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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권의 옹호자 역할을 하는 정부는 누구인가? 미국이 재판 없는 감금과 고문에 의한 심문을 사용한 이후 잠재적으로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부시 행정부가 여전히 “민주주의”-인권이라는 곤란한 주제를 피해가려고 사용하는 단어-를 외치는 것은 가능하지만, 스스로 침해하는 인권을 제대로 옹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영향력은 약화되는 한편, 중국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결코 인권의 리더가 아니다. 중국의 커지는 경제적 힘은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있지만, 외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국내적으로 정치적 다원주의나 법치주의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 가운데, 중국은 외국과의 관계에서는 인권이 내정 문제라고 주장한다.

국내적으로는 독립적인 의견을 탄압하고 체츠니아에서 더러운 전쟁을 수행한 러시아 역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러시아의 목표는 특히 구 소련연방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재구축하는 것인 듯 하다. 설사 그것이 독재자들과 살인자들을 포용하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말이다. 비판의 화살을 피하려다 보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인권을 “인위적 기준”이라고 폄하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유럽연합과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인권 리더십의 잠재적 원천이 될 수 있었다. 양측 모두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어느 쪽도 리더십의 공백을 채우는데 필요한 일관성과 효율성을 가지고 일하지는 못했다.

미국의 목소리가 작아진 가운데, 이제는 유럽연합이 가장 강하고 효과적인 인권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인권의 원칙 위에 건설되었으며, 국제 문제에 있어 위대함에 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회원국의 확장으로 고심하는 동안 기대보다 매우 낮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다양한 회원국들 사이에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은 너무도 고되어서, 유럽연합은 그 잠재력에 비해 아주 작은 성취밖에 이루지 못했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인권 향상의 문제에 관한한, 유럽연합은 개별 국가들의 총합 그 이하이다.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민주 국가들은, 일부는 민주화를 이룬지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수가 불안정한 신생 민주국가이다. 그들이 몇 몇 국제적인 문제들에서 인권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희망을 주는 순간들이 있으나, 이들 국가들은 아직 공동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지역적 경계를 초월하는 협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빈번하게, 인권에 대한 이상 보다는 지역적 협력에 더욱 충실한 모습을 보이며, 인권 보호를 약속한 사람들 보다는 이웃의 독재자들과 더 강하게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유엔의 새로운 인권이사회에서 특히 파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권이사회는 신임을 잃었던 인권위원회를 개선하는 대신 그 실망스러운 행적을 반복할 것처럼 보이며, 유엔 체제 전체의 신뢰성을 손상시키고 있다.

 

요즘에는 모든 정부들이 인권을 무시하는데 대한 준비된 변명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이따금 각국 정부 혹은 유엔 주재 대사들이 고결한 선언을 하곤 하지만, 실제적인 리더십 혹은 변화를 위해 필요한 지속적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약속은 선행조건들에 의해 흠집이 생기고, 참여는 예외 조항 때문에 망가진다. 수단 다르푸르의 범죄적 군사작전이 그러한 행위에 대한 징벌이 부재하기 때문이건, 유럽연합이 집단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만장일치가 필요한 이유 때문이건, 중국의 각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선언 때문이건, 미국이 이라크와 테러리즘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건, 혹은 개발도상국들이 지역적 결속을 위해 인권의 원칙을 희생하기 때문이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은 단호한 조치를 취할 절대적 의무를 압도해 버린다.

이러한 경향은 암담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신뢰성 공백이 특히 무법적인 현 행정부의 일시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앞으로 수년간 미국의 입지를 흔들게 될 장기적 문제인지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의회에 달려 있다. 과거의 인권침해와 결별하고, 정책 변화를 추구하며, (인권침해의)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여부도 이 새로운 의회에 달려 있다. 그러한 인권침해의 설계자들이 여전히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가 쉽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주장할 수 없으나, 미국이 인권 옹호 국가로서의 손상된 명성을 되찾고자 한다면, 그러한 변화는 필수적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도 리더십은 필요할 것이다. 상당 부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낮은 기대치의 수혜자들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국내외적으로 국제적인 인권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거의 없는 한, 그들이 그렇게 할 동기도 거의 없다. 그들의 새로운 경제적 힘, 즉 중국의 신흥 시장과 러시아의 에너지 보유고는 외국 정부들이 그러한 압력을 행사하지도 못하도록 위축시키면서, 그들을 향한 얼마 안되는 직접적 압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줄 뿐이다. 한편, 중국의 늘어나는 해외 원조 프로그램은, 이전에는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국가들에 의지하던 독재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이러한 역학을 변화시키는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국제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나라로 대우하고, 그들이 자국 국민들과 동시대인들의 인권을 존중하도록 하며, 그렇지 않을 때 책임을 지게 해야한다. 영향력과 존경을 얻는 길이 잔인함과 폭력이 아닌 책임 있는 국제적 시민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믿게 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인권에 대한 결의가 쉽게 에너지 계약이나 투자기회의 뒷전에 밀리면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몇 몇 나라는 인권 조사에 적극적으로 저항 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국제적 기준의 적용을 촉진하는데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또한 흔치는 않지만 어렴풋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는 개발도상국 중 진정한 인권 옹호자를 필요로 한다. 즉 조건 반사적인 지역주의를 시대착오로서, 독재 정부들이 압력을 피하기 위해 서로 결탁하던 시대로의 퇴보로서 거부하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정부가 정기적 선거를 지지하고 그들의 국민들의 요구의 편에 서고 있는 만큼, 그들은 외국과의 관계에서 자국 시민들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권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많은 회원국들이 유럽연합이 마비상태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유럽의 실험은 유럽의 경계 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전세계 인권 옹호자로서의 약속에 대해서는 매우 부족했다. 필요한 변화 중 어떤 것은 비교적 쉽고 빨리 실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문성의 축척과 장기적인 전략의 추구를 위해 6개월 단위로 의장국이 순환되는 것은 바꿀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기구들을 보다 투명하게 하여 일반적 가치와 정부 조치 사이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등, 전통과 악습의 변화를 요구하는 부분들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로는, 인권 영역에서 집단적 조치를 위한 만장일치 요구를 완화하여 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볼때 유럽연합은,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특히 리더쉽이 매우 부족한 시기에 용납할 수 없는 리더쉽의 포기임을 직시해야 한다.


목차 |  >>January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