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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2009년 사건들

2009년 4월, 북한당국은 자국이 "인원을 존중하며 보호한다."는 조항 등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헌법 개정을 감행했다. 이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에 대응하여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이번에 개정된 헌법은 현재 김정일 위원장이 맡고 있는 국방위원회의 위원장 직을 모든 "국가적 사안"을 관장하는 "최고 영도자"로 규정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 이후 모두가 인정하는 지도자로 군림해왔으므로, 이와 같은 변화는 2008년 9월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김 위원장의 뇌졸중 발병 이후 지도력이 약해졌다는 소문을 가라앉히기 위한 시도로 여겨진다. 

말로만 보장되고 있는, 인권에 대한 개정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조직화된 야당이나, 언론의 자유, 시민 사회, 혹은 종교의 자유가 부재하는 상황이다. 즉결 체포, 구금, 고문, 수감자에 대한 학대 및 법 집행에 있어 정당한 절차의 부재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북한 당국은 아동을 포함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반 국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비참한 상황에서 노예처럼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를 포함, 구금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연좌제는 이러한 범죄에 대해 일반적인 것이다. 주기적으로 북한 당국은 국유재산 절도, 식량의 매점매석 및 기타 "반 사회주의적"범죄를 저지른 주민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식량 부족

수백만의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1990년 대의 기아로부터는 회복되고 있음에도, 북한은 여전히 고품질의 종자와 연료, 비료, 선진 농업기술의 부족을 겪고 있으며 제대로 된 식품저장 시설에서조차 전체 주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기에는 국내 생산량이 턱없이 불충분한 상태로 이러한 부족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2009년 9월, 세계식량계획은 북한 여성들과 어린이의 1/3이 영양실조이며 북한은 거의 180만 톤의 식량이 부족하여 이를 수입하거나 원조받을 필요가 있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90년대의 기아 이래 시장은 실질적으로 기능을 상실한 배급체계를 대체하며 대다수 북한 주민들에게 주 식량 공급원이 되어왔다. 군대나 안보당국의 고위층 인사 등 극히 소수만이 여전히 제대로 된 배급을 받고 있다. 시장 활동에 대한 탄압과 제약에 대한 보고는 생존을 위해 그러한 활동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난민들과 망명 신청자들

북한은 당국의 허가 없이 자국을 떠나는 것을 범죄행위로 간주한다. 도강자들(허가 없이 국경을 넘은 이들)은 본국 송환될 경우 국외에 있는 동안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 지에 따라 고문, 참혹한 시설에서의 장기 구금, 심지어는 사형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처벌에 직면하게 된다.

2009년 10월, 11명의 북한주민들이 어선을 타고 한국 영해로 표류해왔다. 한국정부는 이들을 조사한 후 이들이 송환되어야 한다는 북한당국의 반복된 요구를 거절하고 11명 모두가 망명을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약 17,000여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중국과의 접경인 북쪽 국경을 통해 탈출한다.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1990년대 이후로 북한을 탈출했으며 이중 일부는 중국의 조선족 자치구인 연변에 정착해왔다. 난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은 중국 내의 북한주민들을 불법경제이민으로 분류하며 정례적으로 본국 송환 조치해왔다. 많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 남성들과 사실혼 관계로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중국에 수년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거주 자격을 부여 받지 못하고 있으며 체포와 본국송환에 무방비한 상태로 남아있다. 일부 북한 여성들과 소녀들은 인신매매의 희생자로 중국에서 강제 동거나 매춘을 강요 받고 있다.

한국 외의 국가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북한 난민들이 정착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점에 일본은 약 200명의 난민을, 미국은 약 100명의 북한 난민을 수용했다.

독일과 영국, 그리고 몇몇 유럽 국가들을 통틀어 최근 약 500명이 넘는 북한 난민들이 이 지역에 받아들여졌다. 이들 중 일부는 난민 지위가 아닌 인도적 지위로 수용되었다.

