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밤에 눈물이 나요”

북한의 성폭력 실상

 

요약문

오정희(40대)는 양강도 출신으로, 혜산시의 장마당에서 옷을 팔았고 양강도 지역에서 직물을 유통했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2014년에 탈북하기 전까지 단속원이 정기적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뇌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녀는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번 피해를 당했습니다…… 장마당 단속원이나 보안원들은 자기들이 내키는 대로 장마당 밖에 어디 빈 방이나 다른 곳으로 따라 오라고 합니다.  어쩌겠어요?  우리를 [성] 노리개로 생각하는데…… 우리[여자들]는 남자들 손에 달렸습니다. 힘 있는 남자가 옆에 없으면 여자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폭력 행위에 저항하거나 어디에 신고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또 자리를 옮기거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으면서 그 상황을 피하는 것 외에는 그런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 정부 관리들에 의한 성폭력 실상

휴먼라이츠워치가 오늘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관리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성폭력을 자행한다. 북한 당국은 사건을 조사하거나 기소하지 않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 조치나 관련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에는 성차별이나 성폭력이 없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있다.

박영희(40대)는 양강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2011년에 탈북했다. 그녀의 첫 탈북시도는 실패로 끝나 2010년 봄에 중국에서 강제북송되었다.  북송 후 보위부에 구금되었다가 보안성 관할 구류장으로 이송되었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함경북도 무산시 인근에 위치해 있던 구류장에서 그녀의 심문관이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만지고 여러 차례 손가락을 삽입했다고 한다. 또한 그 심문관은 그녀가 중국으로 인신매매되어 강제 성관계를 맺었던 상황을 반복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목숨이 그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고 묻는 말에 다 대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요?  북한에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불법이 될 수 있는데, 그 말인즉슨 모든 것이 나를 조사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그녀는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관계당국이 두려웠으며, 누가 도와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정희와 박영희의 경험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성폭력과 젠더폭력은 어디서나 문제이기는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것이 만연하고 있다는 증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2011년 이후에 자국을 떠난 북한 주민 54명 및 북한 관료 출신 8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본 보고서는 남성 권력자들에 의한 성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당의 고위 관리, 구금 시설의 감시원과 심문관, 보안원과 보위성 요원, 검사, 군인 등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구금 시설에 수감되어 있거나 생계 유지를 위해 장사를 하면서 감시원이나 여타 관료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 2018 Human Rights Watch

인터뷰 참가자들은감시원이나 보안원이 여자를 “찍으면” 그 여성은 성관계건, 돈이건, 다른 어떤 것이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수감된 여성들은 그러한 요구를 거절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면 성폭행, 수감 기간 연장, 구타, 강제노역 등에 처해지거나 장사를 할 때 집중 감시 대상이 되어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수감되지 않은 경우에는 주 수입원을 잃어 가족의 생계를 위협받거나, 물건과 돈을 빼앗기거나, 장사한 것을 트집 잡아 노동단련대나 교화소로 보내지는 등 감시와 처벌 대상이 된다. 또 장사에 좋은 목을 빼앗기거나, 해고되거나 일자리에서 배제되고, 이동수단이나 장사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벽지로 강제이주되거나, 더 많은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

우리가 인터뷰한 탈북민들은 성추행과 성폭력이 너무도 만연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관리들이 성폭력을 자행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북한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일반적인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여아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발설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북한 정부는 주민들의 삶의 어느 측면에 대해서도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북한 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의 조사 결과는 권력자들에 의한 성폭력의 만연성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표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나이와 지역, 사회적 계급, 개인적 배경이 다양하고 각자의 경험을 기술하는 방식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은 여기서 설명하는 성폭력의 패턴이 북한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추정하게 한다. 우리의 조사 결과는 또 북한의 성폭력 현황을 파악하고자 시도한 다른 조사 결과들과도 일치한다.

2014년에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는 북한 정부가 체계적이며 광범위하게 자행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는 처형, 감금, 강제노역,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 강제 낙태, 강간, 기타 성폭력이 포함되었다. 유엔위원회는 "북한에서는 가정폭력이 만연해 있다…… 여성폭력은 가정에 국한되지 않으며 공공 장소에서 여성들이 맞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증언들을 소개했다.

북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 정부의 씽크탱크인 통일연구원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1,125명(남성 31.29%, 여성 68.71%)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7.7%가 구금시설에서 수용자들에 대한 성희롱과 강간이 "흔하다"고 답했고, 그 중 15.9%는 "매우 흔하다"고 답했다. 33명의 여성이 구금 시설에서 강간을 당했고, 51명은 구금 시설에서 강간을 목격했으며, 25명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들은 보안원 45.6%, 담당관 17.7%, 보위성 요원13.9%, 다른 수감자 1.3%였다. 통일연구원의 2014년도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6%가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과 성희롱이 "흔하다"고 답했다.

우리가 인터뷰한 탈북민들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느끼도록 사회화되기 때문에 성폭력과 폭력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었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법률과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정당한 조치를 요구하는 대신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경험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우리의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대부분 2011년에서 2016년 사이에 탈북했고 그들이 경험한 폭력은 탈북 시점으로부터 1년 전 또는 그 이전에 발생한 것이지만, 여러 증거에 의하면 가해자들이 폭행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7월 북한 정부는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의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위원회에 2008년에 9명, 2011년에 7명, 2015년에 5명이 강간죄로 처벌받았다고 보고했다. 북한 정부는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가해자의 수가 2008년에 5명, 2011년에 6명, 2015년에 3명이라고 밝혔다. 북한 당국자들은 그처럼 터무니없이 낮은 숫자가 북한이 폭력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이러한 숫자는 북한이 성폭력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보위성 심문관에게 조사를 받고 있는 여성의 모습 아래의 삽화들은 북한에서 선전물 제작 일을 했던 최성국이 그린 것으로, 삽화가 자신이 북한에서 겪었던.경험과 본 보고서에 인용된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래의 삽화는 실제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전형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이며, 실제 인물과 닮은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우발성에 의한 것이다.

© 2018 Choi Seong Guk for Human Rights Watch

구금 시설에서의 성폭력

휴먼라이츠워치는 구금 시설에 수감된 적이 있는 탈북민 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보안성이나 보위성 소속의 조사관, 구금 시설의 관리나 담당관들에 의해 언어폭력, 성폭력, 가혹한 취조, 모욕적인 대우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 중 6명은 구류장에서 성폭행과 언어폭력 및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 구류장은 재판 전에 죄인들을 구금하여 1차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국가안전보위성이나 보안성에서 운영한다. 이들은 담당 수사관들이 옷 위로 또는 옷 밑으로 손을 넣어 얼굴과 가슴, 엉덩이 등 몸을 만졌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또 구류장에서 수감자의 거주지에 있는 구금실로 이송되기 전에 수감자들을 임시 수용하는 시설인 집결소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 2명의 사례를 기록했다.

기차 안의 전형적인 풍경. 남자 정부 관리들이 좌석에 앉아 있고, 여자 장사꾼들은 바닥에 앉아 있다. 검표원이 여자 장사꾼의 표를 검사하고 있다.

© 2018 Choi Seong Guk for Human Rights Watch

장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휴먼라이츠워치는 북한에서 장사를 하면서 장마당 관리들에게 강간과 성희롱 등의 성폭력과 언어폭력, 협박을 당한 여성 4명을 인터뷰했다. 또 장사를 하기 위해 지역을 오가는 과정에서 보안원이나 기타 관리들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성 17명을 인터뷰했다. 북한의 계획경제 하에서 장사는 불법이지만 1990년대의 대기근으로 생존이 절박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계획경제의 엄격한 속박에도 불구하고 장사에 나섰고 우리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도 그때 장사를 시작했다. 기혼 여성들은 대체로 국영 작업장에 근무할 필요 없기 때문에 장사를 시작했고 곧 가족의 생계부양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공개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로 인해 폭력에 쉽게 노출되었다.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여성들 그리고 간부를 지냈던 사람들에 의하면, 북한에서 장사를 하려면 관리와 시장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의 경우에는 "뇌물"이 강간 등의 성폭행을 포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해자들은 당의 고위 간부, 기업소 관리, 장마당 관리, 길거리나 검문소의 보안원, 보위성 요원, 검사, 군인, 기차 내의 보안원 등이다.

이 여성들이 설명한 성추행은 온 몸을 더듬고,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고, 치마나 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볼을 쿡쿡 찌르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팔로 껴앉는 행위 등이 있었다. 신체적인 희롱은 언어폭력과 협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은 또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누가 강간을 하고 아이들을 추행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어느 집을 피해야 한다거나, 어느 길은 저녁에 혼자 걸으면 안된다거나, 어느 간부가 최근에 누구를 성적으로 건드렸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적시한 동향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관리들은 봉급이 낮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점점 부정부패에 관여하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벌을 빌미삼아 성폭력과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열악한 경제와 식량 사정 때문에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공적 영역을 넘나들면서 물건을 날라다 팔고 있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또 "남성 중심적인 국가에서 시장을 사찰하는 보안원과 기차 내 보안원 및 군인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기차 내 보안원들이 성인 여성과 여아 승객들을 몸수색하고 추행한다는 보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여성들이 대부분인 장마당을 먹이감으로 삼는 남성 지배적인 국가"로 규정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여성들 대부분은 장사를 하면서 갈취나 성희롱의 먹이감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장사를 키우려는 욕심을 접고 근근이 먹고 살 정도로만 유지하거나, 돈과 연줄이 많은 힘 있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거나, 권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거나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사꾼이 "비사호주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지를 보안원이 조사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는 몸수색을 하기 위한 구실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2018 Choi Seong Guk for Human Rights Watch

구제책의 부재

본 보고서를 위해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성폭력 생존자 중에서 단 한 명만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신고하고자 시도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은 보안원을 신뢰하지 않고 또 보안원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여성들은 보안원들이 성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간주하지 않으며, 피해 사실을 신고하러 보안소에 간다는 것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도 여자들이 그런 기관에 가지 못하게 조심시켰다.

북한에서 보안원 등 관리로 일했던 8명은 성폭력 사건은 목격자가 있을 때만 신고되며 그때도 피해 여성이 아니라 예외없이 제3자가 신고한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탈북민들 중 7명만이 보안소에서 성폭력 사건을 수사한 사례를 알고 있으며 그 사건들은 모두 피해자가 심각한 상해를 입었거나 사망한 경우라고 답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탈북민들은 모두 북한 정부가 성폭력 생존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떠한 유형의 심리사회적 지원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정신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각하다고 했다.

북한에서 의사와 간호사로 일하다가 2010년 이후에 탈북한 이주민 2명은 성폭력 피해자를 치료하고 의료적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에 관한 절차와 규정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의료 전문가들을 위한 성폭력 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으며 강간 피해자가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여성 장사꾼이 장마당 인근 골목길에서 장마당 관리원에게 뇌물을 주는 모습

© 2018 Choi Seong Guk for Human Rights Watch

여성에 대한 차별

북한에서는 성차별과 여성의 종속성이 보편화되어 있다. 북한은 '성분'이라 불리는 사회정치적 계급체계 하에서 주민들을 "핵심" "동요" "적대" 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계급은 또 자신의 남성 친족들, 특히 아버지와 아버지의 남성 친족, 그리고 혼인 후에는 남편과 남편의 남성 친족들의 지위에 크게 의존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보다 낮고”. 여성에 대한 평가는 “성적으로 순수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가정에서 남성에게 복종을 잘 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정부 조직은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에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여성은 입법기관 의원의 20.2%, 정부 세부기구 책임자의 16.1%, 판사와 변호사의 11.9%, 외교관의 4.9%, 외무성 관료의 16.5%를 차지한다.

문서 상으로 북한은 성평등과 여성 및 여아의 권리를 중시한다고 말하고 있다. 형법에서는 여성에 대한 강간, 인신매매,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과의 성관계, 아동 성폭력을 범죄화하고 있다. 2010년에 제정된 여성권리보장법에서는 가정폭력을 금지한다. 북한은 또 다섯 개의 국제인권조약을 비준했는데, 여기에는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과 여성차별철폐협약 등 여성과 여아의 권리에 관한 조약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의 협약 준수 현황을 검토하기 위해 북한 대표부와 진행한 회의에서 북한 관료들은 여성차별철폐협약의 모든 요소가 북한의 가정폭력법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이 채택한 "여성 차별"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위원회의 질의에 답변하지 못했다.

북한 중앙재판소 법률 고문 박광호는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이 해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는 보상을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받는 경우 거기에 응할지 말지는 그 여성의 선택이며, 따라서 그 상황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더 가벼운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에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고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면 그것은 강간이며 가해자는 그에 따라 처벌받는다고 자신의 발언을 수정했다.

주요 권고사항

북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보안성, 국가안전보위성, 군, 판사, 변호사, 기업소 관리자, 당 간부를 포함하여 정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간 및 기타 성폭력 행위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여 기소하도록 명확하고 구속력 있는 명령을 내린다. 
  • 보안성은 가해 혐의자의 직위에 상관없이 성폭력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기소한다.
  • 정부 관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고, 익명 또는 기타 방식으로 신고된 사건과 사건 조사 결과 이루어진 기소 및 조치에 대한 통계를 수집한다.
  • 법률을 개정하여 성폭력, 성학대, 강간, 부부강간 등 모든 형태의 젠더폭력을 범죄화하고, 그러한 법률이 효과적으로 집행되도록 한다.
  • 북한에서 여성폭력 문제가 만연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전국적인 캠페인을 통해 대중들을 교육시키며, 성폭력과 가정폭력 및 강간 등 모든 형태의 여성폭력이 불법이며 이러한 사건은 신고, 조사, 기소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성폭력 및 젠더폭력 사건과 관련한 신고, 혐의, 수사, 기소, 판결, 형량에 관한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공개한다.
  • 상담, 의료지원,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등 성폭력 및 젠더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보건 및 복지서비스를 개발한다. 재생산 건강 및 성교육 프로그램과, 차별 금지 및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낙인 철폐와 관련된 핵심 사안들에 대해 기본 교육을 수립한다.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 기타 관계국, 유엔기구, 그리고 북한에서 활동하는 국제NGO들에 대한 권고

  • 북한 정부가 본 보고서에서 권고한 개혁 조치를 이행하도록 공개적 및 비공개적으로 촉구한다.
  •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여성의 권리와 성폭력 및 젠더폭력에 관한 의무 교육을 제공하여 그들의 활동이 여성폭력을 조장하는 기존의 성 편견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한다.
  • 북한 정부가 여성폭력 예방, 가해자 처벌, 생존자 지원을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 특히 상담, 의료지원, 교육과 법률 및 사법 개혁을 위한 기술적 지원, 수사기관 교육을 위한 기금 지원을 통해 성폭력 생존자 지원과 관련된 북한의 서비스 개발 및 개혁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지원을 확대한다.
 

방법론

북한은 자국 내 삶의 어느 측면에 대해서도 데이터를 공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공개할 때는 매우 제한적이고, 일관되지 않거나, 그 효용성이 의심스럽다. 북한은 자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접근과 자국민과 외국인 간의 접촉을 엄격하게 제한하며, 우리가 아는 한 자국 내에서 어떠한 형태의 독립적인 인권 조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보고서와 관련하여 북한 내에서의 인터뷰는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북한 내에서 정부 관리들이 여성들에게 자행하는 성폭력과 그러한 사건에 대한 북한 정부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인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북한 밖에 거주하는 북한인 총 106명(여성 72명, 여아 4명, 남성 30명)을 인터뷰했다. 이 중 57명은 북한의 현 지도자인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이후에 탈북했다.

모든 인터뷰는 휴먼라이츠워치 직원에 의해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모든 인터뷰 참가자들에게는 본 조사의 목적과 정보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를 설명했다. 또 인터뷰 참가의 자발성에 대해 설명하고,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특정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거나 언제든지 인터뷰를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나중에 참고할 목적으로 전체 인터뷰의 절반 가량을 인터뷰 참가자의 동의를 받아 녹음했다. 모든 인터뷰 참가자들에게는 인터뷰 녹음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인터뷰 참가자들에게 인터뷰에 대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다. 근무시간 중에 인터뷰를 한 참가자들에게는 근무를 빠진 시간만큼 최저 임금에 해당하는 보상을 지불했다. 인터뷰 장소에서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교통비를 제공했다.

인터뷰 날짜를 정하기 전과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그리고 필요한 경우 인터뷰 도중에 참가자들로부터 구두상으로 인터뷰 참가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 모든 인터뷰는 참가자들이 편안하고 또 외부와 어느 정도 차단되어 있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개별 인터뷰에 더하여 휴먼라이츠워치는 세 번의 그룹 토론을 진행했다. 매 회마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2-4명이 참여했고 인터뷰 참가자들과 잘 알고 지내는 전문가나 성폭력 전문상담원이 동석했다. 이러한 비공식 모임의 목적은 북한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배경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룹으로 만난 이유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석시킴으로써 인터뷰 참가자들이 안전함을 느끼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그룹 토론은 유용한 참조 지점을 제공하고 개별 인터뷰에서 참가자들이 한 말을 교차점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보의 질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참가자들에게는 이 토론의 목적을 설명한 후 그룹 모임에 대한 참가 동의를 받았다. 그룹 모임은 참가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외부와 차단된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녹음은 하지 않았다.

본 보고서의 인터뷰에 응한 모든 성폭력 생존자들은 자신이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복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익명으로 처리해주기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본 보고서에서는 참가자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하였다. 또 피해자나 증인의 신원을 알아볼 수 있는 개인 정보는 모두 배제하였다.

우리는 또 북한인 106명과의 인터뷰 외에 북한인들의 성폭력과 젠더폭력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 보건 전문가와 상담원, 활동가, NGO 활동가, 법률 전문가, 학자들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유엔 기구, 한국 내 북한지원단체, 북한 정부기관, 연구자, 국제적인 분석가들이 작성하여 공개해 놓은 자료들을 수집하여 검토했다. 이러한 자료들은 북한 내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과 젠더폭력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본 보고서의 한글본은 영문 보고서를 번역한 것으로, 본문에 인용된 탈북민들의 발언도 직접 인용이 아니라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용어

 

본 보고서를 위한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북한어에는 성폭력과 젠더폭력, 가정폭력 및 관련 주제들과 관련하여 남한이나 영어를 사용한 국제적인 논의에서 흔히 사용되는 일부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그로 인해 폭력 피해의 경험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자신의 경험을 사실 그대로 서술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그들이 기술한 대로 그들의 목격담과 경험담을 기록하였다.

