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oman looks out of the window of a damaged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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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월드 리포트

휴먼라이츠워치의 세계인권현황 연례 검토

2024년: 결산의 해

2024년은 선거, 저항, 및 분쟁의 해로써, 민주주의 제도의 완전성, 국제 인권 원칙, 및 인도주의법 원칙이 시험대에 오른 한 해였다. 세계 각국 정부들은, 러시아, 인도, 베네수엘라의 강화된 억압 통치에 대해서든, 가자지구, 수단,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무력분쟁에 대해서든, 그에 맞서인권, 민주주의, 및 인도주의 조치에 대한 의지를 천명할 것을 요구받았다.  많은 정부가 그 시험에 낙방했다. 뿐만 아니라 평소 기탄없는 발언을 하고 행동지향적인 정부들조차도 인권 기준을 약하게 또는 일관성 없이 적용함으로써, 인권에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전세계적 인식을 부추겼다.

이러한 결론은 무책임하고 위험할 뿐 아니라, 각국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국제인권법을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로부터 손쉽게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2024년에 일어난 일들을 돌아볼 때, 지금은 세계 각지의 모두에게 필요한 인권 보호로부터 후퇴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각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고 시급하게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고 수호해야 하며, 시민들과 시민사회는 정부 감시와 책임 추궁에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민중저항의 힘 

선거는 인권 기준을 따라야 하지만 선거 그 자체가 결코 끝은 아니다. 조작 선거나 불공정 선거는 앞으로 더 많은 인권 유린이 발생할 것이라는 신호탄이지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다고 해서 반드시 앞으로 인권이 존중될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2024년에 70여 개국에서 전국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이들 선거의 결과가 인권에 끼치는 영향은 앞으로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인종주의, 혐오, 및 차별이 작년에 치러진 여러 선거에서 주된 쟁점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두 번째로 대선에 승리하면서 트럼프 집권 1기에 자행되었던 심각한  인권 침해가  확대재생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반이민자 정서와 국수주의에 기대어 소수 집단을 위협하고 민주주의 규범을 훼손하는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들이 크게 약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을 거부하고 지도자들과 그 정당에 책임을 묻는 등 유의미한 민주주의 회복력을 볼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무수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원했던 것만큼 압승을 거두지 못했다. 이를 통해 조직적인 도전 앞에서도 민주주의가 여전히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아, 엘살바도르, 그리고 말리, 부르키나 파소, 니제르 등의 사헬 지역 국가들에서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공포정치와 허위정보를 이용해 반대 의견을 묵살하면서 권력을 더욱 단단히 장악했다.

시진핑 주석 통치 하의 중국은 잔인한 억압 정책을 지속함으로써, 공산당 일당체제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공산당 안팎의 모든 반대 의견에 재갈을 물리며, 시민사회와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지하거나 소수민족 등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억눌렀다. 중국 정부는 또한 홍콩 시민들의 기본적 자유를 더욱 제한하여, 수십 명에 달하는 민주화 운동가들을 지나치게 광범위한 새 국가보안법에의거하여 징역형에 처했다. 중국 정부의 억압은 심지어 국경을 넘어재외 중국인 인권운동가, 정부 비판자, 기자, 및 중국인 디아스포라를 상대로 한 감시, 괴롭힘, 온라인상 위협, 중국 내 친인척을 동원한 협박으로까지 이어졌다.  

People wait to enter the court to hear mitigation pleas for pro-democracy activists convicted under the Beijing-imposed security law in Hong Kong, July 5, 2024.
A propaganda slogan promoting ethnic unity in "the new era," in both Chinese and Uyghur languages, in Yarkant, northwestern China's Xinjiang region, July 18, 2023.

