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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 wanted to be able to hold hands with his boyfriend, Tom, in public. He did just that at the end of his episode

인터뷰: ‘퀴어 아이’ 일본편을 통해 얻은 프라이드

어린 성소수자들의 롤모델이 된 휴먼라이츠워치의 전 인턴

칸은 밖에서도 남자친구인 톰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기 전에 그렇게 했다.  © Queer Eye: We're in Japan!

넷플릭스 시리즈물인 ‘퀴어 아이’의 팬들은 칸이 지지 네트워크를 찾아 헤매던 수줍음 많은 게이에서 ‘퀴어 아이: 일본편’(Queer Eye: We’re in Japan!)의 ‘크레이지 인 러브’(Crazy in Love)라는 에피소드에 출현하면서 자신감 있고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 이후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칸은 학교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고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집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대학에 가서는 성소수자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2016년에는 휴먼라이츠워치와 함께 일본의 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이 겪는 괴롭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참여했다.   

퀴어 아이의 탄 프란스와 함께 한 옷장 정리에서 선보였던 스웨터를 입고 나온 칸이 필리파 H. 스튜어트에게 퀴어 아이 출연 경험과 자신의 과거 그리고 일본의 어린 성소수자들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퀴어 아이: 일본편’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나요?

제가 출연을 결정하는데는 휴먼라이츠워치에서 일한 경험이 단연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휴먼라이츠워치에서 일하면서 괴롭힘을 당한 일본의 성소수자 청소년을 인터뷰했어요. 그때 많은 성소수자 아이들이 성소수자나 관련 이슈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프로젝트를 한 후에 그 아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휴먼라이츠워치와 인터뷰한 학생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온 트랜스젠더인 남학생이 있었는데요. 고향에 가서 그 아이를 인터뷰했는데, [그 아이랑] 그 아이가 거쳐야 했던 일들이 많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 문제들이 제 고향에 아직도 존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죠.

퀴어 아이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Fab5가 나타났을 때 정말 그렇게 놀랐나요?

네! 비욘세 노래를 들으면서 방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Fab5가 정말 저희 집에 올 지 몰랐어요. 누가 “안녕하세요!”라고 해서 돌아봤더니 Fab5가 거기 있는 거에요. 정말 놀랐죠. 그리고 아주 좋은 냄새가 났는데, 그건 TV에서는 전해줄 수 없는 거죠.

성소수자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언급하셨는데, 사람들이 칸씨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영국에서 공부할 때도 제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웠어요. 게이라는 것때문이 아니라 아시아인이라는 것때문에요. 날마다 아주 작지만 적대적인 태도들을 [많이] 경험했죠. 그러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 게이라는 것때문에 또 그런 태도들을 경험했어요.

‘퀴어 아이: 일본편’에서 칸은 도쿄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찾았다.   © Queer Eye: We're in Japan!

불편하고 어색할 때가 많았어요. 유색인 성소수자의 롤모델을 원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구요.

칸씨의 방송을 보고 아이들이 이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바라시는 게 있으신가요?

아이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기를 바래요. 어렸을 때 저는 롤모델이 없어서 아주 절망적이었어요. 제가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이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걱정이 되셨나요?   

방송이 나간 후에 시청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지가 제일 걱정되었어요. 촬영 자체는 정말 재미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편집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죠. 하지만 방송 후에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방송에서 가르쳐준 것을 다 지키셨어요?

아직도 제 자신한테 용기를 북돋워주려고 해요. 지금은 훨씬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방송에서 얻은 별명처럼 아직도 “패뷸러스 칸”(fabulous Kan)이신 거에요?

네, 맞아요. 새롭게 얻은 인생과 새로운 칸이 된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직장에서 커밍아웃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 같았는데요. 방송 후에 직장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칸의 가족들이 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칸은 가족 모두에게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 Queer Eye: We're in Japan!

몇몇 동료들이 방송을 보고 제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줬어요. 정말 고마웠죠.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했던 건, 예를 들어서, 혹시라도 실수로 저를 아우팅시켜서 상처를 주게 될까봐 공적인 장소에서나 큰 소리로는 저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직장에서 일부러 감추지는 않지만 거기에 대해 많이 말하지는 않아요. 제 일하고 상관이 없으니까요. 방송을 본 후에 저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저를 정말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일본의 성소수자들의 상황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면에서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휴먼라이츠워치와 함께 그 보고서 프로젝트를 할 때 언론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방송에서 성소수자들을 웃음거리로 다루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제가 도쿄에 살고 있고 친구들과 가족들이 개방적이어서 더 쉬웠을 수 있어요. 시골에는 정말 절망감을 느끼는 성소수자 아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시골 출신이라 잘 알아요.

가족에게 아직 커밍아웃할 준비가 안된 성소수자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성소수자 아이들이 가족에게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에요. 하지만 가족의 상황에 따라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죠.]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면 커밍아웃하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조나단 반 네스의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를 받고 있는 칸 © Queer Eye: We're in Japan!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몇 년간 학교를 못갈 때가 있었어요. 너무 우울하고 날마나 내 삶이 끝나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칸, 넌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는 모든 성소수자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일본의 상황에서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게 무책임할 수 있어요. 모든 가족이 다 그걸 받아들이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랑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하는게 정말 어려웠죠. 하지만 지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은 더 쉽게 다른 성소수자들과 연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가족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어요.

넷플릭스 방송을 보시면 지금은 제 가족이 저를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걸 아실 거에요. 하지만 저를 동성애자로 인정하는 과정이 [하나의 긴 여정이었죠.] 저도 노력하고 가족들도 노력을 했을 거에요. 우린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일본에서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아이들에게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일본은 얼마 전에 아동교육법을 개정했는데, 휴먼라이츠워치와 다른 기구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바뀌지 않았어요. 이 법이 다시 개정되려면 또 10년을 기다려야 할 거에요.

제가 아이였을 때는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어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정보가 있으면 자신을 수용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미래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저는 아이들이 더 많은 정보, 정확한 정보를 갖게 되기를 바래요.

학교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또 어디에서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제 방송을 보세요! 저는 정말 넷플릭스를 좋아하는데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그냥 넷플릭스에 가서 방송을 보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전 그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퀴어 아이 방송이 칸씨의 삶을 이렇게 바꿀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제가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성애자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래요.

휴먼라이츠워치 전 인턴

방송이 나간 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저는 니초메(도쿄의 성소수자 구역)에서 열리는 ‘비욘세의 밤’에 있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에 한 여자 분이 저한테 와서 그 방송이 정말 감동적이었다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거에요. 제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열 살때 전 너무 무서워서 집 밖에도 못나갔어요. 제가 지금 얼마나 변했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래요.

일본의 성소수자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 힘든 것이 자기 자신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때문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퀴어 아이 일본편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모습인 것]에 대해 자책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저도 제 자신을 비난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러지 않기를 바래요.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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