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휴먼라이츠워치는 오늘자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북한 망명 희망자들의 강제 송환 및 이들을 지원하는 조력자들의 체포와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6여장에 달하는 보고서, 보이지 않는 탈출: 중화 인민 공화국의 북한 주민들 은 수년간 중국에서 은둔 생활을 해 오며 착취의 대상이 되어 온 북한 주민들의 고난상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중국 남성들을 위한 북한 "아내"들의 인신매매와 송환시 북한 정부가 가하는 고문과 굴욕을 면밀히 분석한 것으로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난민들 및 세계 각 국의 인도주의 활동가들, 학자들과 정부 인사들과의 회견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송환 탈북자들이강제 노동 수용소 및 수형시설에서 직면하는 비 인간적인 현실과 학대의 가슴 섬뜩한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북한은 모국에서의 굶주림과 인권 박해로 부터 도피해 탈출하는 난민들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고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국 워싱턴 국장 마이크 젠드리직씨는 말하면서 "하지만 중국 정부 또한 중책을 면할 수 없다. 망명 희망자들의 강제 송환 조치는 국제법에 위배되는 뻔뻔스러운 행위"라고 덧 붙였다.

중국은 1982년 이후 1951년 유엔 난민 지위 협약과 1967년 의정서의 회원국으로서 망명 희망자들을 박해받을 수 있는 고국으로 송환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강제송환된 탈북자들은 (허가 없이) 북한을 떠난 것이 반역죄에 해당하는 "범죄" 라고 해석될 경우 장기형이나 심지어 사형에 처해 질 수도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북한이 송환자들을 처벌하는 정책을 바꾸고 국제 감시에 문을 열지 않는 한, 모든 북한 망명 희망자들은 이들의 탈국 동기가 입증되지 않는 상태라 하더라도 강제 귀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국제사회가 북한이 인권 보호 의무를 이행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하면서 내년 제네바에서 열릴 유엔 고등 난민 판무관 회의에 북한 문제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 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중국이 유엔 고등 난민 판무관 (UNHCR)이 북한과의 국경 지역에서 망명 희망자들과의 면담을 할 수 있도록 이를 허용할 것을 아울러 요구했다.

탈북 주민들의 중국행은식량난으로 인해 1990년 말 그 정절에 달했으며 극도의 빈곤과 경제 침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어지고 있다. 탈북행 노선은 뇌물수수와 구전 (口傳)을 통해 이미 정립화되어진 상태이다. 현재 수 천명의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은둔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들을 대부분 북한과의 접경 지역인 길림성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국제사회는 올해 초 망명을 희망하는 북한 주민들의 북경과 기타 지역의 외교 공관 난입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탈북자 문제를 방관해 왔다. 2002년 3월에서 9월 사이, 121명의 탈북자가 중국을 떠나 남한을 향했다. 중국 정부는 외교 공관 주변의 경비를 강화하고 대사관들이 북한 주민들을 양도할 것을 요구하며 국경 경비 체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이에 대응하였다.

중국과 인권 대화를 하는 유럽 공동체, 일본,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정부들은 북한 망명 희망자들이 처한 역경에 시급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정부들은 중국이 UNHCR과 조속한 시일 내에 난민 선별을 시작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그 중간 책으로, 중국은 모든 탈북자들이 학대, 강탈과 북한으로의 강제 송환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도록 영구적인 인도적 지위를 승인해야 한다.

"세계는 더 이상 북한 망명 희망자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면서 젠드르젠직씨는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힘을 합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탈출 : 중화 인민 공화국의 북한 주민들 발췌 증언들

그 때를 생각할 때마다 진땀이 납니다. 그 때 잡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 출신 성분 때문에] [북한]의 공안국에서는 저를 간첩이나 반역자로 여길겁니다. 어쩌면 총살을 당할런지로 모르고 법원의 절차없이 종신 유형을 보낼 겁니다. 행정 노동 수용소로 보내질 수도 있고요 비밀 탄광이나 제 몸을 화약 실험체로 쓸런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숨은 붙어 있겠지만 시체나 진배 없었을 겁니다.
-북한 노동 수용소 생존자

북한 여성들이 두만강을 건널 땐 조선족 집의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하며 음식을 구걸합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면, 그녀들의 소위 "보호자"들을 결혼을 제안하기도 하고 여자들이 동의하게 되면 2천위안에서 3천위안을 [미화 $240에서 $360] 남편측 가족으로부터 받습니다.... 북한 여성들은 처음엔 조선족에게 먼저 팔려가고 나중엔 중국인들에게 팔려가게 되지요. 그들은 노예입니다: 성적 장난감이죠.
-1997년에서 2001년까지 북한 난민들 도운 인도주의 봉사자

제가 그 곳에 있는동안, 1,200 명이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부상을 입거나 해를 당하지 않고 떠난 사람은 7명밖에 못 봤습니다. 대부분은 유행병으로 죽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총살 당했지요. 수용소는 대개 살아남을 가망성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만 석방합니다. 수감자들 대부분이 폐 결핵이나 질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수용소에는 한 3백명 정도가 수감되어 있는데 한 방에 30명씩 함께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100명씩 보내졌는데 매일 10명씩은 죽어 나갔지요. 하루에 한끼라도 못 먹으면 허기가 져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지요. 관도 없으니 판자위에 올려서 언덕에 메고 올라가 묻었습니다.
-북한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던 전 국경 파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