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Yong-nam, head of the North Korean parliament, talks with visiting Burmese Foreign Minister U Nyan Win in Pyongyang.

© 2008 Reuters

버마의 니얀 윈 외무장관이 10월 27일 북한을 방문해 25년 전 외교 관계가 단절 된 이후 첫 고위급 면담을 가졌다. 2007년 4월 두 국가가 외교관계를 정상화했을 때,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무시하는 반응과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놀라울 것 없다는 입장은 두 독재 국가가 북한의 공작원이 1983년 양곤의 순국외교사절 위령탑에 폭탄을 던져 남한 내각의 여러 각료가 사망한 이후 단절된 공식적인 국교가 다시 맺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과잉반응하는 측은 북한이 핵무기 기술을 버마에 전달할 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사실 북한은 수년 간 전통적인 무기를 버마의 국가평화발전위원회에 공급해 왔다. 국가평화발전위원회는 북한과 버마가 동맹을 회복한 후 몇 주 뒤 러시아로부터 (북한과 같은 크기인 10메가 와트의) 원자로를 구매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양쪽의 관점은 모두 사실을 담고 있으나, 우리가 실제적인 관심을 가져야할 대상은 억압적인 통치하에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과 버마의 주민들이다. 양국 정부는 국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 당사자들이며, 탈출을 시도하는 주민들을 박해하고, 이 주민들을 돕기 위한 국제사회의 활동을 심각하게 박탈하고 있다.

버마에서는 2007년 9월 승려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변화 촉구를 위한 평화적인 저항이 탄압을받음에 따라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투옥되었으며 다수가 죽임을 당했다. 북한에서는 기본적인 자유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제한되어서 자유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중 시위조차 전혀 없는 실정이다.

자국의 억압과 빈곤에서 탈출하려 시도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탄압을 받는다. 수년 간 북한은 중국에서 체포되어 강제송환된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지난 해 천 명 이상의 북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남한, 때로는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라오스로, 그리고는 메콩강을 건너 태국으로 가는 위험한 경로를 밟았다.

일부 탈북자들은 버마 경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일부 관측자들은 북한과 버마의 외교관계 회복을 고려하면, 버마에 억류중인 북한사람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어 고문과 구금의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가평화발전위원회의 군사 공격과 기타 다른 조치들로 인해 16만명이 넘는 망명자들이 인접한 태국으로 국경을 넘었고, 또 다른 수 천 명은 인도로 탈출했다. 또한 수 많은 버마인들이 중국과 태국, 인도에서 이주 노동자로 불확실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종종 북한과 버마 사람들이 처한, 정부가 조장한 비참한 상황에 대한 대응을 요청 받는다. 이러한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구호 및 재건 단체들의 노력은 개방을 두려워하며 종종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국제 구호 요원들이 엘리트 계층이나 군인들이 아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식량이 지원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식량 배급을 적절하게 감시하는 작업을 힘겹게 해나가고 있다. 구호 요원들은 종종 북한 관료들의 거절이나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

버마에서는 2008년 5월, 태풍 나르기스에 대응하는 외국 인도주의 단체들과 유엔 기관들의 활동에 대한 초기의 정부 제약이 확실히 완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240만 명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원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몇 주간의 방해가 있었던 후의 일이다. 심지어 이런 결과조차도 정부의 제약과 감시가 수 년 동안 원조 프로그램의 시행을 방해해 온 다른 지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2005년 후반 이래 버마의 감옥에 대한 국제적십자위원회와 같은 구호 단체들의 접근이 극심하게 제한되어왔으며, 국제적십자위원회는 2007년 6월, 인종간 충돌이 있는 지역에서 국제 인도주의 법이 자주 위반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드물게 공식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에서는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악명높은 수감시설에 여전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 특별 보고관 비팃 문타폰은 한 번도 북한 입국허가를 받지 못했으며, 유엔의 버마 인권에 대한 신임 특별 보고관, 토마스 킨타나는 올해 8월 버마를 단기간 방문했으나 이는 사전 각본이 꽉 짜여진 방문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의 버마 특별 보고관 이브라임 감바리는 2005년부터 수 차례 버마를 방문했는데,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초기의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올 8월의 방문은 국가평화발전위원회의 고위 관료들에 의해 저지당해 이제 그의 노력의 결실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호 방문의 친근한 외형으로 인해 이러한 동맹이 북한과 버마 주민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양국의 재건된 유대는 양측 정부가 공통의 억압된 제도를 정당화하고 연장하려는 시도에 있어 새로운 공식적 동맹국이 생겼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받게 될 것은 지배계층인 엘리트가 아니라, 바로 북한 지도층과 버마 군부가 기대하는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과잉반응을 마주하며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케이 석과 데이비드 스캇 매티슨은 각각 휴먼라이츠워치의 북한, 버마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