보고서에서 "강간"이나 "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아래에 요약한 바와 같이 국제적인 기준에 따른 정의를 사용했으며, 북한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의 이해

북한어에는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우리가 인터뷰한 북한인들은 "자기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이라고 이 개념을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강간은 신체적인 폭력을 동반한 원치 않는 성기 삽입으로 이해하며, 신체적 폭력은 있으나 성기 삽입은 하지 않은 성폭력의 경우 "성적인 측면이 내포된 폭력"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참가자들에 따르면, 심각한 신체적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성추행이나 성학대는 다소 모호하게나마 "여성들이 불편함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성적인 측면이 내포된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국제적인 정의

본 보고서에서 휴먼라이츠워치는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의를 사용한다.

성폭력(sexual violence)은 “가정과 직장을 포함하나 이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장소에서 피해자와의 관계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협박을 이용하여 특정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가한 모든 성적인 행동이나 성행동을 얻고자 한 시도, 원치 않는 성적인 발언이나 성추행이나, 인신매매 등을 의미한다. 협박은 그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유형의 힘을 포함할 수 있다. 물리적인 힘 외에 심리적인 위협이나 협박, 기타 위협을 포함할 수 있다."

성학대(sexual abuse)는 성폭력의 하위 범주로 "무력 또는 불평등하거나 위협적인 상황을 이용하여 성적인 성격의 신체적인 침해를 실제로 행했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강간, 성적 공격,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나 성적인 행위가 포함된다.

성적 공격(sexual assault)은 성적인 삽입과 강간을 위해 무력 등의 힘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강간(rape) 은 “정도가 미약하더라도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신체의 특정 부위에 성기를 삽입하거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성기나 항문에 물건이나 신체의 일부를 삽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희롱(sexual harassment)은 "고용(비공식적 고용부문 포함),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접수, 스포츠 활동, 재산 거래 등의 수직적 및 수평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원치 않는 "성적인 행동"을 말하며, "(직간접적인) 신체적 행위와 성추행, 대가성 성행동에 대한 요구나 요청, 성적인 암시가 내포된 발언, 성적인 그림이나 포스터 또는 낙서의 게시, 기타 원치 않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비언어적인 성적 행동"을 포함한다.

위의 용어 정의에서는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성폭력을 "성폭력", "성학대", "성적 공격"으로 구분하여 번역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한국어의 통상적인 표현에 따라 그러한 행위를 "성폭력" 또는 "성폭행"이라고 지칭한다.

 

 

I. 배경

북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은 독재적이고 군사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국가로써 스스로를 "사회주의 국가"로 설명하고 자국의 정치제도를 "인민민주주의 독재"로 정의한다.[1] 북한 정부는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한 조선노동당이 지배한다. 김정은 일가의 통치 하에서 모든 기본적인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없고 독립적인 시민사회도 없다. 2천5백만 명의 주민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처벌을 이용한다.[2]

2014년에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이하 "유엔조사위원회")는 처형, 감금, 강제노역,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 등 북한 정부가 체계적이며 광범위하게 자행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유엔조사위원회는 또 가정에서부터 직장, 공적 장소에 이르는 사회 전 분야에서 그리고 정부 관리들과의 접촉에서 성폭력과 젠더폭력이 만연해 있음을 기록하였다. 또 강제낙태, 구금 시설에서 여성 수감자들에게 자행되는 강간 등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형태의 성폭력을 기록하였다.[3]

북한의 설립자이자 김정은의 조부인 김일성이 1949년에 확립한 수령체제 하에서는 절대권력을 지닌 지도자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의 남자 후계자가 국가와 당, 군부의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 이 체제는 수령의 말과 명령을 위시로 하여[4] 조선노동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5], 조선노동당 규약[6], 사회주의헌법[7],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내법[8]에 따른 지도 이념을 기반으로 한다.

법률제도는 북한의 지도부와 정치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기본권과 자유를 제한하고 여기에 도전할 경우 가혹하게 처벌한다. 재판부는 독립적이지 않으며, 사법기관은 대체로 개인의 보호보다는 정치체제와 그 체제가 필요로 하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주민들은 '성분'이라 불리는 사회정치적 계급체계 하에서 "핵심" "동요" "적대" 계층으로 분류되며, 이에 따라 일자리, 교육, 식량, 거주지, 보건과 같은 기본 서비스가 분배된다. 북한 정부는 '성분'을 이용하여 학교와 직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그리고 당에 대한 충성도에서 얼마나 열성을 보이는지에 따라 주민들을 구분한다.[9] 여성의 계급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또는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는지와 당에 얼마나 충성하는지에 더하여, 아버지와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의 지위 그리고 혼인 후에는 남편과 남편의 남자 친족들의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주민은 조선노동당의 통제와 감시 하에서 운영되는 대중조직에 가입하고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7-13세의 모든 아동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야 한다. 이들의 활동은 14세부터 고등교육을 마치는 30대 초반의 학생들로 구성되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회원들이 감시한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직업 및 혼인 상태에 따라 북조선직업총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이하 "여맹" 또는 "여성동맹") [10] 등의 관련 대중조직에 가입한다. 당원이 되는 것이 가장 높은 목표로, 전체 인구의 약 15%가 당원 자격을 얻는다. 당원들은 또 당이 관리하는 대중조직의 관리자가 된다.[11]

북한 정부는 대규모의 비밀정보원 조직, 여맹과 같은 대중조직의 관리, 이웃간 감시체제(인민반)로 구성된 방대한 감시망을 통해 주민들의 모든 일상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인민반은 20-40가구로 조직하여 한 명의 반장을 지정하는데, 반장은 모든 반원들의 가정사를 세세히 조사하여 수상한 활동을 인민보안성(경찰)[12]이나 국가안전보위성(비밀경찰, 이하 "보위성" 또는 "보위부")에 보고한다. 반장은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가정을 방문하여 등록되지 않은 손님이나 불륜 행위가 있는지를 확인할 권한이 있고 그러한 사항을 보안기관에 보고한다.[13] 이러한 장치는 주민들의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고, 조금이라도 반공산주의, 반정부, 반혁명적 행동의 기미가 보이면 즉각 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이다.  

김일성은 개인 숭배와 더불어 주체사상[14]이라는 고립과 극단적 민족주의의 교리를 수립하였고, 휴전으로 중단된 한국전쟁(1950-1953, 공식적으로는 아직 종전되지 않았다) 이후에는 군사적 대비태세에 초점을 맞춰 이를 확장시켰다.[15]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후 김정일이 선군사상(군 우선주의)을 내세우면서 국방위원장 자리에 올랐다.[16]

북한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2014년 제13기 최고인민회의에 선출된 여성 부수장급은 20.2%에 불과했다. 최고인민회의는 입법을 담당하는 단원제 심의기구이다.[17] 가장 중요한 국방위원회나 당의 정책을 결정하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다.[18]

극심한 빈곤과 제한적인 시장 개혁

북한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19] 유엔아동기금(UNICEF)에 의하면 2017년 12월 현재 북한에서는 약 1,800만 명이 식량 불안정을 겪으며, 20만 명의 아동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5세 미만 아동 세 명 중 한 명 그리고 12-23개월 아동의 거의 절반 가량이 빈혈 상태이다.[20]

1948년 정권 수립 후에 북한은 주민들이 민간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계획경제를 구축했다. 1950년대에는 배급제를 도입하여 식량과 의복 등 모든 생필품을 배급소를 통해 공급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주민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효과적으로 제공하지 못했고, 구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식량 수입과 원조에 의존하여 근근이 운영을 이어갔다.

1990년대 초에 북한은 그동안 주요 원조국이었던 소련이 붕괴하면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동시에 그 이전부터 부실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경제가 여러 해에 걸친 홍수와 가뭄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이것이 대기근을 초래하였는데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경제위기가 가장 극심했던 1994년부터 1998년까지의 "고난의 행군" 기간에는 기아와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수십 만에서 2백5십만-3백만 명[21]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22]

수년에 걸친 대기근 동안 북한 정부는 사상 주입을 통해 북한의 정치체제를 유지하였고, 그 정치체제와 권력층을 보호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하여 지원을 제공했다. 이것은 정부가 소모품으로 간주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23] 유엔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최소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심각한 국제인권법 침해로 인해 죽어갔다. 또 그 고통은 죽은 자들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수백만 명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생존자들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해 장기적인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결론지었다.[24]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이 북한의 주된 무역국이자 공여국의 자리를 차지했고, 배급제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수요와 공급 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장마당이라 불리는 비공식적인 시장이 등장했다. 이러한 장마당들은 지하에서 불법으로 운영되는 "농민시장"으로 출발했는데, 이곳에서는 물품의 주요 공급자가 협동농장 밖에서 개인적으로 기른 곡물과 야채 또는 가축을 가져와 파는 농민들과 중국에서 식량을 밀수해오는 상인들이었다. 중앙 정부는 이전까지 독점 관리해왔던 식량 거래를 지방 정부들이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개인들 간의 식량 거래를 대체로 묵인했다.[25]

북한 정부는 정기적인 임금과 식량 배급을 중단하기는 했으나 남성들과 미혼 여성들은 의무적으로 국영 작업장에서 계속 일하도록 했다. 작업장에서는 임금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설령 있더라도 한 달에 옥수수 1-4kg에 불과했다.[26] 기혼 여성들은 대부분 작업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장사를 시작했고 곧 가족의 주된 생계부양자가 되었다.[27]

양강도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3년에 탈북한 윤순애(40대)는 휴먼라이츠워치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우리 여자들은 집에 있으면서 남편이 가져다 주는 것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물건을 사고 파는 법을 배워야 했고, 또 그런 것들이 다 불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 더러운 반공산주의 행위인 장사를 해야 했습니다.[28]

2002년 7월이 되자 김정일은 경제자유화 실험을 시작했고, 북한은 몇몇 장마당들을 합법화하고, 공산품 가격과 임금을 조정하고, 부실한 국영 기업소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하는 등 경제개혁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29] 그러나 북한 정부는 장마당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2005년에 북한 정부는 지난 십여 년간 진행되었던 자발적인 시장 자유화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이 정치적 안정성이 저해될 것을 우려하여 장마당을 불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30]

정부는 먼저 남자들이 장마당에서 물건을 파는 것을 금지하고, 장사를 50세 이상의 여자들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 금지 규정과 중앙 정부의 지시를 집행하는 것은 지역 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31] 50세 미만으로 공식 장마당에 참여할 수 없는 여성들은 장사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다수가 유통이나 지역간 거래에 참여했다.[32]

또 한 가지 시장에 큰 타격을 준 것이 2009년에 정부가 단행한 극단적인 화폐개혁이다. 이 화폐개혁은 막대한 인플레를 유발했고 일시적으로 장마당의 기능을 중단시켰다. 일부 장사꾼들은 지금까지 번 돈을 거의 다 잃었는데 정부가 기존 화폐의 상당 부분을 무효화시켰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북한 정부는 계속해서 장마당을 엄격히 규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33]

2010년 이후 정부가 승인한 장마당의 수가 두 배로 증가하여 2016년에는 총 404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해에 약 110만 명이 장마당에서 소매로 물건을 팔거나 관리자로 일했다.[34] 북한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4년 말에 탈북한 3명의 북한인은 지역의 당 간부들로부터 2013년에 합법적인 장사활동에 대한 단속을 중단하고 장마당의 나이 제한을 없애라고는 지시가 평양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35]

이와 동시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 관리와 권력자들은 새로운 체제 하에서 뇌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이들은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주민들로부터 뇌물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부정부패가 빠르게 일상화되었고, 뇌물이 권력자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17년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에서 북한은 180개국 중 171위를 차지했다.[36]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모든 탈북민들은 90년대 중반의 대기근 이후 장마당을 관리하는 권력자들이 장사꾼들 그리고 장마당에서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37] 부정부패는 곧 장마당을 넘어서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었는데,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돈을 받고,[38] 구금 시설의 조사관과 담당관들이 수감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39] 전 분야의 보안원들이 뇌물을 받았다.[40] 직위가 낮은 군인들은 고위 장교들에게 뇌물을 주었고 또 당원증을 얻기 위해 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었다.[41] 

유엔조사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 관리들은 봉급이 낮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점점 부정부패에 관여하고 있다.”[42] 몇몇 옵저버들은 이러한 상황을 "여성들이 대부분인 장마당을 먹이감으로 삼는 남성 지배적인 국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43]

 

II. 북한의 여성과 사회 그리고 법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녀성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떠밀고 나가는 힘있는 동력이다.[44]
—북한의 공식 기관지 노동신문에 인용된 김일성의 발언

여성과 사회

북한은 2016년 4월에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두 번째 보고서에서 "북한의 여성들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와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현명하신 지도 아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조국의 번영을 위해 뛰어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여성의 발전과 여권의 보호 및 신장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는 (……) 여성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공화국의 정책과 번영하는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여성들이 보여준 애국적 열정과 창의력에서 나온 결실이다"라고 자찬했다.[45]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북한 정부는 또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여성들에게 "조화로운 가정을 확립하고 자녀 양육과 교육의 본보기가 됨으로써 사회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을 독려했다고 주장했다.[46]

북한에는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가 여전히 깊게 뿌리 박혀 있다.[47] 유교는 엄격하게 위계적이며 사회적 조화를 중시하는 윤리체계이자 철학적인 체계이다.[48]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보다 낮고, 여성의 평판은 "성적으로 순수"하고[49] 가정 내에서 남성에게 복종하는 이미지에 달려 있다.[50]

전통적으로 북한에서는 결혼이 두 개인 간의 결합 또는 애정이나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두 사회구성원 간의 결합으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조선노동당은 성에 대한 공개적인 표현을 포함하여 이러한 전통적인 가족의 순수성과 안정성을 저해한다고 생각되는 모든 관행을 금지한다.[51] 당은 또 이혼을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52] 대기근 이후에는 워–물론 여성에게 더 어렵고, 연줄과 뇌물을 이용하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이혼이 더 쉬워졌다.[53]

유교적 전통사회에서는 혼인 후에 여성이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 첫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 가족의 맨 아랫사람으로서 남편의 가족들을 봉양해야 했다.[54] 지금은 여성이 혼인 후에 시집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사라졌지만, 경제적 행위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젠더 역할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북한에서 장사를 했고 2010년에 탈북한 박수련(50대)은 "여자가 결혼을 하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서 널리 통용되는 이 말은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가족에게 종속됨을 나타내는 것이다.[55]

양강도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2013년에 탈북한 리춘석(40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입니다. 남자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남자들에게 순종하고 또 남자들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56]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여성과 여아

정형화된 성역할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탈북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동들은 여성과 여아에 대한 차별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란다고 말했다. 여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남자 아이들과 동등하지 않으며, 부당한 대우와 폭력에 저항할 수 없고, 가정이나 공적인 장소에서 남자들에 의한 폭력 피해자가 되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배운다.[57]

2010년부터 2016년 사이에 탈북한 학생과 교사들은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남녀공학반인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남자들이 반장을 하고, 교사의 대부분이 여자인 경우에도 대체로 남자 교사들이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58]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구조와 관행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남학생과 여학생 간의 상호작용 규정에도 반영되어 있다. 십대의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에게 말할 때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관행은 대학교와 직장, 혼인, 가족생활로까지 이어진다.[59] 심지어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소 혼인 연령도 남자는 18세, 여자는 17세로 차이가 있다.[60]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여자들은 가족과 가사일을 돌볼 책임이 있고 가정과 사회에서 남자에게 예속된 이등시민 취급을 받는다고 결론지었다.[61] 유엔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증인들은 "북한에서는 가정폭력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또 여성폭력이 가정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남자들은 공공장소에서도 여자들을 때리거나 성폭행한다고 보고했다.[62]  유엔조사위원회는 또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젠더폭력이 사회 전 분야에 만연해있다.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보호나 지원, 가해자 처벌 조치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63]

한국 정부의 북한 연구 전문기관인 통일연구원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1,12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남성 352명과 여성 773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48.6%가 북한에서 여성들에 대한 강간과 성희롱이 "흔하다"라고 답했다.[64]

2011년 이후에 탈북한 북한인들은 성인 여성과 여자 아이들이 성인 남성과 남자 아이들보다 대학에 다니고,[65] 군에 입대하고, 더 나아가 북한에서 힘 있는 자리에 오르는 관문인 조선노동당의 당원이 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66] 2016년에 북한이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기관 종사자 중 여성은 약 20%에 불과하다. 2016년 현재, 여성은 정부기관에서 세부기구 책임자의 16.1%, 판사와 변호사의 11.9%, 외교관의 4.9%, 그리고 외무성 관료의 16.5%를 차지한다.[67]

성교육과 젠더폭력에 대한 인식 부재  

북한의 학교들은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건강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의 관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탈북민 21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들은 모두 여학생들이 대체로 생리와 여성의 위생, 임신에 대한 정보를 얻지만 학교에서 섹슈얼리티를 다루지는 않으며 성기관이나 임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답했다.[68] 몇몇 탈북민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생물 수업시간에 동물의 생식기와 기타 신체 부위에 대해 학습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밝혔다.[69]

북한의 HIV/AIDS 현황에 대한 독립적인 통계 자료는 없고, 북한 정부는 자국 내에 단 한 건의 에이즈 감염자도 없다고 주장한다.[70] 휴먼라이츠워치는 2011년 이후에 북한을 떠난 탈북민 30명과의 인터뷰에서 성병을 포함하여 북한 내에서의 성폭력과 섹슈얼리티의 실태에 대해 물었다. 이들 중 누구도 안전한 성관계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으며, HIV를 포함한 성병의 예방법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전직 의사였던 탈북민 2명과 간호사였던 탈북민 1명은 북한에서 일할 당시 성병에 대해 제한적인 지식을 습득했다고 말했다. [71] 