(좌) 2024년 7월 5일 중국 정부가 홍콩에 새로 도입한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유죄 판결을 받은 민주화 활동가들에 대한 감형 청원 재판에 방청인으로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 2024 Man Hei Leung/Anadolu via Getty Images (우) 2023년 7월 18일 중국 북서부 신장지구에서 학생들이 중국어와 위구르어로 ‘새로운 시대’의 민족적 단일성을 강조한 선전 문구 앞을 지나고 있다. © 2023 Pedro Pardo/AFP via Getty Images

그러나 심화되는 권위주의 압제는 전세계적으로 시민적 동원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부패, 민주주의의 훼손, 제한적인 일자리 할당제에 항거하는 학생 시위가 전국적 운동으로 확대되어, 결국 장기집권 독재자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해외로 몰아냈다. 정부의 폭력적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자들은 인권 개혁을 약속한 과도정부가 구축될 때까지 굴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십여 년에 걸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잔인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시민들이 공정한 개표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케냐에서는 정체된 개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반영하듯,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고 공적 자원에 대한 책임성과 선거 공약의 이행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조지아에서는 정부 여당의 유럽연합 가입협상 중단에 반발하여 전국적인시위가 발생했다. 많은 국민들에게 이러한 정부 조치는 민주주의 가치를 등지고 권위주의로 선회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여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대부분의 시민 자유를 정지시켰다. 계엄령 선포 후 순식간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여 국회로 집결했다. 국회에서는 특수부대가 계엄령 해제 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불과 6시간 여만에 국회가 성공적으로 계엄령을 해제시켰고 그로부터 11일 후에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저항운동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즉, 불의와 부패를 더 이상 견디다 못한 일반 시민들이 힘을 모아 정부로 하여금 기본권을 수호하고 사익이 아닌 국민들에게 봉사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인권 투쟁이 진척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Police officers close the gate of the National Assembl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yeol declared martial law, in Seoul, December 4, 2024.
Protesters demonstrate against South Korea’s president outside the National Assembly in Seoul, which forced him to reverse martial law, December 7, 2024.

(좌) 2024년 12월 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따라 경찰이 국회 정문을 봉쇄하고 있다. © 2024 Kim Hong-Ji/Reuters (우) 2024년 12월 7일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가 진행되었다. 계엄령은 국회에 의해 신속히 해제되었다. © 2024 Ezra Acayan/Getty Images

분쟁, 위기, 그리고 규범 약화  

작년에는 무장분쟁과 인도주의 위기가 확산되면서, 민간인 보호를 위해 수립된 국제 규범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 또 그러한 규범을 경시했을 때 인간에게 미치는 비용이 얼마나 처참한지가 드러났다. 특히 가자, 수단, 우크라이나, 아이티에서와 같이 인간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인권유린 상황에서조차 국제사회가 무대응과 공모로 일관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당국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수많은 불법 공격과 강제이주를 자행했다. 이스라엘은 고의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존에 필요한 식수를 차단했는데 이는 반인도적 범죄이자 인종 말살 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행위이다. 이스라엘의 폭격은 수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한편, 병원, 주거용 건물, 원조 활동가들을 고의로 겨냥했고, 집을 떠나온 가족들을 수용한 학교와 난민촌을 초토화시킴으로써,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를 말살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을 붕괴시켰다. 

이스라엘군이 무기를 사용하여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여러 정부는 국제법적 의무와 국내법을 위반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제공과 군사지원을 지속했다. 전장에서 감시기술, 인공지능, 기타 디지털 도구가 새롭게 이용되면서 민간인 피해가 심화될 위험이 있으며, 정부와 관련 테크기업들의 책임성 문제가 한층 더 제기되고 있다.  

Palestinians returning to Khan Younis in Gaza, April 26, 2024.
2024년 4월 26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로 돌아왔다. © 2024 Ali Jadallah/Anadolu via Getty Images
Displaced Palestinians wait outside a bakery for fresh bread in Khan Younis, Gaza, November 19, 2024.
Palestinians wait to receive clean drinking water distributed by aid organizations in Deir al-Balah, Gaza, June 10, 2024.

