본 및 북한 적십자단체가 조직하고 국제적십자의 지원을 받았으며, 거짓 약속에 현혹된 재일교포 및 일가족 수천 명이 고향을 두고 북한으로 떠나갔다. 북한 정부는 바로 약속을 이들이 일본 내 가족들과 자유롭게 연락을 취하지 못 하도록 검열했다.

북한 상황에 대한 경고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1962년에는 (귀환자들의 증언, 지역뉴스매체 및 유명한 책 등을 통해) 증거자료가 상당수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캠페인 중단은커녕 그 신빙성을 유지하는데 암묵적으로 일조해온 이주절차 간소화 프로젝트를 20년 동안 유지했고, 오늘날까지 과오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월 에이코씨는 탈북 귀환자 10명과 함께 ‘지상의 낙원’ 캠페인 관련 인권보호를 주제로 일본변호사협회(Japan Federation of Bar Associations, JFBA)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일본과 북한 정부, 조선총련, 일본적십자, 북한적십자, 국제적십자(ICRC)의 조직적 인권침해를 비판했다. 일본변호사협회는 탄원서 검토 후 조사그룹을 구성했다.

에이코씨의 악몽같은 기억은 너무 늦기 전에 ‘지상 낙원’ 귀환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캠페인이 시작된 이래 55년이 넘게 흘렀다. 일본 정부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림으로써 북한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모든 귀환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정부에 지옥같은 고통을 당하게 내버려둔 역사적 과오를 일본 정부는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