북한어에는 성폭력과 젠더폭력, 가정폭력, 성학대, 성적 공격, 성희롱에 부합하는 어휘가 없다. 우리가 인터뷰한 북한인들은 가정폭력은 "자기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 성기 삽입이 수반되지 않은 성폭력은 "성적인 측면이 내포된 폭력"으로 풀어서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주민들은 강간을 신체적 폭력을 동반한 원치 않는 성기 삽입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인터뷰 참가자들에 의하면, 성학대나 심각한 신체적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성추행은 다소 모호하게나마 "여자들이 불편함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성적인 측면이 내포된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72]

2017년 11월 8일에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북한 대표부와 진행한 회의에서 북한 중앙재판소 법률 고문 박광호는 국제적인 기준들이 북한의 국내법에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질의 중에 나온 "부부강간"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위원회에 설명을 요청했다.[73]

박광호는 또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이 해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는 보상을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받는 경우 거기에 응할지 말지는 그 여성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서는 가해자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피해자에 대한 영향이 덜 심각하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더 가벼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그는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고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면 그것은 강간이며 가해자는 그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고 자신의 발언을 수정했다.[74]

우리가 인터뷰한 북한인들은 모두 섹슈얼리티와 젠더, 성관계에 대한 지식 또는 논의가 부재하고 사회적 낙인이 강해서 북한의 여성과 남성들은 성활동의 현실에 무지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재생산 건강과 임신, 피임, 성병 또는 성범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으며 그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여성들은 자신을 성폭력이나 학대, 착취 또는 강간의 피해자로서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휴먼라이츠워치는 1990년대에 어린 나이에 강간을 당했으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두 여성의 사례를 기록하였다.[75]

지난 20여 년간 중국에서 밀반입된 휴대전화와 (음란 영화를 포함한) CD를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는 정보의 양이 증가했다. [76] 그로 인한 한 가지 부정적인 영향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뷰한 탈북민들은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 도시와 농어촌 지역,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에 지식과 관점이 크게 다른 듯 보인다. 평양이나 (함경북도, 양강도와 같은) 북쪽 지방의 도시에서 살다 온 20대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이나 농어촌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 비해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점이 더 자유로운 경향이 있다. 이처럼 더 자유로운 견해를 갖게 된 데는 국경 지역의 교역, 외부 세계로부터의 정보, 밀거래망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북한 주민들을 접했기 때문이다.[77] 

사회적 낙인과 피해자에 대한 비난

북한 주민들은 어렸을 때부터 여성폭력을 용인하는 정형화된 성역할을 배운다. 강간이나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의 피해자들은 그런 일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고 수치심을 느낀다. 

40대에 함경북도의 국영 기업소에서 관리자로 일하다가 2014년에 탈북한 윤종학은 "여자가 왜 강간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듭니까? 나는 내 마누라가 장마당에만 앉아서 물건을 팔게 했습니다. 내가 거기 사람들을 다 아니까 안전하지요.”라고 말했다.[78]

이처럼 만연한 사회적 낙인은 피해자들을 침묵시킨다. 북한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장사를 했던 리춘석(40대 후반)은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그것은 여자가 꼬리를 쳤기 때문"이라고 했다.[79] 장사를 했던 윤순애는 강간을 당한 후 “수치스럽고 무서웠다.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다. 북에서는 자기 얼굴에 침 뱉기고, 사람들이 다 나를 욕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80]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성폭력은 "피해자들이 느끼는 수치심과 낙인 때문에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웠다"고 강조하고 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그러한 폭력의 발생 상황을 부분적으로만 포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81]

중국의 역할과 강제 북송된 여성들의 경험

지난 20여 년간 인신매매 또는 자발적 의사에 따라 북한 여성들을 중국으로 내보내는 불법 조직들이 성장했다. 이들은 남한이나 다른 나라로 가게 해주거나, 중국에서 일자리를 소개해주거나, 먹여주고 집으로 돈까지 부쳐줄 중국 남자를 찾아주겠다는 등의 약속으로 여성들을 부추긴다.[82]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조직을 통해 "신부"로 팔리거나 업소와 온라인 음란채팅 서비스 등 상업적 성매매를 위해 팔려간다.[83] 따라서 탈북이 절실한 여성들은 인신매매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된다.  

중국 정부는 모든 북한인을 "불법 경제이주민"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송환되면 자국에서 가혹한 조사와 고문, 열악한 구금 환경, 탈북에 대한 처벌 등 인권침해상황에 처해진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망명을 거부하며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유엔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사람들은 구금 시설에서 가혹한 폭력에 노출된다.[84]

유엔조사위원회 보고서는 또 북한 정부가 탈북을 시도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간과 기타 형태의 성폭력 등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했다고 밝혔다.[85] 이 보고서는 또 "임신한 상태에서 송환된 여성들은 강제로 낙태를 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엔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송환된 주민들을 처리하는 구금 시설에서는 담당관들이 강간이나 다른 성폭력을 자행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설명했다.[86]

여성 관련 국내법과 국제법

문서 상으로 북한은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1948년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에 소련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한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설립했을 때 김일성의 임시 정부는 여성의 평등권을 국내법에 명시했다.   

이후 북한 정부는 여성을 보호하는 다른 법률들을 통과시키고, 2001년에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을 비준하는 등 국제인권조약들을 비준했다. 북한은 1990년에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2014년에 아동의 매매·성매매 및 아동 음란물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Optional Protocol on the Sale of Children, Child Prostitution and Child Pornography), 2016년 12월에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을 비준했다. 또 1981년에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을 비준했다.[87]

김일성에 의하면 "여성을 사회적으로 해방하고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반제국주의, 반봉건 민주혁명"의 한 부분이며 "더 높은 차원의 혁명" 과업을 완수하는 일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88]

1946년에 공표된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평등권을 확대하여 복지 수당과 상속 및 재산 공유권, 혼인과 이혼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략 결혼, 일부다처제, 첩, 그리고 여성의 매매를 금지했다. 이 법은 또 조선노동당의 정치적 통제 하에서 운영되는 여성동맹을 창단하고 모든 기혼 여성들이 가입하도록 했다. 여성동맹은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참여와 발전을 증진할 책임을 맡았다.[89]

이러한 변화는 집단화된 기업소에서 여성 고용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업무상 지위와 임금 수준이 남성들보다 낮기는 했지만- 국영 작업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7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77조를 통해 여성의 평등과 사회 참여를 위한 법적 기반을 강화시켰다. [90]

여자는 남자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산전산후 휴가의 보장, 여러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를 위한 노동시간의 단축, 산원, 탁아소와 유치원망의 확장, 그 밖의 시책을 통하여 어머니와 어린이를 특별히 보호한다. 국가는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할 온갖 조건을 지어준다.[91]

1987년에 북한 정부는 형법을 개정하여 강간, 인신매매, 여아나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과의 성관계 등 다양한 형태의 여성폭력을 금지시켰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개정 법률에 포함된 정의들은 심각한 오류가 있고(예. 강간은 여성으로 한정되며, 동의가 핵심적인 고려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처벌에 일관성이 없다(예. 아동학대에 대한 경미한 처벌).

현재의 북한 형법에 의하면, 폭력이나 협박 또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여 여성을 강간한 자[92]는 교화소(노동을 통한 교화를 의미한다)에서 최대 5년형에 처할 수 있다.[93] 여러 명의 여성들을 강간했거나, "심각한 피해"(정의되지 않음)를 유발했거나,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교화소에서 최소 10년형에 처할 수 있다.[94]

복종관계(정의되지 않음)에 있는 여성과 성관계를 한 자는 단기 강제노동시설인 노동단련대에서 최대 1년형에 처할 수 있다.[95] 여러 명의 여성을 반복적으로 폭행하거나, "여성을 타락"(정의되지 않음)시키거나, 여성의 자살을 유발한 자는 교화소[96]에서 최대 3년형에 처할 수 있다. 미성년 여아(15세 미만)와의 성관계는 노동단련대에서 최대 1년형, 반복 범죄의 경우에는 교화소에서 최대 5년형에 처할 수 있다.[97] 2007년 12월에 채택된 "일반 범죄에 관한 형법 부칙"에 의하면, 사회주의 문화를 저해하는 "특히 무거운"(정의되지 않음) 강간과 납치 범죄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98]

북한의 형법은 가정폭력을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2010년 12월 통과된 여성권리보장법에서는 가정폭력을 금지하며, 지역 인민위원회와 기관, 기업소, 조직 등에 "가정폭력에 대해 주민과 종사자들을 충분히 교육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다.[99] 그러나 이 법은 가정폭력이나 부부강간을 범죄화하지 않으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제공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법 집행은 문서 상의 법률과 상당히 다르다. 북한의 형사사법제도는 여성과 여아의 기본권을 일상적으로 무시한다. 사실상 헌법과 법률, 기타 법적 장치들은 다른 일당제의 전체주의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후에 조선노동당의 지시를 합법화하는데 이용된다. [100] 유엔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법률과 사법제도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북한에는 법에 의한 통치는 있지만 독립적이고 공평한 사법부에 의한 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령에 이행 점검과 관련한 규정이 있더라도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무시할 수 있다.”[101]

북한의 법률은 공식적인 형태에서도 대체로 모호하고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고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정부 관리들이 그 법률을 집행할 것인지 또는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최대화된다.[102] 

일례로, "강간" 범죄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형법의 관련 조항은 여성과 여아만이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강간" 범죄를 구성하기 위해서 어떤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심각한 피해"와 "범죄에 의해 여성을 타락시키는 것"도 형법에 있지만 정의되지 않았다. 2012년 5월에 통과된 형법 개정안은 강간에 대한 최대 형량을 교화소 5년형에서 10년형으로 높이고[103] 다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최대 형량은 낮추었다.[104]

2010년도 여성권리보장법은 일반 원칙들을 열거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주요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고, 어느 정부기관이 이 법률의 집행을 감독할지 또는 어떤 구체적인 조치가 언제 취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105] 또 법의 집행과 인식에서도 중요 사항들이 빠져 있다.  

2011년 이후에 탈북한 사람들 중 누구도 여성권리보장법이 집행된 사례는 고사하고 그러한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106] 또 2011년 이전에 탈북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가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은 북한 법률이 명시하는 성평등의 보호는 여성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불평등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107]  일례로, 양강도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4년에 탈북한 오정희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혁명의 두 수레바퀴 중 하나다…… 정부는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그런 혁명적인 말들을 사용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일도 더 많이 하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목소리나 권력이 없습니다.[108]

 

III. 권력자의 지위에 있는 남성들에 의한 성폭력

정부 관리에 의한 강간과 성폭력

북한에서 고위 간부로 일했던 8명을 포함해 우리가 인터뷰한 모든 탈북민들은 당 고위 간부, 교화소나 구금 시설의 감시원, 보안원, 보위성 요원, 검사, 군인 등 권력자가 여자를 "찍으면" 그 여자는 성관계건, 돈이건, 다른 어떤 것이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109]

북한에서 보위부의 고급 간부로 일했던 고면철은 2000년대 후반에 자신이 한 달에 한 번씩 평양에 있는 호텔방에서 보위부 동료 서너 명과 만나서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110] 다음은 그의 증언이다.

밤에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각자 우리가 본 영화에서 좋아하는 여배우들을 골라서 호텔 로비 직원에게 데려오라고 시킵니다. 우리가 누구를 고르건 간에 한 시간 내에 우리 방문 앞에 도착합니다. 아무도 거절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르니까 저 아이들이 좋아하는구나 생각하죠. 우리는 힘과 영향력이 있고, 돈도 주고, 또 우리가 자기들을 좋아하니까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한테 연락할 수 있다는 걸 알거든요.[111]

다른 몇 명의 정부 관료들은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사회의 위계 구조로 인해 북한 남자들은 관심있는 여자에게 접근하기 전에 먼저 그 여자가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지를 생각한다고 했다.[112] 2014년 말에 탈북한 송상현은 함경북도에서 교사로 일했고 지방 정부에 가까운 친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정부 관리가 여자들에게 가까이 가면 여자들은 다 그 남자한테 복종해야 됩니다. 하지만 저같은 [권력이 없는] 사람이 가까이 가려고 하면 밀쳐내고 기분 나쁘다고 하지요.[113] 

교화소와 구금 시설에서의 강간과 성폭력

통일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125명의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7.7%는 구금 시설과 교화소에서 성희롱과 강간이 "흔하다"고 답했는데 이 중 15.9%는 "매우 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33명의 여성이 교화소나 구금 시설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고, 51명은 그러한 시설에서 강간을 목격했으며, 25명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들은 보안원 45.6%, 감시원 17.7%, 보위성 요원 13.9%, 다른 수감자 1.3%였다.[114]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강제송환된 여성들이 임시 구금 시설에서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감시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자행한다.[115] 송환되어 임시 구금 시설에 들어온 여성들은 다른 수감자들과 감시원들 앞에서 옷을 모두 벗어야 한다. 그렇게 알몸인 상태로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수 차례 하는데, 표면상 이유는 생식기 등 몸 안에 감추고 있는 물건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이러한 관행을 "펌프질"이라고 부른다). 관행에 따라 여성 수감자들은 또 여자 담당관에 의해 몸수색을 당한다. 하지만 가끔씩 남자 담당관이 몸수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남자 담당관은 손가락을 여성들의 질이나 항문에 삽입한다. 이처럼 인권침해적인 몸수색은 일반 담당관들에 의해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에 저항하면 가혹한 폭행으로 굴복시킨다.

유엔조사위원회는 강제 송환된 사람들을 상대로 구금 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체강(體腔) 수색이 1) 강간에 해당할 수 있고 2) 북한의 자국법 하에서 불법이며 3)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4) 합리적인 수준의 우려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116]

교화소 관리들은 수감자들을 상대로 강간 등 심각한 성폭력을 자행한다. 교화소 규정상 강간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유엔조사위원회에 의하면 교화소에서 발생하는 "빈번한 강간 사건은 전반적인 반인도적 범죄 패턴의 한 부분을 구성"하며, 이는 교화소 감시원과 다른 관리들이 수감자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이 제어받지 않고 또 처벌 받지 않는 데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결과이다.[117]

유엔조사위원회는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서 강간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아주 드물게 징계 조치가 취해지기는 하지만 사실상 일상적으로 자행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118] 유엔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여성 수감자들은 무력에 의한 강간을 당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가혹한 노동에 배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동의에 의한' 성관계를 하도록 압박을 받는다. 국제법 하에서는 그러한 경우도 강간이 될 수 있는데, 가해자가 수용소의 강압적인 상황과 그로 인해 여성 수감자가 느끼는 취약성을 이용하기 때문이다.[119]

휴먼라이츠워치는 2009년부터 2013년 사이에 구금 시설에서 조사관과 감시원, 보안원, 보위부 요원들에 의한 언어폭력과 성폭력, 가혹한 심문, 모욕적인 처우를 경험한 탈북민 8명을 인터뷰했다.[120] 이 중 6명은 초기 수사과정에서 수감자들을 구금하기 위해 보위부나 보안성이 운영하는 구금 시설인 구류장에서 성희롱과 언어폭력,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121] 이러한 시설과 대기실(경찰서를 지칭하며, 구금실이라고도 불린다)은 일반적으로 수감자들이 가장 먼저 거치는 구금 시설이다.[122]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사람들은 먼저 집결소로 보내질 수도 있다.[123] 인터뷰 참가자들은 심문을 담당한 보위부 요원이나 보안원들이 옷 위로 또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엉덩이 등을 만졌다고 증언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구류장에서 자신의 거주지역에 있는 구금 시설로 이송되기 전에 잠시 집결소에 구금되어 있는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한 두 여성의 사례를 기록하였다.

윤수련의 사례

양강도에서 밀수를 했던 윤수련(30대)은 2014년에 탈북했다. 그녀는 2011년 말에 중국으로 약초를 밀반출하는 도중에 혜산시에서 온 여성과 함께 국경을 넘으려다가 붙잡혔다. 이 여성은 아편을 가지고 있었다. 윤수련과 혜산에서 온 여성은 그 과정에서 도망을 쳤고, 윤수련은 다시 붙잡힐 것이 두려워 한동안 은신했다.[124]

윤수련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게 7개월을 숨어지내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당국에 자수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지역을 담당하는 보위부 간부를 찾아가 자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여러 차례 보안소에 불려가 보안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윤수련은 2012년 8월에 동내에 있는 구류장에 사흘간 감금되었는데 그때 담당관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증언했다. 북한을 탈출한 후 성폭력 및 가정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상담과정을 이수한 윤수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흘 동안 아무런 먹을 것도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감방에 혼자 있었고, 찾아오거나 말을 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새 담당관이 오더니 나를 강간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무조건 바지를 벗고는 내게 달려들었습니다. 나는 혼자였고 어디 도망갈 곳도 없었습니다. 겨우 다섯 명이 앉을 만큼 좁은 공간인데다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내가 이걸 거부하면 무슨 벌을 더 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포기했지요…… 어쩔 수 없이. [성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담당관한테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때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마음에 안들면 개새끼를 발로 차는 것보다 쉽게 사람들을 때리니까요. 하지만 난 그때 6살난 딸 아이가 너무도 걱정됐습니다.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왔거든요. 그때 내가 우리 동에 있는 구류장에 있었는데 만약에 시에 있는 구류장으로라도 보내지면 거긴 정말 아무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여기서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나가야겠다 마음을 먹었지요. 집에 혼자 있는 딸이 너무 걱정돼서 그때는 눈물도 안났습니다. 그저 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줘서 얼른 딸한테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를 강간한 후에 그 담당관은 밥하고 옷을 들여보내줬습니다. 우리 인민반 반장이 할머니인데 나한테 음식을 보내줬어요. 내가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밀수를 했지만 다른 죄는 저지른 것이 없습니다. 인민반 활동에도 다 참여했고, 인민반 반장이 나한테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많이 도와줬고 나한테 하루에 적어도 한 끼는 보내줬는데 그것도 안들여 보내주더라고요.
우리 딸은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무서워합니다. 북한에서는 보안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닙니다. 내가 체포되던 날도 보안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내가 딸 아이를 좀 진정시켜 놓고 내 발로 보안소에 찾아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때 이후로 아이가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엄마, 보안원 온다. 숨어!" 그래요.