(좌) 2024년 11월 19일 가자의 칸 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베이커리 앞에서 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2024 Majdi Fathi/NurPhoto via AP Photo (우) 2024년 6월 10일 가자의 데이르 알 발라에서 원조단체가 제공하는 식수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 2024 Abed Rahim Khatib/Anadolu via Getty Images

수단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신속지원군(RSF) 간의 분쟁으로 인해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잔학 행위가 잇따랐다. 그중에서도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RSF가 ‘인종청소’ 작전의 일환으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했다. 수단 전역에서 정부군과 반군에 의한 대량 학살, 성폭력, 강제이주가 난무했다.

수단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매우 미흡했고, 이는 내전 사령관들로 하여금 더욱 대담한 탄압을 자행하도록 부추겼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가해자들을 시급히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자 노력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수단에 절실히 필요한 민간인 보호 조치를 아직 취하지 않았다. 정부군과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국가들은 민간인들의 생명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는 인도주의 원칙과 인권 규범 수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3년째 우크라이나의 에너지망과 병원 등 기반시설에 대규모 공격을 가하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러시아 당국은 점령 지역의 우크라이나 학교에서 러시아 교과과정과 러시아 정부의 정치선전을 가르치게 하는 등 강제적이고 체계적으로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지우고자 했다. 비록 유럽연합의 여러 정부와 미국이 러시아군이 저지른 중대한 범죄 행위를 심판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책임을 묻는 과정은 아주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아이티에서는 폭력 사태가 극에 달했다. 범죄조직들은 대규모의 조직적 공격을 배가함으로써 수천 명을 살해하고, 아동들을 모집하고, 여성과 여아들을 강간했다. 6월에는 유엔이 승인하고 미국이 대부분의 기금을 조달하며 케냐가 주도하는 다국적 안보지원군(MSS)이 파견되면서 조만간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관련 정부들이 안보지원군의 온전한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 

이제 말하기 꺼린 부분을 말하자. 극도의 위험에 처한 민간인들을 각국 정부가 보호하지 않으면 이는 그들을 사상자로 방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이들을 위한 보호 규범을 훼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두를 더 열악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러한 바닥으로의 경쟁은 분쟁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이들을 훨씬 뛰어넘어 엄청난 여파를 일으킨다. 예컨대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도움을 요하는 민간인에 대한 의료서비스와 원조 활동가들의 접근을 막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없게 하고, 장애인들을 더욱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등의 결과를 낳는다. 인권은 어떤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의 근간이며, 인권 보호는 우리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A child plays with a circle in the courtyard of a refugee camp, where people have fled to escape violence from criminal groups, in the Bas Delmas neighborhood of Port-au-Prince, Haiti, May 2, 2024.
People displaced by criminal violence take refuge at the Antenor Firmin high school transformed into a shelter, in Port-au-Prince, Haiti, May 1, 2024.

(좌) 2024년 5월 2일 아이티의 바스 델마스 지역에서 주민들이 무자비한 갱단 폭력을 피해 달아나는 중에 포트-오-프린스에 있는 난민캠프에서 한 어린이가 굴렁쇠를 가지고 놀고 있다.  © 2024 Guerinault Louis/Anadolu via Getty Images (우) 2024년 5월 1일 아이티의 포트-오-프린스에서 갱단폭력을 피해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 임시 피난처로 이용되는 안테노 퍼민 고등학교에서 쉬고 있다. © 2024 Ricardo Arduengo/Reuters

전제 통치의 한계 

시리아에서는 12월에 반군 연합이 폭압적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몰아내면서 50여 년에 이르는 바트당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아사드 정권이 자행한 대표적인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로는 고문, 강제실종, 무단처형, 화학무기 사용,전쟁 무기로서의 굶주림, 그리고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대한 고의적, 무차별적 공격 등이 있다.  