아동의 권리

2008년 12월의 보고서에서 서울 기반의 비정부기구인 북한인권시민연대는  북한의 아동들이 가족이 속한 정치적 계급에 따라 교육과 인도적 원조, 건강보험의 기회라는 부문에서 차별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동들의 정치적 배경은 또한 군복무 유무를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중국 출생의 수많은 아동들은 친모의 신분이 노출되고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법적 신분과 초등교육에 대한 합법적인 혜택 없이 살아가도록 강요 받고 있다. 중국으로 이주한 북한 아동들은 호구(가족관계 증명 서류)를 획득할 법적 권한이 없다. 법적으로는 북한 아동들이나 친모가 북한인인 아동들이 호구 제출을 요구 받지 않고 학교에 등록할 수 있어야 하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이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부모들과 보호자들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뇌물이나 속임수를 써야 하는 실정이다.

노동권

약 4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주로 한국의 기업들을 위해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는 북한의 개성공단에 고용되어 있다. 이 공단의 노동조건을 통제하고 있는 법은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 성차별, 성희롱 및 유해한 아동노동에 대한 국제 기준에 한참 미달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은 또한 불가리아, 중국, 이라크, 쿠웨이트, 몽골 및 러시아에서도 고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노동자들의 이주 및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 감시원이 지속적으로 동행하도록 하는 것, 상당 부분의 임금을 북한 당국이나 알선업자가 취하고 있는 점 등에 대해 인권활동가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2009년 8월에 발표된 다큐멘터리에서 영국의 BBC방송은 약 1,500명의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의 벌목회사에 고용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한 지역관료와 목재회사는 북한 노동자들이 1년에 단지 이틀의 휴가를 받으며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처벌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벌목장에서 탈출한 일부 노동자들은 러시아에 숨어 살아가고 있다.

주요 국제 관계

2009년,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뉴스였으며 각국 정부들의 대 북한 외교의 초점이었다.

북한은 2009년 4월,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이러한 움직임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한 항의로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 종결을 위한 다자간의 노력 -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소위 6자 회담 - 을 중단했다.

북한은 이어 5월에 핵실험을 감행했는데, 이 실험이 전폭적인 비난을 가속화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6월, 군사제재의 확산과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을 오가는 모든 운반선에 대해 군사용품을 선적하고 있는 지 조사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9년은 남북한 관계의 악화로 시작되었다.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약 10년 간 북한의 주요 원조국이었던 한국이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새 정책에 따라 원조를 공식 중단했으며 공개적으로 북한의 핵 야심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북한은 개성에서 근무 중이던 한국 현대그룹의 기술자 유성진을 북한 정치체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7월에는 북한이 항로를 잃어 사고로 북한 영해에 침입한 한국 어부 4명을 억류했다. 하지만 8월에 이르러 북한은 유씨와 어부들을 석방할 수도 있다는 회유적인 신호를 한국에 보내기 시작했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고위급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9월에는 2년간의 중단 끝에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했다. 북한 관료들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이 식량원조를 재개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하지만 첩보원 훈련이나 체재 선전 등을 위해 납치된, 5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납북자들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미결인 채 해묵은 쟁점으로 남아있다. 한국은 또한 1950-53년 한국 전쟁 때 발생한 한국 전쟁포로 중 수백 명이 여전히 북한에 강제 체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미관계의 경우 전반적으로는 변화가 없었으나 양자 간 두 세 번의 고위급 만남을 가졌다.  3월에는 캘리포니아 소재 커런트 TV기자인 미국인 유나 리와 로라 링을 불법 입국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 받았으나, 실은 방문자 숙소에 체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문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두 기자를 석방하여 귀국 조치했다.

9월에는 미국정부가 북한인권특사를 새로 임명했다. 10월 말 리건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이 6자 회담을 위해 성 김 미국특사를 만났다. 같은 달, 3일간의 미국방문을 마친 리건이 북한으로 돌아오자, 중국의 웬 지아바오 총리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종식을 위한 다자간 회담을 부활시키기 위해 대화에 참여할 것을 북한과 미국에 요구했다.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여전히 냉담한데, 이는 주로 납북자들에 대한 논쟁에 기인한 것이다. 북한은 2002년, 북한 공작원들이 13명의 일본 국적자들을 납치한 것을 시인했으며 이 중 5명을 일본으로 돌려 보냈으나, 다른 8명은 이미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납북된 자국민의 수가 더 많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2009년 9월, 유엔 총회를 위한 보고서에서 북한인권상황 특별보고관 비팃 문타본은 최악인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북한 내의 식량 부족, 공개 처형, 고문 등을 언급하여 비판을 가하며 북한이 어디서든 망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중지하는 것은 물론 민주적인 절차를 도입할 것을 요청했다. 11월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북한 내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