그때는 그저 몸을 바치고 얼른 딸한테 가자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화도 안나고, 그냥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게 성폭력이고 강간인 걸 알지만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 사람들은 제복을 입고 법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자들을 [성] 노리개처럼 다루면 안되지요. 북한에도 "강간"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때는 제가 당한 일이 강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와서야 강간이라는 걸 배웠지요. 그리고 나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게 아니고 수감된 여자들은 다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수를 하고 나서 몇 달 후에 윤수련은 그때 아편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을 만났다. 윤수련이 그 여성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2012년 4월 경에 살고 있는 동에 있는 보안소에서 그 여성의 집에 찾아가 10대인 딸에게 어머니의 행방에 대해 조사할 것이 있으니 보안소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여성은 딸에게서 보안원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딸은 당시 17-18세 정도였다.

윤수련은 휴먼라이츠워치와 인터뷰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이 강간당한 사실을 발설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또 당국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도 안했고 오히려 보복을 당할까 무서웠다고 했다.

윤수련은 또 20대 초반에 겪었던 두 가지 일로 조용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나는 2003-2004년경에 윤수련의 조부모의 동네에 살던 18살된 여학생이 대학교를 다니다 갑자기 퇴학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 학생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성적으로 문란한 행동을 해서 대학에서 쫓겨났다고 수군거렸다. 윤수련은 나중에 할아버지에게서 그 학생이 강간을 당해서 대학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학생의 가족이 윤수련의 할아버지에게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군인 한 명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와서 다른 학생들은 다 도망쳤는데 그 학생만이 붙잡혀서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대학 측은 그 학생을 비난하고 퇴학 시켰다. 윤수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학] 당국은 피해자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지 않는 한 자신들의 감시 하에서 강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수치심에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남자들이 깔보고 곁에 가지도 않으려고 하니까 결혼도 못했고요. 학교에서 쫓겨난 지 6년만에 부모가 동네에 있는 어떤 남자한테 돈을 많이 주고 결혼을 시켰는데 그 남자가 아이를 때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애한테 개같다고, 짐승만도 못하다고 욕을 하더라고요. 나도 그걸 들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부모가 다시 집에 데려다가 방에 가뒀습니다. 근데 어쩔 때는 아이가 집을 나와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니니까, 그 가족들이 말도 못하게 고생을 했지요. 난 그 아이도 무서웠지만 그 아이의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 무서웠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04년에 20대이던 윤수련과 다른 여성 10명이 김일성 혁명사연구소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당국은 이들에게 매주 목요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보초를 서게 했다. 한 사람이 한두 시간씩 보초를 서고 다른 여성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안에서 잠을 잤다.

윤수련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 보안원들이 순찰을 하면서 가끔 근처를 지나갔는데 그 중 한 명이 수시로 윤수련 일행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서 모욕을 주고 덮고 있는 이불을 치우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목요일에 자신의 사촌이 근무에 나오지 않았다. 윤수련은 어머니로부터 사촌이 연구소에 가던 길에 보안원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수련의 숙모는 수치심을 느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013년 7월에 윤수련은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가서 블루베리 따는 일을 했다. 중국 당국은 윤수련을 백두산 근처에 구금하고 2013년 12월에 북한으로 강제 송환시켰다. 윤수련은 혜산시에 있는 보위부 소속의 구류장으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여자 보위부 요원이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자신의 항문과 질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감된 감방에는 중국에서 송환된 23살된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은 윤수련에게 보위부 심문관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윤수련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 여자가 내게 가까이 오더니 몸을 어떻게 수색하더냐고 물었습니다. 남자 아니였냐고 물어보더니 울더라고요. 그 날 저녁에 그 여자가 내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남자 보위부 요원이 속옷까지 포함해서 옷을 다 벗으라고 하더랍니다. 그 여자는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보위부 요원은 손을 묶어둔 채로 그 여자를 때려서 겁을 주고는 강간을 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계속 울더라고요. 난 내가 당했을 때를 생각하고는 진정하라고 했지요…… 그리고 보위부 요원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빨리 집에 가는 게 낫다고 일러줬습니다…… 그게 최선이고 살아남는 방법이라고요.

김은아의 사례

김은아(40대)는 함경북도에서 수감되어 있다가 2015년에 중국으로 탈출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그녀는 전에도 한 번 도망쳤다가 2012년 초에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후에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김은아는 송환된 후 북한과 중국 국경 인근에 있는 함경북도의 구류장에 구금되었다. 그녀를 담당한 보안소 심문관은 쇠막대기로 김은아의 가슴을 누르고 얼굴과 팔, 그리고 바지 위로 사타구니 근처를 만졌다.[125] 김은아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는 내게 중국 남자랑 살았는지, 그 남자랑 자는 것이 어땠는지를 물어보면서 성관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안하면 쇠막대기로 때렸습니다. 또 쇠막대기로 가슴과 얼굴을 누르고요. 질문을 할 때마다 얼굴과 팔을 만지고 사타구니 주위를 만졌습니다. 그때는 그게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불편하고 싫었지만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김은아는 또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후에 자신의 변호사에게서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피고측 변호사가 정부에 소속되어 있다. 김은아는 재판 전에 변호사가 재판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휴먼라이츠워치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조사를 하면서 변호사가 내게 질문을 하고 만년필로 메모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멈추고는 펜이나 손으로 내 몸을 여기저기 찔렀습니다. 팔이랑 가슴이랑…… 또 나를 껴안기도 하고요…… 불쾌하고 당황스럽고 싫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은아는 자신의 경험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했다.

정부 관리들이나 힘 있는 남자들이 하는 이런 류의 폭력은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어디에 신고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법 집행관들"이 가해자인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는데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성폭력이 잘못됐고, 그게 내 잘못이 아니고, 어떤 "법집행관"이 나를 보호해준다는 것은 북한에서 살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2012년 초에 국경 지역의 구류장에 있을 때 김은아는 다른 여성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했다.

감시원 중 한 명이 자기가 보초를 서는 날에는 언제나 저녁에 문을 열고 젊은 여자 한 명을 지목해서 따라 오라고 했지요. 그 여자는 따라 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다른 보안원이 와서 우리가 모두 있는 데서 그 여자에게 말을 했습니다. 다른 보안원한테는 잘해준다면서 왜 자기한테는 안해주느냐고. 그러고는 그 여자에게 창살 가까이 오라고 하고는 우리한테는 모두 등을 돌려 벽을 보라고 했습니다. 움직이는 소리, 입맞추는 소리 같은 게 들렸고, 보안원이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만지는 것이 그림자로 보였습니다. 이런 일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일어났습니다.

김은아의 증언에 의하면, 석 달 후에 함경북도에 있는 전거리 교화소에서 그 여성을 다시 만났는데 그 여성은 울면서 [감시원이] 자기를 [성] 노리개처럼 취급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은아는 그 여성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김순영의 사례

김순영(50대)은 함경북도에서 농사를 지었고 2015년에 탈북했다. 2012년 말에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후 국경 근처의 구류장에서 보위부 심문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126] 김순영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북송된 후에 보위부 요원한테 강간을 당했습니다. 나를 조사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가까이 다가오더라고요. 그가 원하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옷 위로 가슴과 몸을 만지더니 옷 속으로도 손을 넣었는데, 무섭고 잔뜩 기가 죽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젊지도 않은데 그런 일을 당해서 놀라기도 했고요.

그녀는 어디에 신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또 두려움 때문에 누구에게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안소에 그냥 가는 것도 그렇지만 더군다나 [강간 사건을] 신고하러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법집행관"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꼼짝도 안하고 눈을 내리깐 채로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지요.

보위부 구류장에서는 그녀가 정치범이 아니라고 결정하고 보안성 구류장으로 이송시켰는데 김순영은 그곳에서 다시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조사를 하는 중에 보안소 심문관이 옷 위로 또 옷 속으로 몸을 만졌습니다. 나한테 또 억지로 달려들까봐 [그리고 강간할까봐] 무서웠지요. 난 저항할 힘도 없고 그 사람한테 잘 보여야 했는데, 다행히 그렇게까지는 안하더라고요.

김순영은 몇 달 후에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되었다. 2013년 초에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여성 수감자들이 감시원들과 성관계를 한다는 말을 다른 수감자들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김순영의 증언에 의하면, 1년 후에 김순영이 소속된 구역의 당 비서와 수감반 반장과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반장은 당 비서의 사무실을 청소하고 옷과 신발을 관리했는데, 김순영은 당 비서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당 비서의 사무실 옆에 있는 감방에 수용된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어느 날 밤에 두 사람이 껴안고 입맞추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

이후에 교화소 관리자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여러 수감자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 비서는 직위를 잃었고, 반장은 강등되어서 닭과 토끼를 기르는 가축 구역으로 보내졌다. 이 사건은 교화소나 구금 시설에서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흔치 않은 사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수감자들도 벌을 받았다. 두 사람의 관계를 소문 낸 수감자 역시 교화소에서 죄를 지은 수감자들을 처벌하고 가장 힘들거나 더러운 일을 시키는 처벌구역 ‘락후자반’으로 보내졌다.

김순영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우리는 담당관들이 수감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요.

박영희의 사례

박영희(40대)는 양강도에서 농사를 지었고, 2010년 봄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녀는 함경북도 무산시 보안성 구류장에서 자신을 조사한 보안원에게 여러 차례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다.[127]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조사하는 동안 조사실에 우리 둘 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가까이 앉히고는 옷 위로 또 옷 속으로 몸을 만졌습니다. 다리 사이를 만지고, 그 날만이 아니라 다른 날에도 손가락을 여러 차례 삽입했습니다.

보안원은 또 박영희가 인신매매되어 중국에서 같이 살았던 남자와의 성관계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박영희는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내 목숨이 그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고 묻는 말에 다 대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요?  북한에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불법이 될 수 있는데, 그 말인 즉슨, 모든 것이 나를 조사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박영희는 이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보안성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을 알지 않는 한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괜히 기분 건드렸다가 보복당할 지도 모르는데 감히 어떻게 신고를 합니까? 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짓을 하고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 아니까 더 신고할 수가 없지요.

박영희는 또 동네에서 낙인이 찍힐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그녀는 20대 중반 무렵에 자신의 동네에 살던 10대 후반의 여자 아이가 낯선 사람에게 강간당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다. 그 여자 아이의 어머니는 사건을 보안소에 신고했고 몇몇 아는 사람들에게만 비밀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가 강간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동정하는 대신에 비난을 했고, 보안소에서는 가해자를 찾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했고 특히 남자들이 모욕을 줬다. 그 아이는 결혼하기가 어려워 결국 다른 지역에 사는 가난한 농사꾼에게 시집을 갔다. 박영희는 그 아이의 엄마가 보안소에 신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아이의 엄마를 탓했다.

박영희는 또 교화소에서 피해를 입기 전에 북한에서 세 차례 강간을 당했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첫 번째 피해는 1990년대 중반에 그녀가 23살 때였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국영 기업소에서 술에 취한 상관에 의해 강간을 당했는데, 당시에는 그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고 말했다. 박영희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국영 기업소에서 상관한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녁을 먹고 난 후에 술에 취했는데 어느 순간에 보니까 우리 둘 밖에 없더라고요. [……] 많이 아팠는데, 그게 뭔지 몰랐지만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후에 박영희는 어머니에게서 동네의 한 여자 아이가 강간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박영희는 그때까지 "강간"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자신도 강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일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길 잘 했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되겠다 다시 한 번 다짐하고는 그 이후로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지나서 박영희는 혼자서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어떤 남자가 뒤에서 따라 오더니 같이 걷자고 했습니다. 내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좀 쉬었다 가자고 하더라고요. 나도 피곤하기도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좀 쉬고 나서 출발하려고 일어서는데 그 사람이 [바지에서] 성기를 꺼내더라고요. 무서워서 그냥 가려고 하니까 나를 붙잡고는 칼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산으로 데려가서 강간을 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나는 그냥 가방을 메고 집에 갔습니다. 집에 가는 내내 울었지요. 

박영희는 2000년대 중반에 자신이 30대였을 때 밤에 혼자서 집에 오는 길에 또 다른 낯선 사람한테 강간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 사람은 뒤에서 그녀를 붙잡고는 칼로 위협을 했다.  

결혼했을 때인데 남편한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했으면 아마 두들겨 맞기나 했겠지요. 그냥 씻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냈습니다.

조별미의 사례

함경북도에서 밀수를 했던 조별미(40대)는 2009년에 중국에서 강제 송환되어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서 보위부가 운영하는 구류장에 구금되었다.[128]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 사람들[보위부 요원들]은 온 몸을 뒤졌습니다. 우리[여자들]는 한 줄로 바닥에 누웠는데, 바지와 속옷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여자 보위부 요원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질 속을 조사하는데, 장갑을 바꾸거나 씻지 않고 그 방에 있는 모든 여자들을 그렇게 조사합니다. 또 항문도 조사했습니다. 몸 안에 돈이나 귀중품을 숨겨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걸 찾는 것이지요. 난 여자 담당관이라서 다행이었는데, 그 전에 들어온 다른 여자들로부터 남자 담당관이 몸수색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보위부 조사가 끝난 후에 조별미는 보안성으로 이관되어 평안북도 신의주 인근에 있는 집결소에 수감되었다. 조별미의 거주지역 소속 보안원들이 와서 데려갈 때까지 그곳에 대기시키는 것이었다. 집결소에 있는 동안 수감자들은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조별미는 열심히 일을 해서 수감자들의 반장이 되었다. 반장의 임무 중 하나는 집결소 보안원들의 설거지를 하는 것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여자 숙소로 돌아가려면 집결소 소장의 사무실을 지나가야 했다. 그 사무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있었다.

조별미는 자신이 집결소에 있었던 12일 동안 그 사무실에서 소장에게 두 차례 강간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신의주 집결소에서 소장한테 두 번 강간당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내가 지나가는데 [소장이] "반장, 아주 단단해. 내가 너 좋아하는데 어떻게 할까?"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조용히 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장이 내 옷을 벗기고는 거기 서서 [나를 강간했습니다]. 어디 앉거나 누울 자리도 없었습니다. 책상이 하나 있고 감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창문이 나있었고요. 어떻게 나를 보호할 수가 없었고 내가 갇혀 있는 신세라 더 그랬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강간은] 그냥 그렇게 일어나는 겁니다. 그 방에서 두 번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거기 체제가 돌아가는 방식 때문에 그 사람을 거부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 처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데도 없고요.

집결소에서 출발하기 며칠 전에 조별미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던 곳 근처에서 나는 여자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정확히 같은 장소에서 나처럼 강간을 당하고 있는 여자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냥 눈을 감고 무시했지요. "불쌍한 여자, 더 조용히 할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조별미가 함경북도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역에서 탈북죄에 대한 재판을 받기 전에 변호사를 접견했을 때 변호사는 구금되어 있는 동안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신의주 집결소에서 소장에게 당한 일을 이야기했지만 변호사는 재판에서 그 일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어차피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말해봐야 소용이 없고 그 일을 발설한 대가로 더 강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별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북한에서 수감자들은 특히 짐승만도 못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우리를 대변하거나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변호사는 내가 강간당했다고 자기한테 말했다는 것에 더 놀라더라고요. 나도 말해놓고 나서 후회하고 보복이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조별미는 2010년에 전거리 교화소에 있을 때 자신의 구역에 같이 있던 20대의 여자가 강압에 의해 담당관과 성관계를 했지만 결국 그 여자만 처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조별미와 같이 다른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반장으로 뽑혔던 그 여성은 친하게 지내던 다른 수감자에게 담당관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수감자가 감형을 대가로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교화소 관리에게 전달했다. 조별미에 의하면, 가해자인 담당관은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고 피해자만 6개월 낙후사방형에 처해졌다.

조별미는 신고하려는 시도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국이 신경을 써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누가 여성폭력을 신고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2000년대 초에 자신의 남편이 하도 심하게 폭행을 해서 이웃 주민이 보안소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별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보안원들은] 남편한테 너무 세게 때리지 말라고 하고, 나한테는 행실 제대로 하고 남편을 화나게 하지 말고 참으라고 했습니다. [보안원들이] 떠난 후에 남편은 나를 더 때렸고 나는 최대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녀는 또 2013년 겨울에 함경북도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역 외곽에서 길가에 여자의 시신이 버려져 있었던 일을 기억했다. 그녀의 사촌의 친구였던 보안원에 의하면 그 여자는 강간을 당하고 자전거와 가진 물건을 다 빼앗겼다고 한다. 보안소에서는 자전거 덕분에 그 가해자를 잡을 수 있었고, 가해자는 교화소 10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보안원도 강간이 처벌 받아야 하는 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조별미는 그 보안원이 "이건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다. 그래서 보안소에서 수사를 하고 범죄자가 그렇게 높은 형을 받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윤미화의 사례

함경북도에서 장사를 했던 윤미화(30대)는 2014년에 북한을 탈출했다. 그녀는 그 전에 중국으로 도망치려다 붙잡혀서 2009년에 청진의 집결소에 구금되어 있을 때 담당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날 저녁에 담당관이 자신에게 조사실로 오라고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129]

얼굴과 가슴 그리고 옷 위와 밑으로 다른 부분들을 만졌습니다. 하지만 어리고 직급이 높지 않아서 바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갔지요.

윤미화는 집결소에 또 다른 폭력적인 담당관이 있었는데 그는 밤마다 예쁘거나 어린 여자들을 조사실로 불렀다고 말했다. 