시리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과 시리아 국민군의 일부 분파 등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반군들도 인권 유린과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시리아의 차기 정부는 과거의 압제와 면책의 관행을 단호히 뿌리뽑고, 민족이나 종교적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심각한 탄압을 저지른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의 상황은 전제 통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장기간 지속된 전제 정권이라도 매우 취약할 수 있다. 외세에 의존하여 억압적 통치를 유지하는 독재자들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외세의 정략적 계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아사드는러시아와의 군사동맹 덕분에 수년간 철권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러시아 군사동맹은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반인도적 범죄를 비롯한 무수한 잔학 행위를 초래했다. 중대한 탄압의 증거가 쌓여가는 중에도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용하여 지속된 국제사회의 압력과 조치로부터 시리아를 막아 주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계기로 시리아에 대한 재원과 지지를 다른 데로 돌리자, 아사드 정권은 군사적으로 취약해지고 압제의 후원자로서 러시아의 한계가 드러났다.    

리더십의 교훈과 기회 

2024년은 종종 간과되는 현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언제나 국내외에서 신뢰할 만한 인권 옹호자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인권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광범위하게 잔학 행위를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무제한 공급하는 반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되는 유사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러시아를 비난하고, 아랍에미레이트, 인도, 케냐 등 파트너국의 심각한 인권침해에는 눈을 감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미국 국내의 인권 상황을 위협할 뿐 아니라, 작위로든 부작위로든 해외의 인권 수호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다자기구, 국제법, 소외집단의 권리를 어떻게 공격했는지를 상기해볼 때, 트럼프 2기는 전세계 비자유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를 따라 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인권에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 

People participate in a weekly protest in support of trans people in Washington Square Park in New York City, US, May 31, 2023.
2023년 5월 31일 미국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트랜스젠더 지지 주간 시위가 열리고 있다. © 2023 Stephanie Keith/Getty Images

유럽 역시 중대한 인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점점 더 많은 유럽 정부가 경기 침체와 안보를 빙자하여 특히 소외집단, 이주민, 망명 신청자, 그리고 난민의 권리를 선택적으로 무시하면서 사회경제적 권리 증진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권위주의 지도자들이 표방하는 차별적 언사와 정책은 다수 유권자들이 그들의 약진에 저항함에도 불구하고 주류 정당의의제로 채택되면서 정상화되고, 그들은 선거에서 득세했다.  

이처럼 분열된 정치 지형은 보다 큰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 즉, 모두를 위한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와 다짐을 당연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매력은 기꺼이 소수집단과 외국인들을 희생양 삼아 그들의 권리와 법치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대가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신기루 같은 환상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준다는 데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권리와 존엄성이 보호될 때 비로소 사회가 번영하며, 이 두 명제는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Protesters during a counter demonstration against an anti-immigration protest called by far-right activists in the Walthamstow suburb of London, UK, August 7, 2024.
Pylos shipwreck survivors attend anti-racist and anti-fascist rally in Athens, Greece on March 16, 2024.

(좌) 2024년 8월 7일 영국 런던 교외의 월탐스토우에서는 극우파의 반이민 시위에 맞선 ‘맞불’ 시위가 열렸다. © 2024 Benjamin Cremel/AFP via Getty Images (우) 2024년 3월 1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파일로스 해안 이민보트 침몰사고의 생존자들이 반인종주의·반파시즘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2024 Beata Zawrzel/NurPhoto via AP Photo

2024년은 각국 정부가 인권과 책임성에서 담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성을 극명히 보여주었으며, 앞으로 그러한 리더십이 필요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멕시코와 감비아는 유엔 총회에서 지역 간 지지를 끌어모아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협약의 초안 작성을 주도했다. 이것은 무장분쟁이 없을 때에도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되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범죄를 국내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초이다.  