청진 집결소에서는 강간과 폭행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밤마다 담당관을 따라가 강간당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그 중에 특히 끔찍한 담당관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잔인하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새 수감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 담당관은 건수를 잡아서 그 중 한 명을 잔인하게 폭행했습니다. 자신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려고요. 틱, 틱, 틱 이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소리였습니다. 우리 감방문을 열쇠로 여는 소리였는데, 저녁마다 담당관이 감방 문을 엽니다. 그러면 나는 미동도 안하고 가만히 서서 모르는 척했습니다. 담당관한테 찍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길 바라면서, 그 담당관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윤미화는 어느 담당관도 자신을 지목하지 않아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2013년 사이에 그곳에서 다른 여성들이 강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3년에 윤미화는 청진 집결소를 거쳐온 한 여성을 전거리 교화소에서 만났는데, 그 여성이 다른 수감자들을 강간했던 그 잔혹한 담당관에게 강간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윤미화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13년에 전거리 교화소에 막 들어온 수감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중국에서 강제로 송환되어서 청진 집결소에 있다가 그곳으로 왔는데, 다들 거기를 거쳐 옵니다. 둘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 폭력적인 담당관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생각이 나서 그 사람 아직 거기 있느냐고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그 여자가 욕을 하면서 그 담당관한테 강간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담당관이 아직 거기 있고 여전히 그렇게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조은별의 사례

조은별(30대)은 북한에서 장사를 했고 2014년에 함경북도에서 탈북했다. 그녀는 2013년에 함경북도 선봉에서 검사에게 구금을 당했다고 한다. 조은별은 그 검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인들과 거래하는 문제로 조사받지 않으려고 그에게 수시로 오토바이 등 뇌물을 주었다. 그는 가끔씩 그녀의 셔츠 위로 가슴을 만졌고 볼에 입맞춤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그가 조은별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서 그녀의 몸을 만지고는 성 기구를 꺼냈다.[130] 그녀는 휴먼라이츠워치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는 폭력적으로 [성적으로] 나를 폭행했습니다. 내가 거부했습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내 몸을 만지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줘야 하고 그러면 내가 자유롭게 장사하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성 기구를 꺼냈어요. 내가 거부하니까 혁띠를 풀어서 나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쾌감을 느끼더라고요. 나는 입술이 터졌는데, 그 사람은 내 앞에 서서 [성기를 내놓고는] 계속해서 나를 때렸습니다. 내가 계속 저항하니까 혁띠로 계속 나를 때렸어요. 내가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쓰러지니까 [강간]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당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소리지르는 걸 들으면서 쾌감을 느꼈습니다.

검사에게 폭행을 당한 후 조은별은 선봉에 있는 자신이 잘 아는 보위부 요원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보위부 요원들은 가해자가 검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고 보위부 지역사무소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조은별은 라선시 보위부에 찾아가서 신고했다. 담당자는 그녀에게 내용을 글로 쓰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의 보위부 요원들은 검사에게 조치를 취하는 대신 그녀를 구금했다. 그녀는 감방에 4일간 구금되어 있었는데 음식을 넣어줄 때만 감방 문이 열렸다. 조은별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4일째 되던 날 보위부 요원 한 명이 와서 "너 가슴이 그렇게 부드럽다던데 진짜냐?"고 물었어요. 그 순간 '이 사람한테 또 당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또 "니 피부가 러시아 여자들처럼 희다던데 정말이냐?"고도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집에 아기가 있어요. 제발 보내주세요."라면서 울었지요. 그랬더니 그 보위부 요원이 종이를 하나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저 산 속에 정치범 수용소라는 데가 있는 데 들어봤나? 너하고 니 딸하고 그 수용소에 가기 싫으면 이 서류 작성하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그 서류는 [검사에 의한 성폭력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였어요. 그래서 각서 쓰고 집에 왔습니다.  

조은별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누구에게도 그 일을 발설하지 않았다.

장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강간과 성폭력

2002년에 북한 정부가 장마당을 허용하면서 북한의 마을과 도시에서 식품과 공산품을 파는 장마당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장마당 제도는 법적 경계가 모호하고, 지역의 상황이나 장사꾼들과 지역 관리들의 이해관계, 평양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 규제가 달라진다.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는 특정한 상황 또는 담당 관리의 영향력이나 생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131] 명확한 규칙이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폭력과 착취에 취약하게 노출된다.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이지만, 장마당의 관리자나 단속원들은 대부분 남자이다. [132]

북한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1년 이후에 탈북한 사람들과 북한에서 고위 관리로 일했던 8명의 탈북민에 의하면, 장사꾼들은 장마당의 관리와 단속원들로부터 종종 뇌물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여자들의 경우에는 뇌물이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폭력도 포함될 수 있는데, 정부 관리들은 장마당의 위협적인 환경과 처벌의 부재, 수치심과 처벌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을 악용한다.[133]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는 " 관리들은 봉급이 낮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점점 부정부패에 관여하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벌을 빌미삼아 성폭력과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열악한 경제와 식량 사정 때문에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공적 영역을 넘나들면서 물건을 날라다 팔고 있다."고 결론지었다.[134]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남자들 중 다수가 당의 고위 간부, 기업소 관리, 장마당이나 길거리의 보안원, 보위성 요원, 검사, 군인, 기차 내의 보안원들이다. 정부 관리의 성적인 요구를 거부하면 물건과 돈을 압수당하거나, 장사를 한 죄로 노동단련대나 교화소에 보내지는 등 감시나 처벌이 높아지거나, 장사에 좋은 목을 빼앗기는 등의 대가가 따를 수 있다. 또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일자리에서 배제되고, 이동수단이나 장사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벽지로 강제이주되거나, 더 많은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135]

길거리에 있는 검문소에서도 군인, 보안원 또는 지역의 당 간부들에 의해 성희롱을 당할 수 있다.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검문소에서 남자 관리들이 젊은 여자 장사꾼들의 등과 가슴, 다리를 만지고, 가슴과 엉덩이를 더 오래 조사하고, 때로는 속옷 안까지 조사하는 등 인권침해적인 몸 수색을 한다고 증언했다.[136] 여성들은 또 보위부 요원들이 검문소를 통과시키기 전에 여자들을 데려갔다가 30-40분 후에 돌려보내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137] 북한에서 장사를 하다가 2011년에 탈북한 리봄이(30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길에서나 어디 복잡한 곳에서 관리들이 몸을 여기저기 만지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라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138]

정부가 허용하는 장마당에는 성별과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젊은 장사꾼들은 유통을 하거나 지역을 오가며 장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물건을 사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열악한 도로와 철로 사정으로 인해 북한에서는 장거리 여행에 여러 날이 소요된다. 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정부가 발행하는 공식 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이 허가증은 보통 공무 상의 여행에만 발급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많은 장사꾼들이 합법적인 허가증 없이 여행을 하고 허가증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승객들을 검색하는 철도 보안원이나 기타 관리들의 뇌물과 성적 요구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된다. 허가증이 없는 것이 발각되면 물건을 압수당하거나 구금 시설에 수감되는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성폭력과 뇌물 요구를 감내해야 한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 남성 중심적인 국가에서 시장을 사찰하는 보안원과 기차 내 보안원 및 군인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 기차 내 보안원들이 성인 여성과 여아 승객들을 몸수색하고 추행한다는 보고를 접수"했다고 기록했다.[139]

함경북도에서 장사를 했던 김미진(30대)은 2013년에 탈북하기 전까지 단속원들에 의한 성폭력을 종종 경험했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140]

“법집행관”은 항상 몸이나 가슴, 팔, 얼굴을 만질 구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어쩔 때는 옷 위로 어쩔 때는 옷 속으로. 한 번은 보안원이 [내 질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기도 했고요. 장사하면서 접하는 온갖 유형의 단속원들이 보안 검색 때문에 몸 수색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주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사실은 돈을 원하거나 몸을 만지려고 한다는 걸 알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가증 없이 다니지만 허가증이 있더라도 기차 단속원이나 보안원, 보위부 요원이 오면 최대한 잘 보여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지나가기 전까진 심장이 멈춥니다.[141]

김미진은 그러한 폭력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탈북민 10명과 정부 관리였던 탈북민 3명에 의하면, 남자들은 여자들이 성을 제공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유리하다고 생각한다.[142] 함경북도에서 담배를 팔았고 2005년에 탈북한 리봄순(50대)은 “같이 장사하던 남자들은 우리한테 여자들은 무기가 있으니까 운이 좋은 거라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여자라면 최대한 그 무기를 써서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요. 속으로만 불쾌하게 생각하고 대꾸는 안했습니다.”라고 말했다.[143]

휴먼라이츠워치는 장마당 단속원에게 성희롱과 강간, 언어폭력, 협박 등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 4명과 장사를 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보안원 등에 의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성 17명을 인터뷰했다.[144]

오정희의 사례

오정희(40대)는 양강도에서 장사를 했다. 혜산시에 있는 장마당에서 옷을 팔았고 지역에서 직물을 유통했다. 그녀는 2014년에 탈북하기 전까지 단속원이 정기적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뇌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증언했다.[145]

여러 번 피해를 당했습니다…… 장마당 단속원이나 보안원들은 자기들이 내키는 대로 장마당 밖에 어디 빈 방이나 다른 곳으로 따라 오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우리를 [성] 노리개로 생각하니까…… 우리[여자들]는 남자들 손에 달렸습니다. 힘 있는 남자가 옆에 없으면 여자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폭력 행위에 저항하거나 어디에 신고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또 자리를 옮기거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으면서 그 상황을 피하는 것 외에는 그런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번잡한 곳에 있으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남자의 손이나 몸이 가슴이나 등이나 다른 곳에 닿아 있습니다. 그래도 보복이 무서워서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갔지요.
그런 일이 너무도 흔하니까 아무도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남자들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우리[여자들]도 마찬가집니다. 화가 나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간이니까 느끼죠. 어쩔 때는 갑자기 이유없이 밤에 눈물이 나요.

오정희의 남편인 김철국(40대)은 양강도에서 대학 교수로 일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자신이나 아내와 같은 장사꾼은 권력자들에 의한 성폭력을 사회 생활과 장마당 활동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146] 다음은 김철국의 증언이다.

부패가 너무도 만연해 있기 때문에 힘 없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 마누라와 같은 여자 장사꾼들이나 노동자, 특히 감옥에 수감된 여자들은 보안원이나 당 관리, 조사관, 담당관 같은 윗사람들이 하라면 무조건 해야 합니다. 원하는 대로 하면 이득이 있을 수 있지만, 거부하면 손해를 보거나 이유없이 보복을 당하지요. 내 마누라 같은 장사꾼들은 [권력 있는 남자들에 의한] 성폭력을 사회 생활과 장마당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살려면 어쩔 수가 없지요. 정부 관리들하고 잘 지내놓으면 이득이 있을 수 있지만, 자기한테 접근하는 권력자를 거부하거나 밀쳐내면 자기 가족의 미래와 생존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두 사람 다 장마당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실용주의자들입니다.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압니다. 다 알고 있지만 거기에 대해 서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내 입으로 차마 말할 수도 없었고요.

김철국은 어렸을 적 친구가 지방 정부의 고위 간부가 되었는데 그는 항상 "가까운 동무"라는 사람을 곁에 두었다고 한다. "가까운 동무"는 그 간부와 성관계를 하는 여자 장사꾼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김철국은 2014년 탈북하기 직전에 그 간부로부터 30대의 결혼한 여자와 가깝게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 여자에게 사업 정보를 주었고 자신과 가까운 당 관료나 보안원들에게 그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요청했다. 또 그 여자에게 대형 텔레비전이나 청주와 같은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여자의 남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김철국의 친구인 당 간부에게 불만을 제기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졌다. 얼마 후에 그 여자는 자신이 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업을 잃었다. 그 부부는 또 여러 차례 물건을 압수당하고 정부의 감시와 단속 대상이 되었다. 김철국은 이후에 두 사람이 더 작은 집으로 이사갔다는 말을 들었으나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아마 그 여자가 번 돈을 모두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달미의 사례

최달미(20대)는 함경북도에서 장사를 했으며 2014년에 탈북했다. 그녀는 2010년부터 탈북 당시까지 보안원과 기차 내 보안원들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147]

[강간과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몇 달간 장사를 하면서 여러 지역을 다녔습니다. 장마당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고, 특히 젊은 여자들은 "법집행관"한테 몸을 바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트럭 운전사였는데…… 그냥 "아, 그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트럭 운전사만이 아니라 기차 안의 검표원이나 보안원들도 다 마찬가집니다. 권력자한테 몸을 바치거나 몸을 만지게 내버려두는 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다거나 하기를 원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요. 그냥 그러나 보다 했습니다.

최달미는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지 않았으며, 누가 당국에 성폭력 사건을 신고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보안원들이 여자들을 [성적으로] 그러는데 자기들이 왜 강간 사건을 조사하겠습니까? 당국자들이 [강간은] 여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데 왜 여자가 자기 얼굴에 침 뱉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남한테 하겠습니까? 소문이 나면 그 대가가 너무 큽니다.

그녀는 2009년에 양강도 북쪽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역 외곽에서 길가에서 나체 상태의 여자 시신이 발견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여자는 강간을 당했는데 온 몸이 멍들고 상처가 나 있었으며 가방을 도난당한 상태였다. 보안소에서 사건을 조사했지만 가해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최달미는 이렇게 증언했다.

보안소에서 이런 사건을 조사한 경우로 내가 아는 건 이 사건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살인 사건이라서 조사한 거지 여자가 강간당해서 조사한 건 아닙니다.

최달미의 증언에 따르면, 같이 장사하던 동료 중 한 명이 2008년에 양강도에서 야채를 팔러 갔다가 물건 사는 사람한테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최달미는 그 사람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했는데 곧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했다.

몇 주동안이나 동네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여자가 그 남자의 집에 간 것을 비난했습니다. 아무도 그 남자에 대해서는 말을 안했어요. 아무도 그 여자가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물건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안했습니다. 하지만 여자 장사꾼들끼리는 그 집을 피하라고 서로서로 알려줬지요. 장사꾼들끼리는 누가 강간을 한다는 소문이 있는지, 어떤 남자가 폭력적인지, 누가 권력자랑 "가까운 사이"인지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우리의 안전과 장사에 영향을 미치니까.

박솔단의 사례

강원도에서 장사를 했고 2014년에 탈북한 박솔단(40대)은 북한을 떠나기 전까지 기차 검표원이나 보안원, 보위부 요원 등으로부터 성추행을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일이 흔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기차 안에서 그런 남자들은 통행증을 검사하거나 불법 물품을 조사하면서 일상적으로 여성 승객들을 추행했다.[148]

2012년에 박솔단은 20대 초반이던 딸과 함께 기차를 타고 청진으로 가던 중에 갑자기 딸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겁이 나서 재빨리 딸을 찾으러 갔는데 그때 딸 아이가 강간당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딸 아이를 찾으러 갔지요. 갔더니 아이가 [기차] 보안원의 사무실에서 보안원한테 마사지를 해주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통행증을 보여주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2012년에 또 기차를 타고 청진에 가던 길에 박솔단은 지나가다가 보안원이 여성 승객과 성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걸 보면서 그냥 "여자가 불쌍하다. 얼굴이 이쁘거나 뇌물 줄 돈이 없구나."하고 생각했지요. 그런 관계가 합의로 이루어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너무 위협적인 환경이라 그런 상황에서는 여자들이 요구받는 대로 다 해주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기가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부했을 때의 대가가 너무 큽니다. 이 여자가 자기한테 선택권이 있는 서울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면 아마 절대로 성관계를 안했을 겁니다.

리봄이의 사례

북한에서 장사를 했고 2011년 말에 탈북한 리봄이(30대)는 보안원, 군인, 기차 내 보안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149]

한 번은 길거리 검문소에서 군인이 [여자] 장사꾼을 데려갔다가 30-40분 후에 돌아오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린 그런 거에 대해 생각을 안하려고 하지만 본 사람은 다 알지요. 여자가 몸을 바쳤다는 것을. 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리봄이는 장사를 하면서 갈취나 원치 않는 성적인 접촉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장사를 키우려는 욕심을 접고 근근이 먹고 살 정도로만 유지하거나, 돈과 연줄이 많은 힘 있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거나, 권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거나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봄이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난 계속 이용당하고 물건을 뺏기는 것이 지겨워서 깡패하고 결혼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남자도 나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고 물건을 압수당했을 때도 내 남편이 여러 번 가서 찾아왔습니다.

리봄이는 2006년 봄 어느 날 기차를 같이 타고 가던 사람이 자기 고장 출신의 검표원을 만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검표원은 이 여성과 리봄이 그리고 같이 가던 다른 두 명의 동승객에게 잠자기에 좋은 자리를 찾아주고 안전하게 짐을 보관해 주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에 그 검표원은 동향 출신의 여성 옆에 누웠고 성관계를 요구했다. 리봄이는 검표원이 그 여성에게 접근했을 때 그를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기차에서 내쫓기고, 가지고 가던 물건과 돈을 모두 빼앗기고, 구금되어 조사를 받거나, 향후에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봄이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다 알았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돌봐줄 "친절한 남자"가 있다는데 안도했지요. 얼마 후에 두 사람은 아주 친해져서 서로 챙겨주고, 여행 일정을 맞추고, 이득을 나눠가졌습니다. 선택권이 있는 세상이었다면 두 사람이 그렇게 함께 했을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선택권이라는 게 없으니까. 2015년에도 두 사람은 계속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리봄이는 또 대부분의 여자 장사꾼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멀리 갈 때는 도난이나 폭력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네다섯 명씩 모여서 간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그렇게 여럿이 가면 지나가면서 몸을 만지려고 할 지는 몰라도 우리를 공격하거나 물건을 훔쳐가지는 않을 거니까요.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2009년에 동네 사람이 장사를 하다가 외진 곳에서 심한 폭행과 강간을 당하고 가방을 모두 도난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여성은 피범벅이 된 채로 돌아와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이후 그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는 소문이 동네 사람들에게 퍼졌는데, 이 사건에 대해 리봄이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보안소에서는 아무 조사도 안했고, 그 여자 남편은 술만 마시면 강간당했다고 마누라를 패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했고, 사람들이 그 여자 가까이에 가는 걸 꺼려하니까 그 여자는 같이 다니면서 장사할 사람을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1년에 리봄이는 같이 장사를 다니던 사람에게서 최근에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 저녁에 자전거에 큰 가방을 싣고 집에 오는데 길에서 어떤 남자가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는 강간을 하고 자전거와 가방을 가지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 여성은 일어나서 몸을 털고는 집에 갔고 보안소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봄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소름이 돋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고는 그 여자한테 강해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IV. 성폭력에 대한 정부 대응의 부재

2017년 7월에 북한 정부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2008년에 9명, 2011년에 7명, 2015년에 5명이 강간죄로 처벌받았다고 보고했다. 또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가해자의 수가 2008년에 5명, 2011년에 6명, 2015년에 3명이라고 밝혔다.[150]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성폭력과 젠더폭력이 만연해 있지만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보호나 지원, 권리 구제 조치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151]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대다수의 탈북민들은 여성보호법에도 불구하고 보안원과 보위성 요원들은 여성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보안원과 당 간부, 구금 시설의 감시원, 군인들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성폭행 피해를 신고하러 보안소에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152]

휴먼라이츠워치가 기록한 여성과 여아에 대한 성폭력 사건 중에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고자 시도한 경우는 단 한 건이었다.[153] 다른 여성들은 보안원을 신뢰하지 않았고 또 보안원이 어떤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여성들은 성폭력을 신고하면 가해자가 처벌받는 대신 자신들에 대한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은 가족이나 지인들도 당국에 신고하는 것을 말렸다.[154] 보안원을 포함해 북한에서 정부 관료로 일했던 탈북민 8명은 여성들이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어쩌다 그런 사건이 접수되더라도 피해 여성이 아니라 예외없이 제3자가 신고한다고 말했다.[155]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탈북민들은 피해자가 직접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고 이후에 수사가 진행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2011년 이후에 탈북한 여성 5명과 북한에서 정부 관료로 일했던 탈북민 4명은 흔치 않은 경우에 당국이 성폭력을 자행한 정부 관료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대부분 피해자가 사망했거나 특별히 심각한 상해를 입은 경우라고 증언했다.[156] 그러나 그 결과로 가해자가 수감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강등이나 직위 해제, 농어촌이나 광산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 피해자들도 비난을 받고 보복을 당한다고 했다.[157]

북한에서 고위 관료로 일했던 탈북민 5명은 당국이 성폭력 사건을 조사할 때는 흔히 정치적인 동기가 작용한 경우라고 말했다.[158] 북한에서 교사로 일했던 송상현은 자신이 근무했던 군부대에서 2007년에 한 장교가 부하 여직원과의 성관계를 이유로 강등된 사례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송상현은 부대 내의 다른 장교들로부터 그것이 그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에 의한 정치적인 획책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에 진행된 사상비판 시간에 참가자들은 그 장교의 성적인 타락과 부적절한 성행동, 의심스러운 반국가 행위를 비판했다고 한다.[159]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탈북민 3명과 정부 관료였던 탈북민 3명의 증언에 의하면, 보안원들은 여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대신 피해자를 가혹하게 심문하는 경우가 있다.[160]

평안남도에 있는 국영 기업소에서 관리자로 일했으며 2011년에 탈북한 백민중(50대)은 2010년 여름에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던 여직원이 옷이 다 찢기고 브래지어도 없이 피범벅이 된 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고, 그 여직원은 보안소에 가서 자신이 강간 당한 사실을 신고했다. 보안소가 조사를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여직원은 자신의 관리자이던 백민중에게 특정 보안원이 자신에게 연락하는 것을 중단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 보안원은 몇 차례 피해자를 심문했는데 그럴 때마다 성적인 질문을 하고 강간을 당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세세하게 물었다고 했다. 그 수사는 백민중이 담당 보안관에게 직원에 대한 희롱을 멈춰달라고 요청한 후에 종결되었다고 한다.[161]

북한에서 교수로 일했던 김철국은 2014년 어느 날 양강도에서 고위 보안원이 된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증언했다. 그의 친구는 김철국에게 보안소에서는 강간 사건이 들어오면 보안원들이 운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162] 김철국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보안원들은 어쩌다 강간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 음란물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할 일이 없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2012년에 김철국은 보안원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그때 그 친구는 권력자 집안의 딸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던 고위 당 간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철국은 다음과 같이 상황을 설명했다.

내 친구가 그 당 간부한테 "골치 아프게 됐다. 일을 더 잘 처리했어야지. 상황을 조용히 처리할 수 없었나?"라고 야단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여자도 일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권력자 집안이라 그 간부가 강등 되어서 벽지로 보내졌습니다. 교화소는 안가고요.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모든 탈북민들의 증언은 성폭력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고 생존자들에 대한 구제 조치가 없는 상황이 보편적임을 보여준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형사사법제도, 보안원들의 수사 의지와 역량 부족, 보복에 대한 두려움, 부정부패, 깊이 뿌리박힌 성차별 관행, 사회적 낙인 등 복합적인 요소로 인해 여성들은 사건을 신고해서 가해자를 처벌받게 할 방법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려는 의지조차도 갖지 못한다. 젠더폭력에 대한 인식과 보호 및 지원 체계의 부재는 여성들이 가해자 처벌이나 보상을 요구하는데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든다.

심리사회적 지원과 기타 서비스의 부재

휴먼라이츠워치와 인터뷰한 탈북민들은 북한 정부가 여성폭력 생존자나 그 가족이 낙인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폭력 피해에 대응하는데 도움을 주는 어떠한 형태의 심리사회적 지원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또 상담이나 정신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낙인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163]

북한이 오랫동안 가부장 사회였다는 사실도 여성폭력 생존자들이 낙인이나 비난 없이 자신의 피해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심리사회적 지원 서비스는 강간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도 중요하다. 강간 등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휴먼라이츠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낙인과 보복, 비난 등이 두려워 남편이나 친척들에게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감추었다고 증언했다.

북한에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나 안전가옥이 없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여성폭력법률에 관한 소책자(Handbook for Legislation on Violence against Women)'에서 각국 정부에 인구 10,000명 당 하나의 쉼터를 제공하고, 그러한 시설에서 안전한 위기쉼터와 전문 상담, 장기 숙소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여성 인구 50,000명 당 한 명의 전문 여성상담원을 제공하고, 여성 인구 200,000명 당 하나의 강간위기센터를 설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164]

북한에서 밀수를 했던 조별미는 남편이 때리기 시작하면 집에서 도망을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별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결국에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엄동설한에도 남편이 잠들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갈 데만 있었으면 진작 떠났을 것인데 갈 곳이 없었어요.[165]

의료적 조치의 부재

심리사회적 서비스의 부재에 더하여 북한에는 치료나 증거 수집을 위해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필요한 의료적 절차와 규정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북한에서 의사로 일했던 탈북민 2명과 간호사로 일했던 탈북민 1명은 2010년 이후에 탈북했는데 탈북 당시까지 "강간 키트"[166]를 본 적이 없고, 성폭력의 법의학적 측면에 대한 의료인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며, 성폭력의 법의학적 검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고, 강간 피해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오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167]

성폭력은 모든 국가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 정부가 보고한 터무니없이 낮은 기소 건수는 북한이 성폭력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것처럼 북한이 폭력 없는 천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북한에서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과 서비스의 결여, 인식의 부재,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기본적인 지원을 얻는데 겪는 보편적인 어려움이 한층 배가된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강간 피해자들은 병원에 가야 한다거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희는 네 번의 강간 피해를 당하면서 매번 그냥 몸을 씻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임신을 했다면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하지만 임신은 안했으니까요.”[168]  

 

V. 권고사항

북한 정부에 대한 권고

법률 개혁

  • 국가 법률을 개정하여 성폭력, 성적 협박, 강간, 부부강간 등 모든 형태의 여성폭력을 포괄하는 명확하고 강제력 있는 조항들을 형법에 도입하고, 여아 강간과 직장내 성폭력에 대해 명목 상의 처벌만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률을 개정하여 국제적 관행에 맞도록 형량을 높인다. 이러한 법률이 적극적이고 엄격하게 집행되도록 한다.
  • 쉼터, 보상 기제, 수사 및 재판의 전 과정에서 피해자와 증인의 신원 보호, 무료 변론, 복지 서비스 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보호 조치를 수립한다.
  • 특정 학문 및 직업 분야에서 여성들을 배제함으로써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를 강화시키는 여성권리보장법을 개정 또는 폐지한다. 성폭력에 연루된 사법기관 종사자들에 대해 "무관용" 정책을 채택하고 가해자를 해고 및 처벌한다.
  • 성폭력 및 젠더폭력 사건과 관련한 신고, 혐의, 수사, 기소, 판결, 형량에 관한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공개한다.

사법기관

  • 보안성, 국가안전보위성, 군, 판사, 변호사, 기업소 관리자, 당 간부를 포함하여 정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간 및 기타 성폭력 행위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여 기소하도록 명확하고 구속력 있는 명령을 내린다. 
  • 보안원, 보위성 요원, 군 장교, 당 간부 등 여성에 대한 성폭력 또는 신체적 폭력의 혐의가 있는 관료들과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관료들은 즉시 정직, 훈육, 해고 조치하며, 필요 시 형사처벌한다. 그러한 모든 사건을 조사하고, 필요 시 가해 혐의자를 공직에서 배제시키며 형사처벌한다.
  • 성폭력 전과자들을 배제시킬 수 있도록 정부 관료, 보안원, 군인들에 대한 검증체계를 수립한다.
  • 모든 사법 관계자와 보건 및 교육 전문가들을 상대로 성평등 교육과 더불어,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할 권리와 여성들을 착취하지 않으며 피해자가 도움을 받고 정당한 구제를 받도록 지원할 공직자의 의무에 대해 교육을 실시한다.
  • 사법기관의 정책과 교육이 유엔마약범죄사무국(UN Office on Drugs and Crime)의 '범죄 예방 및 여성폭력에 대한 형사상 대응 강화에 관한 소책자'(Handbook on Strengthening Crime Prevention and Criminal Justice Responses to Violence Against Women)[169] '여성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경찰 대응에 관한 소책자'(Handbook on Effective Police Responses to Violence against Women)[170]를 따르도록 한다.
  • 성폭력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할 수 있는 기제를 개발한다.
  • 가해자의 직위나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보안성은 성폭력 사건을 엄격히 조사하여 기소한다.
  • 교화소나 관리소에서의 강간 등 성범죄 그리고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을 자행한 가해자들을 조사하고 필요 시 형사처벌한다.
  • 변호사, 보안원, 검사, 판사 등의 관직에서 여성의 채용을 지원하고 여성 비율을 대폭 높인다. 이미 공직을 맡고 있는 여성들이 승진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모든 관료들에게 젠더감수성 교육을 제공한다. 
  • 여성 관리 또는 감시원을 채용하여 여성 수감자들을 감독하도록 하고, 여성 수감자들의 수감 조건이 국제법규, 특히 여성 수감자의 처우 및 여성 범죄자를 위한 비구금적 대안에 관한 유엔 규칙(United Nations Rules for the Treatment of Women Prisoners and Non-custodial Measures for Women Offenders, "방콕 규칙")에 부합하도록 한다.
  •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Protocol to Prevent, Suppress and Punish Trafficking in Persons, especially Women and Children)에 서명하여 이를 비준하고, 중국으로 인신매매되었다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여성들을 위 의정서에 따라 보호한다.

보건 부문

  • 상담, 의료지원,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등 성폭력 및 젠더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공공 보건 및 복지서비스를 개발한다.
  • 성폭력 피해자를 식별하며 모든 피해자들에게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와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기밀성을 유지하도록 보건 전문가들을 교육시킨다.
  • 재생산 건강 및 성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차별 금지와 관련한 핵심 사안들에 대해 기본 교육을 수립한다. 개인과 지역사회에 교육을 제공하여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줄이고, 여성동맹 등을 통해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돌봄과 치료, 지원을 제공하도록 독려한다.
  • 보건 전문가들이 "강간 검진세트"를 상비하고, 검진세트 이용 교육을 이수하며, 기밀성을 유지하고, 형사 법정에서 증거로 보존 및 인정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성폭력의 모든 증거를 수집하여 기록하도록 한다.
  •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라 각급 병원이 강간 피해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 장비를 구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모든 시설이 PEP(Postexposure Prophylaxis) 키트 등 성폭력 대응 절차를 갖추도록 한다.
  • 보안원 및 보위성 요원 등 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성폭력, 젠더폭력, 생존자 처우에 관한 감수성 교육을 제공한다.
  • 당, 혼성 근로단체 및 여성 근로단체, 유소년 단체를 통해 여성 폭력의 유형, 여성폭력이 초래하는 법적 및 물리적 결과, 피해자가 기밀성을 보장받으면서 무료로 제공되는 실효성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보호

  • 농어촌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충분한 쉼터와 심리사회적 서비스, 법률 및 보건 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 심리사회 상담원들을 위한 교육 및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폭력 생존자들이 그러한 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다.
  • 모든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사례관리서비스를 마련하여 기관과 생존자 후속조치가 연계되도록 한다.

여성의 권리 및 성폭력과 젠더폭력에 대한 인식 증진  

  • 북한에서 여성폭력 문제가 만연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전국적인 캠페인을 통해 대중들을 교육시키며, 성폭력과 가정폭력 및 강간 등 모든 형태의 여성폭력이 불법이며 이러한 사건은 신고, 조사, 기소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캠페인에는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낙인을 줄이기 위한 조처가 포함되어야 한다.
  • 특정 학문 분야와 직업을 남성들에게만 제한하는 등 사회와 가정 내에서 여성과 여아의 종속성을 지속시키는 차별적인 정책과 태도를 폐지하고, 성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며,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 학교의 교과과정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혁한다.
  • 성평등과 비차별적 관행을 증진한다.  
  • 여성과 여아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철폐한다.
  • 여성 및 여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증진한다.
  •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에게 포괄적인 섹슈얼리티 교육을 제공한다.
  • 교사, 보건 전문가, 보안원, 군인, 당원, 기타 당국자들과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성평등에 초점을 맞춘 포괄적인 섹슈얼리티 교육을 제공한다.
  • 국제 인도주의단체 및 인권단체들과 협력하여 여성과 여아를 신체 폭력 및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생존자들에게 의료지원과 상담 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제도 개혁 작업에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고, 일반 주민들에게 성폭력이 범죄임을 알리는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한다.

인권과 관련한 국제적인 의무

  • 북한의 법률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등 북한 정부가 비준한 인권조약에 명시된 국제인권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한다.
  • 여성에 대한 모든 유형의 성폭력을 종식시키고, 2017년 11월에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지적하고 2014년 2월에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적시한 인권 문제들을 시정하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 여성차별철폐협약 및 아동권리협약에 따른 북한 정부의 의무, 국가별 인권상황 정례검토(Universal Period Review) 과정에서 채택된 북한에 대한 권고, 유엔인권이사회 (UN Human Rights Council) 특별 절차와 유엔인권조약기구들의 보고서에서 제시된 권고들을 준수하여 모든 교육과 고용 기회에서 여성과 여아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종식시킨다.
  • 북한이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이하 ILO) 헌장에서 명시한 의무를 수용하고 ILO의 정회원이 되고자 함을 ILO 사무총장에게 공식 전달한다. ILO의 핵심 협약들(협약 29호, 87호, 98호, 100호, 105호, 111호, 138호, 182호)[171]을 비준하고, 급여와 근무조건, 업무상 지위에서의 남녀간 불균형을 종식시킨다. 
  • 비정부기구, 인권고등판무관실,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유엔의 기타 관련 특별보고관과 기구들을 포함한 국제인권기구들이 북한에 들어가 여성과 여아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인권 상황의 추이를 보고하며 인권 중심의 개혁과 권고안의 이행을 지원할 수 있도록 즉각 허용한다.
  •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이하 ICC)[172]을 비준하고 ICC와 전면적으로 협력하여 북한 관료들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가 단죄되도록 한다.

중국 정부에 대한 권고:

  • 1951년 유엔난민협약(1951 UN Refugee Convention)의 가입국으로서 중국의 국제법규 상 의무를 준수하여 '강제 귀국금지의 원칙'을 존중하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하였거나 탈출하고자 하는 북한인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지 않는다. 북한 정부의 허가 없이 중국으로 탈출하는 모든 북한인들을 '현장 난민(refugees sur place)'으로 인정하고 유엔난민기구가 자유롭게 그들을 즉각 접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 중국으로 탈출하는 북한인들에게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고, 그들을 구금하지 않으며, 그들이 선택한 제3국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 북한 여성과 여아들의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중국에서 인신매매된 북한인 피해자들을 효과적으로 식별하며, 중국 정부가 2010년 2월에 비준한 초국적조직범죄방지협약(Convention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의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에 따라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 북한 정부가 여성차별철폐협약과 아동권리협약의 권고에 따라 여성과 여아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며,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차별을 철폐하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 북한인을 강제로 북송시키는 정부 관리들을 조사하고 형사처벌한다.
  • 난민 신청자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2012년 출입국법 46조를 북한인들에게 적용한다.[173]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

  • 북한 정부가 본 보고서에서 권고한 개혁 조치를 이행하도록 공개적 및 비공개적으로 촉구한다.
  • 북한과의 양자회담에서 여성에 대한 신체적 폭력 및 성폭력 문제를 상시 의제로 포함시킨다.  
  • 북한인권법에 명시된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지원한다. 여성 및 여아에 대한 성폭력 관련 연구, 성폭력 피해를 입은 북한 여성을 식별하는 프로그램에 기금을 지원한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수립하여 이행한다.
  •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 매체를 통해 재생산 건강과 성폭력 및 젠더폭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들을 지원한다.
  • 북한과 관련한 모든 원조와 협력 및 교류 프로그램을 검토하여 현재 지원되고 있는 활동 중에 여성폭력을 악화시키고 있거나 그러할 가능성이 있는 활동이 있는지를 조사한다. 여성폭력에 관한 프로젝트 개발 기준을 수립하여 현재 및 향후 프로젝트를 심의한다.
  • 탈북민 지원단체들이 성폭력 생존자 지원을 위한 역량을 계발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 중 성폭력 생존자를 식별하여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수립할 수 있도록 통일부와 여성가족부가 지원하고 기금을 제공한다.
  • 통일부와 여성가족부의 협력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 주민들과 직접 교류하는 모든 남한의 공무원들에게 인권과 성폭력 및 젠더폭력에 관한 의무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활동이 북한의 성폭력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한다.
  • 통일부는 인권과 성폭력에 관한 의무 교육을 개발하고, 앞으로 북한에 들어가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는 종교, 인도적 지원, 개발 및 기업 분야의 민간 및 시민사회 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단체들에 지원을 제공한다.
  • 북한 정부가 신고, 체포, 보호 명령, 기소 건수에 대한 신뢰할만한 데이터의 수집 등 성폭력 관련 통계를 수집하도록 독려하고 실제로 이행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을 제공한다.
  • 북한이 여성차별철폐협약과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여성과 여아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도록 북한 정부에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며,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유형의 차별을 종식시키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의 추가적인 조치를 지원하여 북한 내의 여성 및 여아에 대한 성폭력과 성차별, 기타 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 북한 인권에 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에서 성폭력 문제가 보다 중요하게 고려되도록 지원한다.
  • 2018년 12월로 예정된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차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공식 논의에 성폭력 생존자인 북한 여성을 초청하여 증언을 듣도록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한다.