시에라리온과 도미니카공화국은 룩셈부르그와 함께 모든 아동의 무상 유치원 및 중등 교육을 보장하여교육권을 강화하는 새로운 다자간 조약의 수립을 지지했다. 이를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다른 권리들의 실현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면 국제법 집행에 대해 한층 높은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가자 지구에서 유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위반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것, 그리고 몇몇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 내의 탈레반이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위반했다며 규탄한 것 등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추가 피해를 방지하라고 이스라엘에 내린 일련의 가처분 명령은 이스라엘의 탄압을 막는 데는 제한적인 효과만 있었을 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하는 정부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일례로, 영국은 특정 수출 품목이 탄압을 자행하거나 조장하는데 사용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는 검토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에 대한 일부 무기 수출 허가를 유예시켰다. 이는 관련국들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재고하라는 압력이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임성의 구조 

2025년과 그 이후의 불확실성 속에서 이러한 도전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발전 능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가자, 수단, 사헬지역, 아이티, 미얀마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관련국들이 협력하지 못하거나 그럴 의지가 없는 모습을 보면, 인권 투쟁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같은 독립적인 기관들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2024년에 ICC는 우크라이나 및 팔레스타인 전쟁과 관련하여 범죄 혐의가 있는 고위 공직자들을 조사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미얀마의 군부정권 책임자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관련국들이 정치적 의지를 결집시켜 ICC의 피의자들을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는 일이다. 이 때문에 정의 수호를 위해 ICC 회원국들의 일관된 지지가 중요하지만, 이는 언제나 장기전이다. 러시아, 중국, 미국이 ICC의 임무와 활동을 약화시키고 다자체제 전반의 인권 관련 예산을 삭감하려는 압력을 증대시키는 상황에서 이는 특히나 뼈저린 도전이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정부가 이러한 위협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즉, 민간인들이 치러야 할 고비용의 대가를 도외시한 채 정의가 국익에 위협이 된다면 책임자를 기꺼이 면책시켜 주는 관행이 문제인 것이다. 각국 정부는 또한 ICC나 유엔 조사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들이 책임성 관련 임무를 굳건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 정치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인권을 지지하는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다 중요하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는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수호하고, 소수집단을 보호하고, 인권을 발전의 걸림돌로 규정하는 포퓰리스트적 주장에 반박하는 등 정부에 책임을 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많은 권위주의 정부들이 인권 수호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시민사회단체들에 재갈을 물리고 해산시키려 했다. 각국 정부와 다자기구의 수장들은 비정부기구와 언론 등 인권 수호에 필수적인 독립적 견제 기구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People light candles in front of the national parliament to pay tribute to the students who were killed during protests calling for the resignation of the Hasina government, Dhaka, Bangladesh, August 8, 2024.
2024년 8월 8일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이 하시나 정권 퇴진을 요구하다 숨진 학생들을 기리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2024 Istiak Karim/Drik/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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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일어난 사건들은, 많은 정부가 고통과 탄압에 맞서기를 꺼리는 가운데 국제 인권규범과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2024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압제에 용감히 저항하는 이들의 회복력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용기가 얼마나 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인권 투쟁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례로는, 미얀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의 피해자와 생존자들에게 사법적 구제수단을 제공하는 ICC, 조지아, 방글라데시, 케냐에서 변화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들, 그리고 베네수엘라 등 여러 국가의 주요 선거에서 권위주의 통치에 반대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각국 정부는 국제인권법과 규범을 후퇴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할 책임이 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평화로운 집회를 위한 공간을 수호하고, 책임성 확보를 위한 구조와 그 효과를 강화하며, 그들이 가진 권력과 상관없이 인권 탄압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묵살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일을 각국 정부가 해야 한다. 인권이 보호될 때 비로소 인류가 번영한다. 인권을 부정하는 대가는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목숨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직면한 도전이자 기회이다.  

World Report 2025, Human Rights Watch’s 35th annual review of human rights practices and trends around the globe, reviews developments in more than 100 cou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