미국과 일본, 영국, 유럽연합과 그 회원국, 북한 문제를 우려하는 국가들과 공여국인 스위스와 독일, 스웨덴,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에 대한 권고:

  • 북한 정부가 본 보고서에서 권고한 개혁 조치를 이행하도록 공개적 및 비공개적으로 촉구한다.
  • 북한과 관련한 모든 원조 프로그램을 검토하여 현재 지원되고 있는 활동 중에 여성폭력을 악화시키고 있는 활동이 있는지를 조사한다. 여성폭력에 관한 프로젝트 개발 기준을 수립하여 현재 및 향후 프로젝트를 심의한다.
  • 북한 주재 대사관의 모든 직원과 개발 프로젝트 담당자들, 그리고 장소에 상관없이 북한 원조 프로젝트의 개발과 감시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모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여성 인권과 성폭력 및 젠더폭력에 관한 의무 교육을 수립하고 제공한다.
  • 북한 정부가 여성폭력 예방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유엔인권정책(UN Human Rights Due Diligence Policy)에 따라 경찰 및 사법기관을 개혁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성폭력 생존자를 지원하도록 돕는다.
  • 특히 상담과 의료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대중 인식을 증진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고자 하는 북한 정부의 의지가 분명한 경우, 성폭력과 관련한 법률적 및 사법적 개혁을 위한 기술 지원을 고려한다.
  • 북한인들의 탈북을 돕는 단체들이 성폭력 생존자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기금을 제공한다.
  • 북한이 여성차별철폐협약과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여성과 여아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도록 북한 정부에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며,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유형의 차별을 철폐하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의 추가적인 조치를 지원하여 북한 내의 여성 및 여아에 대한 성폭력, 성차별, 기타 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 북한 인권에 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에서 성폭력 문제가 보다 중요하게 고려되도록 지원한다.
  • 2018년 12월로 예정된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차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공식 논의에 성폭력 생존자인 북한 여성을 초청하여 증언을 듣도록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한다.
  •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 매체를 통해 재생산 건강과 성폭력 및 젠더폭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들을 지원한다.

유엔 기구에 대한 권고:

북한 주재 유엔상주조정자

  • 북한의 고위 관료와 노동당 지도부를 상대로 (유엔기구 회원국들의 지원 하에)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과 그러한 폭력의 종식을 위한 개혁이 시급함을 강조한다.
  •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기술적 지원 하에) 북한 주재 유엔 기구들로 구성된 성폭력 및 인권실무단을 구성하고,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 회의를 갖고 사업과 프로그램 및 지원 활동을 조율한다.
  • 평양 등 가능한 장소에서 뜻을 같이 하는 외교관들과 함께 성폭력과 인권 문제 그리고 성폭력 대응을 위한 개혁의 증진 문제를 정기적으로 논의한다.

북한 주재 유엔 기구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보건기구, 유엔인구기금, 유엔아동기금, 세계식량계획)

  • 북한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에서 특히 성폭력 철폐에 초점을 맞추어 인권과 보호 활동을 확대하고, 평양 사무소의 고위직 종사자에게 이 의무 사항을 수행할 책임을 부여한다. 
  • 여성의 권리와 성폭력 및 젠더폭력에 관한 의무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평양 또는 본부에서 북한 관련 프로젝트와 프로그램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 가능한 경우, 기존의 심리지원 및 의료지원 프로그램에 성폭력 피해자를 식별하여 지원하는 활동을 통합시킨다.
  • 북한 주재 유엔상주조정자 및 유엔국가팀(UN Country Team)과 협력하여 '유엔과 북한 간의 전략적 협력 프레임워크(2017-2021)'(Strategic Framework for Cooperation between the UN and the DPRK (2017-2021))[174] 하에서 운영되는 협력 프로젝트들에 성폭력 보호 활동을 통합시킨다. 북한과 해외에서 인권과 성평등, 성폭력의 철폐를 증진할 수 있도록 활동을 공개한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및 유엔의 인권기구들에 대한 권고:

  • 북한 정부와의 교류에서 성폭력과 성차별을 중요 사안으로 다루고, 북한이 이러한 문제와 기타 인권 문제들에 대응하도록 기술적 지원을 제공한다.
  • 북한 당국을 설득하고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서울사무국의 활동을 지원한다.
  • 여성폭력, 인신매매, 신체 및 정신건강에 대한 유엔특별보고관과 여성차별에 관한 유엔 실무단은 성폭력 및 인권 침해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정부에 통신문을 발송하고, 권고사항을 이행하도록 요구하고,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가해줄 것을 요청한다.
  •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의 추가적인 조치를 지원하여 북한에서의 여성 및 여아에 대한 성폭력, 성차별, 기타 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 북한 인권에 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에서 성폭력 문제가 보다 중요하게 고려되도록 지원한다.
  • 2018년 12월로 예정된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차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공식 논의에 성폭력 생존자인 북한 여성을 초청하여 증언을 듣도록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한다.

북한 주재 국제 NGO들에 대한 권고:

  • 비북한인 직원들과 북한인 직원들을 상대로 한 인권, 성폭력 및 젠더폭력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한다.
  • 성폭력 식별 기준을 개발하여 정책과 프로그램이 그러한 폭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고, 성폭력 척결 전략을 개발하여 향후의 모든 프로그램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도록 한다.
  • 북한과 관련한 모든 원조와 협력 및 교류 프로그램을 검토하여 현재 지원되고 있는 활동 중에 여성폭력을 악화시키고 있거나 그러할 가능성이 있는 활동이 있는지를 조사한다. 여성폭력에 관한 프로젝트 개발 기준을 수립하여 현재 및 향후 프로젝트를 검토한다.
  • 가능한 경우, 성폭력 피해자의 식별과 지원이 확대될 수 있도록 기존 프로그램 및 향후 프로그램에 심리적 지원과 의료 지원 활동을 통합시킨다.
  • 특히 성폭력 예방과 성폭력 생존자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 및 역량 강화 활동을 위한 기금을 확보하고,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의료 및 심리 지원 서비스를 개발한다.
 

감사의 글

본 보고서는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국 직원들이 조사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브래드 애덤즈 아시아 지역 디렉터, 필 로버트슨 아시아 지역 부디렉터, 헤더 바 여성권리 선임연구원, 리즐 건톨즈 여성권리 부장, 다니엘 해스 선임편집장, 조 손더스 프로그램국 부디렉터가 수정 및 검토하였고, 다이나 포켐프너 법률자문의원이 본 보고서에 대한 법률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라퀼 레거우드 아시아 지역 에소시에이트가 편집과 제작을 맡았습니다.한글본으로의 번역은 정진욱, 감수는 김은혜가 맡았습니다. 북한 지도는 그레이스 최, 표지와 삽화는 최성국이 디자인했습니다.

본 보고서는 또 유엔여성기구의 애나 마리아 세사노 젠더정의 전문가,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요안나 호사냑 부사무총장이 검토했습니다.본 보고서와 관련하여 지식과 자문을 제공해준 권은경 열린북한 대표,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 교수, 신미녀 새조위 대표, 안명철 엔케이워치 대표, 테오도라 큐프짜노바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정현무 국민통일방송 공동부대표, 강미진 데일리엔케이 북한팀 매니저 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현장 지원과 관련하여"수퍼맨", 이화여자대학교 박사 과정 수료 김미주,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헬핑핸즈카타콤의 팀 피터스께도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보안 상의 이유로 여기에 이름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외에도 본 보고서의 작성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또 우리에게 북한에서의 경험을 증언해주신 모든 탈북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모쪼록 이 보고서가 북한 내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종식시키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기여하기를 희망합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본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본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휴먼라이츠워치가 단독으로 책임을 질 것입니다. 본 보고서에 포함된 결과나 평가, 결론 중 어느 부분도 여기에서 언급된 기관에 귀속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가 가능하도록 기금을 지원해준 로빈재단과 익명을 요청하신 여러 기부자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용어 설명

보안성    경찰

보위    비밀경찰

보위성    비밀경찰(구 보위부)

대기실    교도소

담당관    교도소의 한 구역을 담당하는 감시원

구금실    교도소

인민보안성      경찰청

인민반    주민감시체계

장마당    정부가 허용한 시장

집결소    임시 수용 시설

국가안전보위성        비밀경찰청

구류장    재판 전 구금 시설

교화    일반 범죄자 교도소

관리    정치범 교도소

락후자반 "뒤쳐진 자들을 위한 반"이라는 뜻으로 일반 교도소에서 죄 지은 수감자들을 가두는 징벌반, 낙후자반

노동단련대      단기 강제노동시설

성분       사회정치적 분류체계

선군       군우선주의

 

 

[1] Brian. R. Myers, North Korea’s Juche Myth (Busan: Sthele Press, 2015), p. 224; The DRPK Socialist Constitution was amended June 29, 2016. “DPRK Constitution Text Released Following 2016 Amendments,” North Korea Leadership Watch, September 4, 2016, https://nkleadershipwatch.wordpress.com/2016/09/04/dprk-constitution-text-released-following-2016-amdendments/ (accessed March 31, 2017).

[2] Human Rights Watch, World Report 2018 (New York: Human Rights Watch, 2017), North Korea chapter, https://www.hrw.org/world-report/2018/country-chapters/north-korea.

[3] United Nations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HRC/25/CRP.1, February 7, 2014, http://daccess-ods.un.org/access.nsf/Get?Open&DS=A/HRC/25/CRP.1&Lang=E (accessed September 22, 2014), para 1033-1086, 1096-1107.

[4] 조선노동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하 "10대 원칙")은 영원한 주석으로 불리는 김일성(1912-1994)과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라 불리는 그의 아들 김정일(1991-2011), 그리고 그의 손자인 최고지도자 김정은(1994-)의 지침이 최고 법규이며 다른 모든 법률에 우선한다고 규정한다. Joanna Hosaniak, “Prisoners of Their Own Country,” Citizens’ Alliance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NKHR), 2004, http://eng.nkhumanrights.or.kr/include/dn.php?mode=n_r_reports&ufile=20161208131257.pdf&rfile=Prisoners%20of%20their%20own%20country%20north%20korea.pdf (accessed January 18, 2018), p. 57.

[5] 10대 원칙은 10개의 주요 원칙과 65개의 구체적인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10대 원칙은 다음과 같이 유일체제 수립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6)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7)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따라 배워 공산주의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 인민적 사업작풍을 소유하여야 한다. 8)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주신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로써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9)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령도 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규률을 세워야 한다. 10)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 Jeong-ho Roh, “Ten Principles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One Ideology System,” Columbia Law School, 2006, http://www2.law.columbia.edu/course_00S_L9436_001/North%20Korea%20materials/10%20principles%20of%20juche.html (accessed March 21, 2016). For a complete translated listing of all 65 directives see Joanna Hosaniak, Kyung Eun Ha, and Markus Simpson Bell, trans., “Ten Great Principles of the Establishment of the Unitary Ideology System,” NKHR, 2016, , http://www.internationallawbureau.com/wp-content/uploads/2016/12/Ten-Great-Principles-of-the-Establishment-of-the-Unitary-ideology.pdf (accessed March 31, 2017).

[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수행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2016년 6월 29일 개정, 11조, “DPRK Constitution Text Released Following 2016 Amendments,” North Korea Leadership Watch, September 4, 2016, https://nkleadershipwatch.wordpress.com/2016/09/04/dprk-constitution-text-released-following-2016-amdendments/ (accessed March 31, 2017).

[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11조.

[8]  “2014북한인권백서”, 대한변호사협회, p. 48.

https://www.ibanet.org/Document/Default.aspx?DocumentUid=AD2E22D6-5542-421C-99B0-1AADE4142F2C (accessed March 31, 2017)

[9] Phil Robertson (Human Rights Watch), “North Korea’s Caste System” commentary, Foreign Affairs, July 5, 2016, https://www.hrw.org/news/2016/07/05/north-koreas-caste-system.

[10] 2016년 11월까지 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불렸다. “Democratic Women's Union of Korea Renamed Socialist Women's Union of Korea,” Korean Central News Agency (KCNA), November 19, 2016, http://kcna.co.jp/item/2016/201611/news19/20161119-17ee.html (accesses April 28, 2018).

[11]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para. 183.

[12] 인민보안성은 국내 공안, 사회통제, 기본 치안 업무를 담당한다. 또 폭동을 진압하고, 범죄자를 조사하여 처벌하며, 노동단련대(단기 노동수감시설)와 교화소(일반 교도소)를 관리한다. 유엔조사위원회는 그러한 시설에서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보안성은 모든 작은 마을과 시 단위에는 교화소, 시와 군, 지방, 전국 단위에는 더 큰 수감조사기관을 설치하여 운영한다.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para. 134 and 1171; Ken Gause, “Coercion, Control, Surveillance, and Punishment: An Examination of the North Korean Police State,”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HRNK), 2012, https://www.hrnk.org/uploads/pdfs/HRNK_Ken-Gause_Web.pdf (accessed April 10, 2017), p.26.

[13] 국가안전보위부 또는 보위부라고 불렸던 국가안전보위성은 "국가에 대한 반역죄"를 조사하고 북한의 정치제도와 최고지도자에 대한 위협을 찾아내서 차단하는 정치사찰기구이다. 영어로는 National Security Agency, State Security Agency, State Security Department 등으로 번역되었다. Gause, “Coercion, Control, Surveillance and Punishment,” p.17, 42-48.

[14] 영어로는 흔히 "ideology of self-reliance"로 번역되며 chuche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15] Myers, “North Korea´s Juche Myth,” p. 219-224;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05, 106 125, and 127.

[16]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에 의하면, 북한 사회의 극단적인 군사화는 외세로부터 조선 여성의 미덕을 보호하고 조선인의 순수성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성차별을 강화시켰다.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36 and 308.

[17] “Consideration of reports submitted by State parties under article 18 of the CEDAW.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onsideration of reports submitted by States parties under article 18 of the Convention” CEDAW/C/PRK/2-4, April 11, 2016, http://tbinternet.ohchr.org/_layouts/treatybodyexternal/Download.aspx?symbolno=CEDAW%2fC%2fPRK%2f2-4&Lang=en (accessed September 19, 2016), p. 32, para. 254.

[18] Michael Madden, “Deciphering the 7th Party Congress. A Teaser for Greater Change?” 38 North, May 20, 2016, http://38north.org/2016/05/mmadden052016/wpk-political-bureau-7th-wpk-central-committee-may-9-2016/ (accessed March 31, 2017); “National Defense Commission Spokesman Issues a Statement on Peninsula Security,” North Korea Leadership Watch, June 21, 2016, https://nkleadershipwatch.wordpress.com/2016/06/21/national-defense-commission-spokesman-issues-statement-on-peninsula-security/ (accessed March 31, 2017).

[19] 2016 현재, 북한의 1인당 GDP 665달러로 전체 193개국 176위를 차지한다. “National Accounts Main Aggregates Database,” UN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Statistics Division, December 2017, http://unstats.un.org/unsd/snaama/selbasicFast.asp (accessed May 25, 2018).

[20] “Humanitarian Action for Children 2018: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UNICEF), December 29, 2017, https://www.unicef.org/appeals/dprk.html (accessed June 5, 2018).

[21] Paul French, North Korea: State of Paranoia (London: Zed Books, 2014), p. 191; “North Korea loses 3 million to famine,” BBC News, February 17, 1999, http://news.bbc.co.uk/2/hi/asia-pacific/281132.stm (accessed July 16, 2016);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667.

[22] 분석가들은 고난의 행군이 표면적으로는 주민들이 악화된 경제 상황을 견뎌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경제체제를 생각하고 그것을 공론화시킬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황을 정치적으로 분석하여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는 정치범죄로 간주하여 가혹하게 처벌했다. Kongdan Oh and Ralph C. Hassig, North Korea Through the Looking Glass,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0), p. 77; and COI para. 685.

[23]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572 and 685.

[24]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669; Human Rights Watch, A Matter of Survival: The North Korean government’s control of Food and the Risk of Hunger, vol. 18, no. 3(C), May 2006, p.9.

[25] Human Rights Watch, “A Matter of Survival: The North Korean Government’s Control of Food and the Risk of Hunger,” May 2006, https://www.hrw.org/reports/2006/northkorea0506/northkorea0506web.pdf, p.14.

[26] 별다른 이유없이 6개월 이상 국영 기업소에 참여하지 않거나 한 달 이상 출근하지 않는 모든 남성과 미혼 여성은 최대 3개월간 단기 강제노역형에 처해지며, 심각한 경우에는 기간이 더 길어진다(무제한). 북한 행정처벌법(2004년 채택, 2011년 개정).

[27] Louisa Lim, “Out of Desperation, North Korean Women Become Breadwinners,” National Public Radio (NPR), December 28, 2012 https://www.npr.org/2012/12/28/168193827/out-of-desperation-north-korean-women-become-breadwinners (accessed April 4, 2017).

[2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6월 25일에 윤순애(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29] Hong Ihk-pyo, A Shift Towards Capitalism? Recent Economic Reforms in North Korea. East Asia Review. Vol 14, No.4, Winter 2002, p. 93.

[30] Andrei Lankov, The Real North Korea: Life and Politics in the Failed Stalinist Utopia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p.121.

[31] Ibid. p. 123.

[32]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20.

[33]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6월 15일에 김석향(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 교수)과 진행한 인터뷰; Sharon Lafraniere, “Views Show How North Korea Policy Spread Misery,” The New York Times, June 9, 2010, https://www.nytimes.com/2010/06/10/world/asia/10koreans.html .

[34] 홍민, 차문석 및 정은희, “북한의 전국 시장 정보: 공식시장 현황을 중심으로”, 통일연구원(2016년 겨울), p. 7, 16.

[35]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8월에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탈북민 3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36] North Korea ranked 171 out of 180 on the Transparency International Corruption Perception in 2017. “Corruption Perception Index 2017,” Transparency International, February 21, 2018, https://www.transparency.org/news/feature/corruption_perceptions_index_2017 (accessed October 12, 2018).

[37]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38] “Human Rights Watch Submission 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o the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February 13, 2017, Human Rights Watch CRC submission, https://www.hrw.org/news/2017/02/13/human-rights-watch-submission-democratic-peoples-republic-korea-committee-rights;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탈북 학생 4명 및 교사 2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39]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북한에서 구금 시설에 수감된 적이 있는 탈북민 12명 및 보안원이었던 탈북민 2명과 진행한 인터뷰.

[40] “North Korea: Private Commerce Brings Arbitrary Arrests, Abuse,” Human Rights Watch news release January 7, 2015. https://www.hrw.org/news/2015/06/07/north-korea-private-commerce-brings-arbitrary-arrests-abuse

[41]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북한에서 정부 관리로 일했던 8명의 탈북민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42]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18.

[43]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19; see also Haggard and Noland, “Gender in Transition” at p. 51.; COI para. 319.

[44] “Interpretation of the Great Leader’s famous sayings,” Rodong Sinmun, March 8, 2014, http://www.minzokilbo.com/politics/7253 (accessed February 1, 2017).

[45]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onsideration of reports submitted by States parties under article 18 of the Convention,” CEDAW/C/PRK/2-4, April 15, 2016, https://documents-dds-ny.un.org/doc/UNDOC/GEN/N16/154/29/PDF/N1615429.PDF?OpenElement, p. 2, para. 3.

[46] Ibid., p. 11, para. 59.

[47] 이러한 가치는 조선시대(1392-1910)에 굳건히 자리잡았다. 북한의 공식 한국어 명칭은 '조선'이다.

[48] 본 보고서에서 가부장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그리고 어린 세대에 대한 나이 든 세대의 지배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또 나이와 성별에 따른 위계로 남자 후손들에 의한 계보가 유지되는 부계 중심성을 갖는다.

[49] 이 맥락에서 "성적으로 순수"하다는 것은 성적으로 금욕하며 혼전 성관계와 혼외정사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50]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10 and 8; Kyung-ae Park, “Women and Social Change in South and North Korea: Marxist and Liberal Perspectives,” Women and International Development, Working Paper No. 231, (Michigan State University, June 1992), https://gencen.isp.msu.edu/files/4814/5205/7066/WP231.pdf, p. 2.

[51] 금지사항에는 여성이 스스로를 해방된 개인, 연애 상대, 또는 해방된 성적 존재로서 표현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Tatiana Gabroussenko, “No sex please, we are in a North Korean movie,” NK News, July 3, 2016, https://www.nknews.org/2016/07/no-sex-please-were-north-korean/?c=1491193433934 (accessed August 11, 2016);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08.

[52] 두 당사자의 동의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었던 이혼은 1950년대 중반부터 억제되어 쌍방의 합의가 있어도 어렵게 되었다. 1946년 9월에 공표된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의 이행 규정 10-22조에는 쌍방이 합의하는 경우 지역 인민위원회에 직접 이혼장을 접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1956년 3월부터는 쌍방의 합의에 따라 이혼하려면 재판을 거쳐야 한다. Suzy Kim, “Marriage, Family, and Sexuality in North Korea,” in Vera Mackie and Mark McLelland, eds., Handbook of Sexuality Studies in East Asia (New York: Routledge, 2015), p.114 and 118.

[53]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0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106명의 탈북민과 인터뷰한 결과에서 도출한 것이다.

[54] Kim, "Marriage, Family, and Sexuality in North Korea," p.113.

[55] 휴먼라이츠워치가 2017년 1월 19일에 백수련(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56]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 29일에 리천석(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57] “Human Rights Watch Submission to the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April 13, 2017, Human Rights Watch CEDAW submission, https://www.hrw.org/news/2017/04/13/human-rights-watch-submission-committee-elimination-discrimination-against-women.

[5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탈북민 6명과 진행한 인터뷰.

[59] Ibid.

[60] CEDAW, “List of issues and questions in relation to the combined second to fourth periodic report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ddendum: Replie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EDAW/C/PRK/Q/2-4/Add., 1, June 16, 2017, http://docstore.ohchr.org/SelfServices/FilesHandler.ashx?enc=6QkG1d%2FPPRiCAqhKb7yhss1YTn0qfX85YJz37paIgUA5iefKgpuDIhmmc7OcqA%2BwTI8fWmSuu8RoI7PVqY542Cc%2BfgWl0%2BFUdwUgZsvFi8LPCkO96cv7kAueSxsQp4F7IJjsW2SvZGDdn1Pu9awf6Q%3D%3D (November 5, 2017), para. 16.

[61]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08.

[62] Ibid., para. 318.

[63] Ibid., para. 320.

[64] Do Kyung-ok, et. al, White Paper of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15, (Seoul: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KINU), 2015), p.367.

[65] 북한 정부는 대학 입학과 관련한 성 편향을 인지하고 있으나 여학생의 비율에 관한 데이터는 제공하지 않았다. “Consideration of reports submitted by States parties under article 18 of the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p. 11 참조

[66] 이 분석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57명과의 인터뷰 결과에서 얻은 것이다.

[67] CEDAW, "Consideration of reports submitted by States parties under article 18 of the Convention,” April 15, 2016, p. 14, 15 and 36.

[6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북한에서 교사로 일했던 탈북민 2명과 의사였던 탈북민 2명을 포함하여 총 21명의 탈북민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방상희, “부서진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 북한 여성에 대한 폭력 실태,” 북한인권시민연합, 2011, p. 19; 도경옥, 2017년도 북한인권백서(서울: 통일연구원, 2017), p. 376.

[69]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21명과 진행한 인터뷰.

[70] “DPR Korea, HIV/AIDs,”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http://www.searo.who.int/dprkorea/areas/hiv/en/ (accessed July 12, 2018).

[71]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33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72] Ibid.

[73] CEDAW, “Summary record of the 1555th meeting,” CEDAW/C/SR.1555/, November 13, 2017, https://tbinternet.ohchr.org/_layouts/treatybodyexternal/Download.aspx?symbolno=CEDAW%2fC%2fSR.1555&Lang=en, (December 5, 2017) para. 39. 2005년 7월 18일에 진행된 북한에 대한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마지막 리뷰에서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위원장 허오범은 북한 당국이 여성차별철폐협약을 검토하여 부부강간 문제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으나 정부가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CEDAW, “Summary record of the 669th meeting,” CEDAW/C/SR.669/, February 14, 2005, https://tbinternet.ohchr.org/_layouts/treatybodyexternal/Download.aspx?symbolno=CEDAW%2FC%2FSR.669&Lang=en, (December 5, 2017) para 49.

[74] CEDAW, “Summary record of the 1555th meeting,” November 13, 2017, para. 10.

[75] "III. 권력자의 지위에 있는 남성들에 의한 성폭력" 하의 "교화소와 구금 시설에서의 강간과 성폭력"에 제공된 박영희의 사례 참조.

[76] Ibid.

[77] 이러한 결론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 결과로 얻은 것이다.

[7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4월 20일에 윤종학(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79]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 29일에 리춘석(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80]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6월 22일에 윤순애(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81]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7.

[82]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브로커 9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83] Ibid.

[84]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098-1114.

[85] Ibid., para. 1098.

[86] Ibid., para. 1105.

[87] 1997년에 북한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탈퇴하고자 했으나, 유엔으로부터 해당 규약에 탈퇴 규정이 없기 때문에 탈퇴가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이후 북한은 이 규약과 관련한 보고나 의무 이행을 거부해왔다.

[88] Kim Il Sung, “About the future task of Women’s League” in Kim Il-sung: Selected Works 2 (Pyongyang: Korean Workers’ Party Press, 1979), p. 206.

[89] Kim Il Sung, “About the future task of Women’s League”, p.227.

[90]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은 1948년에 처음 채택되었는데 이 헌법은 대체로 소련이 작성한 것이었다. 북한은 1972년 12월에 개정 헌법으로 이를 대체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북한의 첫 헌법으로 간주된다. Andrei Lankov, “Terenti Shtykov: the other ruler of nascent North Korea,” Korea Times, https://www.koreatimes.co.kr/www/news/nation/2012/01/363_103451.html (accessed February 13, 2018).

[9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77조.

[92] 한국어는 대상의 성별을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 표현은 젠더 중립적이다.

[93] 형법 제 279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12년 5월 14일 개정).

[94] Ibid.

[95] 형법 제 280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12년 5월 14일 개정).

[96] Ibid.

[97] 형법 제 281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12년 5월 14일 개정).

[98] 형법부칙 제21조(2007년 12월 19일 채택).

[99] 여성권리보장법 제46조(2010년 12월 22일 채택).

[100] Darren C. Zook, “Reforming North Korea: Law, Politics, and the Market Economy,” Stanford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131 (2012); NKHR, “Status of women’s rights in the context of socio-economic changes in the DPRK,” May 2013, https://eng.nkhumanrights.or.kr:444/board/download.php?fileno=1101&no=3&board_table=bbs_literature&page=1&word=&searchItem=&cate_id= (accessed March 21, 2016).

[101]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23.

[102] NKHR, “Status of women’s rights in the context of socio-economic changes in the DPRK,” May 2013, https://eng.nkhumanrights.or.kr:444/board/download.php?fileno=1101&no=3&board_table=bbs_literature&page=1&word=&searchItem=&cate_id= (accessed March 21, 2016).

[103] 형법 제293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09년 10월 19일 개정)

[104] 복종관계에 있는 여성의 강간은 (최대 2년형에서) 1년형으로 낮춰졌다. 여러 명의 여성을 강간한 경우 또는 범죄의 결과로 피해자가 자살하거나 사망한 경우는 형량이 (최대 5년에서 3년으로) 2년 줄어 들었다. 개정 법률에서는 또 심각한 피해에 대해 노동단련대에서 최대 2년형을 명시한 조항을 삭제하고,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최대 5년형에서 1년형으로, 피해가 "심각한" 경우에는 5-10년형이던 것을 최대 5년형으로) 약화시켰다. 형법 제294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09년 10월 19일 개정); 형법 제295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09년 10월 19일 개정). 북한 법률은 또 몇몇 형태의 동의에 의한 성행동을 범죄화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폭력 신고 여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간통, 혼외 성관계, 섹스파티와 같은 집단 성행위는 형법에서 금지되어 있다. 형법은 타인의 가족을 파괴한(정의되지 않음) 자를 노동단련대에서 최대 1년형 그리고 심각한 경우(정의되지 않음) 교화소에서 최대 2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러 명의 남자와 여자가 모여서 외설적인(정의되지 않음) 행위를 하는 경우 단련대에서 1년형 또는 심각한 경우 교화소에서 최대 5년형에 처할 수 있다. 형법 제250조 및 257조(1987년 2월 5일 채택, 2012년 5월 14일 개정); 북한의 가족법 제11조는 혼인을 등록하지 않고 남편과 아내로서 생활하는 것(정의되지 않음)을 금지한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북한인들은 이것을 성관계와 동거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북한 가족법 제11조.

[105] Ibid.

[106]이러한 결론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북한인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얻은 것이다.

[107] Ibid.

[10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8월 31일에 오정희(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109] 이러한 결론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북한인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얻은 것이다.

[110]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12월 2일에 고명철(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11] Ibid.

[112] 이러한 결론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4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북한에서 정부 관료로 일했던 8명의 탈북민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얻은 것이다. 이름과 장소 비공개.

[113]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5월 16일에 송상현(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14] Do Kyung-ok, et. al, White Paper of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15, (Seoul: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KINU), 2015), p. 369.

[115]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105 and 1106.

[116]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408, 1106-1107.

[117]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1077.

[118] Ibid., para. 1054.

[119] Ibid.

[120]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탈북민 8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21] Ibid.

[122] Ralph Hassig and Kongdan Oh, “The Hidden People of North Korea: Everyday Life in the Hermit Kingdom,” London: Rowman & Littlefield, p. 149.

[123]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700.

[124]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7년 12월 11일과 2018년 8월 27일에 윤수련(가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25]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7년 12월 12일에 김은아(가명)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26]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2월 6일에 김순영(가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27]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1월 12일에 박영희(가명)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2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5월 16일 조별미(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29] 휴먼라이츠워치가 2017년 9월 4일 윤미화(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30]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7년 11월 30일에 조은별(가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31]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106명을 인터뷰한 결과에서 도출한 것이다.

[132]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19; Haggard and Noland, “Gender in Transition,” p. 51.

[133]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62명을 인터뷰한 결과에서 도출한 것이다.

[134]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18.

[135]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57명을 인터뷰한 결과에서 도출한 것이다.; “Human Rights Watch Submission to the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April 13, 2017, Human Rights Watch CEDAW submission.

[136] 다수의 장사꾼들이 속옷이나 옷 또는 브래지어에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거기에 SD 카드와 중국 위안화를 숨긴다.; “Human Rights Watch Submission to the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April 13, 2017, Human Rights Watch CEDAW submission.

[137] Ibid.

[13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1월 28일에 리봄이(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39]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18.

[140]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2월 3일에 김미진(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41] Ibid.

[142]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13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43]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5월 12일에 리봄순(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44]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21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45]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8월 31일에 오정희(가명)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46]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1월 12일에 김철국(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장소 비공개.

[147]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 12일에 최달미(가명)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48]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7년 11월 28일에 박솔단(가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49]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1월 28일에 리봄이(가명)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장소 비공개.

[150] CEDAW, “List of issues and questions in relation to the combined second to fourth periodic report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ddendum: Replie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June 16, 2017, para. 48.

[151]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20.

[152]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 결과로 얻은 것이다.; UN COI,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ebruary 7, 2014, para. 319.

[153] "III. 권력자의 지위에 있는 남자들에 의한 성폭력" 하의 "교화소와 구금 시설에서의 강간과 성폭력"에 기술된 조은별의 사례 참조.

[154]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 결과로 얻은 것이다.

[155]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4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북한에서 정부 관료로 일했던 탈북민 8명과 진행한 인터뷰.

[156]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9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57] Ibid.

[15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북한에서 정부 관료로 일했던 탈북민 5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59]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5월 15일에 송상현(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또 "III. 권력자의 지위에 있는 남자들에 의한 성폭력" 하의 "교화소와 구금 시설에서의 강간과 성폭력"에 기술된 조별미의 사례와 김순영이 증언한 동료 수감자들의 사례 참조.

[160]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6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61]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8월 13일에 백민중(가명)과 진행한 인터뷰.

[162] 다른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1월 12일에 최철국(가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63] 이 분석은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탈북민 106명과 진행한 인터뷰 결과로 얻은 것이다.

[164] UN Women (Formerly Division for the Advancement of Women in the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of the United Nations Secretariat), Handbook for Legislation on Violence against Women, ST?ESA/329, July 20109, http://www.un.org/womenwatch/daw/vaw/handbook/Handbook%20for%20legislation%20on%20violence%20against%20women.pdf (accessed May 7, 2017).

[165]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5월 16일에 조별미(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166] “강간 키트”는 점검목록, 증거 수집용 봉투와 관련 서류, 빗, 면봉, 혈액 샘플 보관 용기, 지침, 법의학 검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물을 담을 봉투와 상자 등이 담긴 통을 말한다.

[167] 휴먼라이츠워치가 2016년 9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탈북민 3명과 진행한 인터뷰, 이름과 장소 비공개.

[168] 휴먼라이츠워치가 2015년 11월 12일에 박영희(가명)와 진행한 인터뷰.

[169] 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Strengthening Crime Prevention and Criminal Justice Responses to Violence against Women, April 2014, https://www.unodc.org/documents/justice-and-prison-reform/Strengthening_Crime_Prevention_and_Criminal_Justice_Responses_to_Violence_against_Women.pdf (accessed August 19, 2018).

[170] 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Handbook on Effective Police Responses to Violence Against Women, March 2010, https://www.unodc.org/documents/justice-and-prison-reform/Handbook_on_Effective_police_responses_to_violence_against_women_English.pdf (accessed August 19, 2018).

[171]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Labour Standards,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https://www.ilo.org/global/standards/introduction-to-international-labour-standards/conventions-and-recommendations/lang--en/index.htm (accessed October 13, 2018).

[172]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Rome Statute of the Criminal Court, https://www.icc-cpi.int/resource-library/Documents/RS-Eng.pdf (accessed October 13, 2018).

[173] Gary Chodorow, trans., “Translation: Exit-Entry Administration Law,” Chodorow Law Offices, July 3, 2012, http://lawandborder.com/english-translation-of-chinas-new-exit-entry-administration-law/(accessed October 13, 2018).

[174] United Nations DPRK Office of the Resident Coordinator, “Strategic Framework for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Nations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17-2021,” http://kp.one.un.org/content/dam/unct/dprk/docs/DPRK%20UN%20Strategic%20Framework%202017-2021%20-%20FINAL.pdf (accessed August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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